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화평하게 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은 화평, 또는 화목을 원하시는 분입니다.
구약의 제사가운데 화목제물이 있습니다. 모든 제물들은 불태워서 없애는데 화목제물은 같이 먹도록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화목제물을 언제까지 먹어야하는 줄 아십니까?
하루나 이틀 만에 다 먹어야합니다.
“레7:15.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16. 그러나 그의 예물의 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것이면 그 제물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17. 그 제물의 고기가 셋째 날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지니 18. 만일 그 화목제물의 고기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되지 못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죄를 짊어지리라”.
그러면 왜 화목제물을 하루나 이틀 만에 다 먹어야합니까? 왜 그것을 셋째 날까지 남겨서 먹으면 그것을 먹는 자가 죄가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말씀해보시기 바랍니다.
화목제물의 제물 중에서 수소나 암소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하루나 이틀 만에 어떻게 다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하루나 이틀 만에 먹기 위해서 반드시 이웃과 나누어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소 한 마리를 이웃과 하루 만에 나누어 먹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내가 친하고 좋아하는 한 사람에게만 그 모든 고기를 나누어줄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도 받은 제물을 하루 만에 먹어야하기 때문에 많은 고기를 나누어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루 먹을 만큼 나누어 주어야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나누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집을 찾아가야합니다. 그에게 고기를 나누어 주어야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에게 정을 느낍니까? 음식을 나누어주는 사람에게 정을 느낍니다. 예를들어 아버지는 돈을 벌어줍니다. 어머니는 그 돈으로 음식을 해 줍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누구에게 정을 느끼겠습니까? 돈을 주는 아버지가 아니라 음식을 주는 어머니에게 정을 더 크게 느낍니다. 그래서 화목제물을 나누다 보면 서로 서먹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도 정을 나누어줍니다. 또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도 정을 나누어줍니다. 그렇게 화목제물로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끼리 서로 화목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소 한 마리를 나누어주는데, 예를 들어서 20집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소고기 앞 다리 하나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 21번째 집을 가야하는데, 그 사람과는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할만큼 했으니 이 한 다리쯤은 그대로 두면 되지 않겠는가? 합니다. 그래서 하루를 보내고 또 이틀을 보냅니다. 그리고 이제 삼일 즈음이 되어서 고기가 상할 수 있기 때문에 먹어야합니다. 이때 삼일 째 그 고기를 먹으면 죄가 된다고 했습니다. 왜 화목제물의 고기를 삼일 째 먹으면 죄가 되겠습니까? 단순히 삼일 된 그 소고기 앞 다리 살 때문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고기를 남겨주었다고 하는 것은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에게 찾아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일 된 고기를 먹는 것이 좌가 되는 것은 그 고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화목하지 않은 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전교인수련회-세족식-떡을 나누는 것 할 것임).
그런데 여러분 구약시대 때 하나님께서 화목제물을 드리라고 할 때 그 모든 제물들의 공통된 특징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수컷만 드리라, 아닙니다. 화목제물은 암수가 다 됩니다. 또 소를 드리라, 아닙니다. 제물을 각자의 형편에 맞게 드리면 됩니다. 집에 돈이 없으면 비둘기라고 드리면 됩니다. 그런데 모든 제물은 다 하나같이 흠 없는 것이어야 합니까?
왜 흠 없는 것이어야 합니까? 그 이유는 구약시대 모든 제물들은 다 흠과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제물이 안수할 때 제물과 내가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나의 죄가 그 제물에게 전가가 되고, 그 제물의 깨끗함이 나에게 전가가 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게 하기 위해서 누구를 화목제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하나 밖에 없고, 흠이 없으신 당신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우리사이에 막한 담을 허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는 어떤 접착제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피의 접착제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화평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화평하게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합니까?
첫째, 서로 용서하고 용납해야합니다.
골3장 13절과 14절에 “골3: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용납)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용서와 용납의 차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용서는 그 사람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 용서하는 것이고, 용납은 그 사람 자체를 용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한 일에 대한 용서는 되는데, 그 사람에 대한 용납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도 하고, 죄인인 우리를 용납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왜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용납해야합니까?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고 용납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이 용납하신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으면, 그를 용납하신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서하시고 용납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우리가 화평하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합니까?
롬12장을 찾아보겠습니다. “롬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마지막에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는데, 여기서 선은 무엇이면 악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선은 19절 20절에 있는 원수를 친히 갚지 않는 것입니다. 또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악은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서 악은 내가 스스로 원수를 갚은 것입니다. 또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나도 함께 미워하는 것이 바로 악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누구와의 싸움에서 이겨야겠습니까?
절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진정한 싸움은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나도 함께 미워하는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라는 말은 내가 누구와 누구 사이에 들어가서 그 사람들을 서로 중재하고 화해시키는 자라고 구역공과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화평하게 하는 자란 내 안에 푸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화평의 문제는 단순한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와 좋지 않은 관계가 있습니까? 이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에 대한 내 안의 미움을(원한을) 풀어야합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하셨습니까?
누구를 위해서 용서하라고 하셨습니까?
바로 나 자신입니다. 용서라는 말뜻인 푼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용서가 무엇입니까? 내 안에 그 사람에게 대한 미움의 감정을 푸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내 안에 그 사람에 대한 그 어떤 미움의 감정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그것이 내 안에 상처가 됩니다. 그러면 그 상처는 결국 나 자신을 죽게 만듭니다. 그런데 용서하면 내 안에 가시가 제가가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 안에 상처가 제거가 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여기서 맨다는 말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푼다는 말은 용서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용서하여 풀지 않으면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서 용서하여 풀면 하늘에서 하나님께서도 풀어주십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여러분에게 하늘의 문이 풀어지고 열려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래서 하늘의 문이 열려져서 진정한 기도의 응답을 받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내 안에서 누구라도 먼저 용서하시고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늘의 문이 열리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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