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빌닷의 말에 대한 욥의 대답입니다. 빌닷은 아주 과격한 사람이었습니다.
빌닷은 처음부터 욥에게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느냐, 네 말은 마치 미친 광풍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빌닷도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런 고난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심지어 욥의 자녀들이 죽은 것도 그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 말을 듣고 네 죄를 회개하면 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욥이 어떻게 말합니까? 1절과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욥9: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욥에 대답합니다. 너희들이 지금까지 나에게 한 말을 나도 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욥의 친구들은 인과응보의 하나님을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악인은 벌하시고 의인은 복은 주신다는 것을 나도 안다고 합니다. 이렇게 너희들이 말하는 것을 나도 아는데,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다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죄가 있다고 말하는 너희들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욥의 친구들은 마치 자신은 죄가 없는 의인처럼 말했습니다. 그리고 욥은 죄가 있어서 이런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보았을 너희도 다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욥의 친구들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기도할 때 하나님 저는 저 죄인과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다른 모든 사람들을 정죄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세상에게 제일 깨끗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도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바리새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마23: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바리새인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기념비석을 세우면서 우리가 과거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자신들은 선지자를 죽인 조상들과 같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들은 지금도 선지자를 죽이고, 예수님을 죽이는 죄를 짓고 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누가 바리새인입니까? 나는 바리새인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누가 바리새인이 아닙니까? 나도 얼마든지 바리새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이런 바리새인이 아닌지 끊임없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며 돌이키는 자가 바리새인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이 있는 마23장 13-30절까지 바리새인에 관해서 일곱 가지 화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일곱 번씩이나 완벽한 저주를 선언하셨습니다. 바리새인에 대해서 예수님은 심지어 “마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또 마태복음 5장20에 “마5:20.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같은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막12:38). 여기서 “삼가라”는 말은 “등을 돌리다, 길을 달리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등을 돌리며, 또 그들이 가는 길과 달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절대 이 바리새인과 같이 되지 말아야합니다.
그러면 바리새인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바리새인들은 높은 자리에 앉아서 말만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마23: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바리새인들은 높은 자리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입니다. 2절에 모세의 자리란 자신들이 모세와 같은 권위를 가진 자라고 하면서, 모세의 자리라는 돌로 만든 자리에 앉아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회당 문 앞에 오른 쪽에 있는 자리입니다(사진).
또 6절에 보면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유대나라 잔치 집에 가면 오른 쪽 윗자리가 모든 사람을 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회당에서도 오른쪽 윗 자리에 앉기를 좋아했습니다.
왜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했겠습니까? 그 이유는 그 자리가 영광을 받고 칭찬을 받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뒤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높은 자리에 있으면 얼굴이 보이고, 또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습니다. 또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높은 자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말만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만하고 남들을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할수록 이런 바리새인들이 되기 쉽니다. 교회에서 몸으로 봉사하는데 관심이 없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또 남들에게 칭찬을 듣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남들이 일하라고 시키는데 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교회에서 높은 자리란 없습니다.
/여러분 만일 혹시 내 모습이 이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이미 바리새교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이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높은 위치에 올라가 있더라도 천국에 가서 상급이 없습니다. 천국의 상급이 없다는 것은 현재에 영적으로 공허한 상태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가졌고, 또 무언가 열심히 일을 한 것 같은데 영적으로 공허하다고 느끼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이미 이 땅 가운데 사람에게 칭찬과 영광을 이미 받은 자가 아닌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수고와 봉사가 과연 하늘의 창고에 상급으로 쌓여 있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바리새이 되지 않기 위해서 가능하면 교회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 앉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일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서 하나님만 알아주는 천국의 상급을 쌓아놓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또 이 바리새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2)바리새인들은 항상 모든 일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기도하는 것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했습니다. 구제하는 것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23징 5절에 보면 “마23: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고 합니다.
여기서 바리새인들은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모든 행위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위한 모든 행위를 가리킵니다. 즉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기위한 모든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옷에다가 성경구절을 적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나는 이렇게 성경말씀대로 거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표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실제적으로는 그 말씀의 정신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일들조차도 왜 사람에게 보이려고 했습니까? 그 이유는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바리새인들은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전혀 느껴지지 아니하니까, 하나님 앞에서 하는 모든 일조차도 사람을 의식하면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는 나누는 데는 관심이 없고 기도하는 일만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 기도하는 일조차 사람에게 보이고자 했습니다.
//말씀이 무엇입니까?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듯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성경을 읽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이렇게 성경을 매일 보는 사람이라고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그 말씀의 정신대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가장 많이 말하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들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무엇보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바리새인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마5: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그러면 단순히 골방에 들어간다고 해서 하나님만 의식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골방에 들어가도 사람을 의식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골방마음이 되어야합니다. 골방마음이 무엇입니까? 골방 마음은 기도할 때 사람이 사람이 보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보이는 마음입니다. 기도할 때 전혀 사람이 의식되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마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 때//예배를 드릴 때//또 교회봉사를 할 때/사람이 의식되지 않고 하나님만 보이는 골방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사랑할 때입니다.
/여러분 만일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은 절대 남들에게 떠들고 다니지 않습니다. 남들과 있을 때는 서로 모른 채합니다. 그런데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은 항상 두 사람과 은밀한 장소와 시간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서로 같이 있어도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또 같이 오래 있어도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마음의 골방에는 사랑하는 사람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인줄 아십니까?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고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 있을 때는 아주 친한 척 합니다. 그런데 단둘이 있는 시간은 정말 끔찍스럽게 생각합니다. 또 그 사람과 오래 있으면 그것을 나의 공로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몇 시간씩이나 그 사람과 있었다고 자랑합니다.
--여러분 지금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절대 사람에게 보이려고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날마다 은밀한 사랑의 골방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결코 내가 몇 시간씩 기도한 것이 내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또 내가 기도를 몇 시간 한 것을 가지고 그렇게 기도하지 못한 사람들을 비판하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다니시면서 자꾸 사람이 의식이 됩니까? 그렇다면 내가 아직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전보다 날마다 영원히 더 사랑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이전보다 사랑하시고, 날마다 사랑하시고, 영원히 사랑하시고, 더 사랑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나는 교회에서 하나님만 의식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혀 신경을 써지 않는다고 말씀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도 바리새인들의 모습입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않되 사랑해야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사랑과 형제사랑,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사랑을 분리시켜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르반 즉 이 물질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서 부모를 섬기지 않습니다. 왜 당신은 부모를 섬기지 않느냐 하면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만 섬기지 부모님은 그렇게 섬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다 보니까 부모님을 섬기는 일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바리새인들이 그러면 과연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부모를 공경할 수밖에 없고,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느냐 고 세 번씩나 질문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누구보다 더 많이 기도하십니까? 더 많은 예배를 드리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사람들을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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