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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마태복음

유대인과 다른 기도(마6:5-9)

by 금빛돌 2024. 4. 3.

69절을 보시면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주기도문은 주님의 기도문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문입니다. 우라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무잇입니까? 기도입니다.

그래서 당시에 유대인들도 각자 나름대로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시기 전에 잘못된 두 가지 기도를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기도이고 이방인들의 기도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바리새인들의 기도이고 유대인이 아닌 이방 종교인들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통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를 알기 전에 먼저 우리의 기도가 유대인과는 다른 기도를 해야 합니다. 또 우리 주위에서 보는 종교인들과는 다른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의 기도가 어떠했습니까?

5.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여기서 보시면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외식하는 자와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많은 사림들이 보는 회당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심지어 큰 길거리 모퉁이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기도했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결국 누구에게 영괌을 돌립니까? 자신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까?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유대인과 다른 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

6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너는 기도할 때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반드시 골방과 같은 곳에 들어가서 기도해야 합니까? 그래서우리는 반드시 개인기도 골방을 두어야 합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위해서 개인적인 기도실을 둘 수 있으면 좋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하신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오른 빰도 때리면 왼빰도 돌려대라는 말씀도 문자적으로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네 골방에 들어여기서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는 것도 문자적으로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할 때 네 골방에 들어가라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기도할 때 네 마음이 골방 마음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골방 마음이 무엇입니까?

기도할 때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식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기도할 때 오직 하나님만 의식합니까? 혹 기도할 때 사람이 의식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만일 내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 할 때도 사람이 의식한다면 골방 마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그 어떤 사람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식이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기도할 때 사람이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식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하나님만을 온전히 사랑할 때 하나님만 의식할 수 있는 마음이 됩니다.

보통 연예인들 가운데 쇼윈도 부부 라고 있습니다. 남들에게 보일 때만 사랑하는 척하는 부부입니다. 그래서 카메라가 있을 때는 너무 다정한 체합니다. 그래서 이벤트도 합니다. 손도 잡습니다. 그래서 잉꼬부부라고 소문을 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부부가 이혼했다는 기사가 납니다. 부부가 정말로 사랑한다면 절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보이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도리어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사랑에는 세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은밀성입니다. 사랑에는 은밀성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보이려고 사랑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어버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기도할 때 사람이 의식이 합니까? 누가 내 기도를 보고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또 내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더 온전히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사랑한다면 기도할 때 사람이 의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할 때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만 보일 수 있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사랑에는 기쁨성이 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 하나님이 주신 쾌락의 열쇠라는 책입니다. 여러분은 쾌락이라는 말을 들으면 좋지 않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책에서 말하는 쾌락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쾌락입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즐거움을 누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쁨이라는 뜻에 에덴동산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와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에서 기쁨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기쁨을 찾을 때가 어디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에게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벧전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기도의 자리에서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다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왜 바리새인들이 사람에게 보이는 기도를 하겠습니까? 왜 기도할 때도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를 하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이 그들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442장을 같이 볼러보겠습니다.

1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2 그 청아한 주의 음성 우는 새도 잠잠케 한다

내게 들리던 주의 음성이 늘 귀에 쟁쟁하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3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 가운데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가 어떤 곳에 여행을 가려고 하면 이렇게 기쁘고 셀레는데, 하나님을 만나는 데는 과연 기쁘고 셀레는가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기도를 좋아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좋아하십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만나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정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그 기쁨 때문에 그 어떤 사람도 의식되지 않는 참된 기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랑에는 친밀성이 있습니다.

여러분 대표기도와 개인기도는 다릅니다.

대표기도란 모든 회중들을 대표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대표기도를 할 때는 하나님만 의식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 곳에 모인 사람도 의식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대표기도는 개인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표기도를 할 때는 내 개인적인 감정을 가능한 자제 해야 합니다.

여기서 모인 회중을 대표하기 때문에 내가 기도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 모인 회중을 대표해서 기도한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대표기도는 하나님만 아니라 사람도 의식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표기도를 할 때 글을 적어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장로님들도 기도할 때 일주일동안 기도문을 적어서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표기도를 하실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자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오대양 육대주를 위해서 기도를 하실 수 있습니다. 또 그곳에 선교사님들 위해서 기도를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표기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곳에 예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맨 먼저 회중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우리의 마음을 열어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설교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설교자를 높이기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설교자가 성령충만한 가운데 말씀을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안식월 때 가까운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떤 권사님이 기도를 하셨습니다. 시간도 5분정도 기도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전혀 사람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이 교회에 빈자리가 많다고 기도했습니다. 시골이라 젊은 사람들이 없다고 기도했습니다. 일꾼이 없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울었습니다. 그것은 대표 기도가 아니라 개인 기도입니다. 저는 그 기도를 듣고 그 다음 주일부터 그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대표기도는 하나님만 아니라 사람도 의식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리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회당에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것만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기도의 골방에서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실재적으로 문을 닫으라는 말도 있지만, 사람에게 보이려는 네 마음의 문을 닫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보이려는 마음이란 결국 사람을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떤 기도가 주님이 원하시는 기도입니까?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기도입니다.

나는 사람에게 찾아가는 것보다 하나님에게 찾아가는 것을 좋아 합니까?

나는 하나님만 의지합니까? 사람을 의지합니까?

우리가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우리와 친밀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사랑한다면 하나님과의 친밀성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친밀성이란 무엇입니까?

친밀성이란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내가 친밀하지 않은 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할 말을 구별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는 절대 모든 말을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 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네 아버지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아버지라는 말이 친밀하게 들립니까? 아니면 부담스럽게 들립니까?

우리는 네 아버지라고 하면 부담스럽게 들립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아주 친밀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우리의 모든 사정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다 알아도 우리가 아버지께 나가서 구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뢰어야 합니다.

어떤 것은 말하지 않고 어떤 것만 말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를 할 때 여러분들은 그 어떤 것이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답답하면 하나님께 나와서 답답하다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억울하다면 하나님께 억울하다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이렇게 우리의 모든 사정을 하나님께 친밀하게 아뢰어도 됩니까?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우리가 그 어떤 기도를 하더라도 우리 아버지는 다 들어주시고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교회 뒤에 빌라에서 오신 새가족 성도님의 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그동안 공무원 신우회에서 어머니의 이름을 적어놓고 3년 동안 기도했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가을에는 아버지와 동생도 같이 학습 세례 받기를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지난 주에 앞에 빌라 사장님의 사모님이 오셨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장로님들과 인사를 하는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그 사장님을 위해서 몇 년을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나님께 그때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혹시 자녀를 위한 기도를 쉬고 계십니까? 전도대상자를 위한 기도를 쉬고 계십니까? 절대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자녀를 위한 기도 가족을 위한 기도를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은밀한 중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께 반드시 들어주시고 갚아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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