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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욥기

욥기강해(13)나의 고통이 쉴 곳이 없게 하라(욥16:18-22)

by 금빛돌 2024. 1. 26.

 

오늘 본문은 욥이 극심한 고통난가운데서도 끝까지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6:18. 땅아 내 피(억울함)를 가리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고통)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

구약성경에서 땅은 모든 사람들의 증인의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창410절에 4: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땅이)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욥은 내 피 즉 나의 이 억울함에 대해서 땅을 보면서 가리지 말고, 기억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또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르짖음이라는 말을 고통이라는 말로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왜 부르짖음으로 고통으로 바꾸어야 하는가 하면 욥기를 보면 욥의 부르짖음은 욥의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욥기에서 욥의 고통은 하나님께 대한 욥의 부르짖음입니다. 그러니까 욥의 부르짖음은 욥의 고통입니다.

그래서 부르짖음을 고통으로 바꾸면 어떻게 됩니까?

나의 고통이 이 땅에서 더 이상 쉴 곳이 없게 하라는 말입니다.

제가 만일 욥기를 가지고 책을 쓴다면 저는 이렇게 쓰고 싶습니다.

나의 고통이 쉴 곳이 없게 하라

여러분 사람들은 고통이 있을 때 어떻게 합니까?

그 고통을 잊으려고 합니다. 또는 나의 고통이 쉴 곳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나의 고통이 쉴 곳을 찾으려 내가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찾아갑니다. 그래서 내가 의지하는 사람을 통해서 내 고통이 쉴 곳을 찾으려고 합니다.

저는 요즘 집에 가서 밥을 먹을 때 자연에 관한 프로그램을 봅니다.

그 프로를 보면 사람들은 자연에서 쉼을 얻고자 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자연에서 쉼을 얻습니다. 모두 하는 말이 내가 도시에서 살 때는 내 고통이 쉴 곳이 없었는데, 자연에 와서 비로소 쉼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고통이 있을 때 내가 믿을만한 사람을 찾아가고, 자연을 찾아가는 것은 그래도 건전합니다.

사람들은 고통을 잊기 위해서 술을 합니다. 심지어 마약을 합니다. 아니면 어떻게 해서라도 내 고통이 이 땅에서 쉴 곳을 찾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나의 고통이 더 이상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고통이 이 땅에서 어느 한 곳에서라도 쉴 곳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욥은 어떻게 땅에게 말하고 있습니까?

이 땅에서 내 고통이 어느 한 곳에서라도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욥은 내 고통이 이 땅에서 어느 한 곳에서라도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까?

그 이유가 19절에 있습니다. 19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9.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나의 이 피를 토하는 듯한 억울함과 원통함을 보고 계시는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를 위해서 중보하고 계시는 이가 하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이 자기가 당하고 있는 모든 고통이 이 땅에서 쉴 곳이 없게 하라고 하는 이유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늘의 하나님이 자신의 중보자가 되셔서 그의 모든 고통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모든 피 눈물을 다 보고 계십니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에 얼마든지 절망해도 됩니다. 고통해도 됩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더 절망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께 더 소망을 둘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헤세가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헤르만 헤세

하나님이시여, 저를 절망케 하소서.

당신에게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절망하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미혹의 모든 슬픔을 맛보게 하시고,

온갖 고뇌의 불꽃을 핥게 하소서.

온갖 모욕을 겪도록 하여 주시옵고,

내가 스스로 지탱해 나감을 돕지 마시고,

내가 발전하는 것도 돕지 마소서.

그러나 나의 자아가 송두리째 부서지거든

그 때에는 나에게 가르쳐 주소서.

당신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당신이 불꽃과 고뇌를 낳아 주셨다는 것을,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으려고 하나,

나는 오직 당신의 품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마음껏 절망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서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껏 고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서는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의 고통이 이 땅에서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의 고통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쉴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무리 어려워도 하늘의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20절과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0.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욥의 가장 친한 친구도 욥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아마 욥은 그의 친구를 통해서 그 고통이 쉴 곳을 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었던 친구도 욥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내 모든 눈물을 받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내 눈을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눈물을 다 보아주시고 알아주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나의 모든 눈물을 담아두시는 병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합니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울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울지 마시기 바랍니다. 울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위로해주시고, 여러분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에 주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1절입니다.

21.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욥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중재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재란 두 사람 사이에 바른 판단을 통해서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계속되는 대화를 통해서 욥의 모든 친구들은 끝까지 욥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욥만 혼자서 자신의 무죄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하나님만이 그의 중재자가 되어주셔서 바른 판단을 해주시고,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실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22절입니다.

22.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

욥은 고난 가운데서 인생의 한계를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곧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자신의 소망이 하나님밖에 없음을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까? 왜 사람들이 하나님에게서 떠나고 있습니까?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교회를 15년을 다녔던 분이기에 성경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믿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몸으로도 하나님께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에 의지할 수 있는 대체 자들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이 들면 술을 마십니다. 힘이 들면 친구를 찾습니다. 고통스러우면 그 고통을 잊을 세상의 즐거움을 찾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의 고통이 이 땅에서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의 고통이 쉴 곳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고통을 보고 계시고, 판단하고 계시고, 중보하고 계시고, 중재하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여러분들의 모든 고통을 오직 하나님에게로 가져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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