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14절입니다.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6장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님은 지금까지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너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무조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구하는 대로 다 받습니까?
여러분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했는데, 구하는 대로 다 받으셨습니까?
받으신 것도 있지만 받지 않으신 것도 있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기만 하면 다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야보고서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약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우리가 무조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다고 해도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면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로 로또에 당첨되도록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겠습니까?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라는 말씀은 내 욕심대로 구해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무조건 들어 주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해야 하는 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빌립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답변하시는 가운데 나왔습니다.
빌립이 예수님에게 무엇을 질문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3년이 밤낮으로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빌립이 예수님에게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합니까?
그 이유는 빌립이 생각한 하나님의 모습과 예수님의 보여준 하나님의 모습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빌립은 하나님은 지금이라도 당장 로마를 무력으로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은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그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에게 보여준 예수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 주요 선생으로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빌립이 생각했던 하나님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실 빌립과 같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라고 하면 무조건 내 소원을 들으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하면 내 생각과 맞지 않는 사람들을 다 물리치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전쟁이 무슨 전쟁인 줄 아십니까?
종교전쟁입니다. 지금 중동의 전쟁도 종교전쟁입니다.
이슬람도 어떤 알라신을 믿고 있습니까? 무력으로 이스라엘을 물리치는 알라신을 믿고 있습니다.
유대인들도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무력으로 물치니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모두 인간이 종교적인 욕망으로 만든 신입니다. 인간이 만든 하나님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생각할 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모두 물리치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내가 만든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무조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은 어떤 모습입니까?
섬기는 종으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또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희생하는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진정한 하나님으로 이 세상을 무력으로 정복하시는 분은 아니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무력으로 세상을 정복하시는 하나님으로 오십니다. 그래서 이 모든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그런데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에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은 어떤 모습입니까?
길을 가실 때 큰 소리도 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꺼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19절과 20절에서 “마12:19. 그(예수님)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예수님은 다투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은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언제까지입니까? 이 세상을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세상을 무력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오십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섬기시는 하나님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시는 하나님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한다고 하시는데, 무슨 일입니까?
예수님처럼 섬기는 일입니다. 희생하는 일입니다.
또 예수님보더 더 큰 일도 한다고 하신데, 무슨 일입니까?
예수님보다 더 섬기는 일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희생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희생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는데, 증인이 무엇입니까? 증인은 순교자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도들이 얼마나 섬기고 희생하고 죽었는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하셨는데, 문맥을 보면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예수님처럼 섬기는 일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희생하는 일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처럼 섬기고 희생하는 일을 구하면 예수님께서 행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섬기는 일을 구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나오는 예수님의 이름은 어떤 이름입니까? 자신을 희생함으로 남을 구원하시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고 했을 때 마치 주문 외우듯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주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자신을 희생함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름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섬기고 희생하기를 구했을 때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주셔서 섬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처럼 섬기고 희생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처럼 섬기고 희생하는 일을 할 때 누가 영광을 받으시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 아버지가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13절 마지막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13하--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요한복음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언제 아들로 영광을 받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로 죽으신다고 했을 때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요12: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십자가 의)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십자가를 지는 것을)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절에 “요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예수님이 한 알의 밀로 십자가에 죽으신다고 하니)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그래서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희생하고 죽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로또에 당첨되기를 구해야 합니까? 힘으로 남을 지배하기를 기도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처럼 무엇을 섬길 것인가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제가 가정에서 무엇을 섬겨야 합니까? 우리 가정에서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를 구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예수님 제가 우리 교회에서 무엇을 섬길 것인가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보혜사 성령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셔서 무엇을 섬길 것인가 보여주실 것입니다.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섬기고 희생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1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합니다.
무슨 계명입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계명입니다.
무엇이 사랑입니까? 예수님처럼 희생하고 섬기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섬기고 희생하는 사랑의 계명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극치는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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