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산상설교의 말씀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지킬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지킬 수 없습니다.
또 이 산상설교의 말씀이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고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는 사람이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지킬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라고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하신 곳을 가 보면 큰 산이 아닙니다. 약간 언덕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왜 산이라고 합니까? 구약성경 나오는 시내산과 비교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시내산에서 받아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산에서 산상설교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구약성경에서 십계명은 누구에게 주신 말씀입니까?
출애굽 한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산상설교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구약에서도 십계명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지킬 말씀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제가 종과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종일 때는 한 계명이라도 어기면 잘립니다. 그런데 아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계명을 못 지켜도 잘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10가지의 계명을 지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백성들의 삶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산상설교도 구원받은 백성이 지킬 수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구원받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겠습니까?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구원받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원수라도 용서해 줄 수 있겠습니까? 절대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라고 합니다.
여기서 진주는 무엇이겠습니까? 산상설교의 말씀입니다. 또 개는 누구이겠습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또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고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 산상설교의 말씀을 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이 말씀을 주어도 그들을 깨닫지도 못합니다. 또 절대 이 말씀대로 살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에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율법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예수님은 산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킬 수 있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차이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렘31:33. 그러나 그 날 후(신약시대)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새)언약(신약시대)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율법, 말씀)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약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돌판에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자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까?
에스겔서 11장 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겔11:19. 내가 그들에게 한(새)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20. 내 율례(말씀)를 따르며 내 규례(말씀)를 (마음으로)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여러분 구약시대 사람들이 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돌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돌 같은 마음에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외쳐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가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마음에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새 마음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돌을 가져왔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돌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돌에게 여러분께서 한번 외쳐 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라. 그래야 너도 잘되고, 네 가족도 잘 되고 이웃도 잘 된다. 그러니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라, 그러면 복 받는다”고 외쳐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아무리 외쳐도 이 돌은 듣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돌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라. 말씀대로 살라 그러면 복을 받는다” 고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마음이 돌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살 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을 항상 돌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절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들어도 마음에 두지도 않습니다. 겉으로는 지키는체하지만 지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우리 돌 같은 마음이 살 같이 부드러운 마음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 마음에 새 영이 임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성령이 임하면 우리의 돌 같은 마음이 제거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새 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마음에 성령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습니다. 마음에 성령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이 성경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제발 성경 공부하라고 해서 성경을 공부하지 않습니다. 자발적인 마음으로 성경을 공부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듣습니다. 그리고 순종합니다. 그래서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롬8장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롬8:4. (돌 같은 마음을 가진)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성령)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여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누구든지 그 안에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롬8:9). 또 롬 8장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음속에 성령이 거하여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마음속에 성령이 거하여 있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방언을 해야 그 속에 성령이 거하여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방언도 진짜 방언이 있고 가짜 방언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방언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 속에 성령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있는 증거는 산상설교가 우리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산상설교의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산상설교의 말씀이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속에 성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산상설교의 말씀을 새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령을 받았습니까? 여러분 속에 성령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이미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심령이 가난해져야 복을 받는다. 그러면 천국이 그들의 것이 된다”고 보기가 쉽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원문 그래도 보면 “복이 있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여, 천국은 그들의 것입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 있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애통해야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복 되도다 애통하는 자여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속에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심령이 가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한순간도 하나님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또 여러분 속에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애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마음에 죄가 있으면 애통으로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여러분들 속에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온유함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에 성령이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된 영입니다. 여러분 참된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거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성령이 있으면 우리 마음은 온유한 마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설교 시간이지만 187장 “비둘기같이 온유한” 찬송을 불러보겠습니다.
1. 비둘기 같이 온유한 은혜의 성령 오셔서
거친 맘 어루 만지사 위로와 평화주소서
2. 진리의 빛을 비추사 주의 길 바로 걸으며
주님을 옆에 모시고 경건히 살게하소서
3. 주님과 동행하면서 거룩한 길로 행하며
진리의 예수 붙잡고 길 잃지 않게하소서
4. 연약한 나를 도우사 하나님 나라 이르러
주님의 품에 안기는 영원한 안식주소서 아멘
그래서 날마다 여러분의 마음이 성령 하나님으로 더 부드러워 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여러분에게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까? 그러면 우리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될수 밖에 없습니다. 마음속에 성령 하나님이 계신 자는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를 잘 분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성령 하나님이 계신 자는 절대 악의 편에 설 수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계신 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편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 하나님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또 마음속에 성령 하나님이 계신 자는 어려운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마음속에 성령 하나님이 계신 자는 마음이 청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청결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보면서 살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또 마음속ㅇ 성령하나님이 계신 자는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끊임없이 다투고 싸우는 자는 그 속에 성령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절대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이 산상설교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의 입장에서 보아야 합니다. 구웓받은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산상설교를 심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신약성경연구 > 마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상설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3-복의 관점에서(마5:1-3) (1) | 2023.11.01 |
---|---|
산상설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2)아들의 관점에서(마5:1-3) (1) | 2023.10.25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 복(마5:10-12) (0) | 2016.05.28 |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마5:8) (0) | 2016.05.21 |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마5:9) (0) | 2016.05.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