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에서 제일 중요한 말씀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마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디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합니까? 단순한 지식,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입니다. 또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볼 수 있습니까?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아니면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우리 마음의 눈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청결해야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죄가 없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죄가 없는 마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마음으로도 전혀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는 청결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날마다 죄를 회개하는 삶을 살아합니다. 제가 여러 번 말씀을 드리지만, 회개는 부담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요즘에 우리가 사무엘하를 새벽시간에 보고 있는데, 사실 다윗도 절대 완전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여섯 아내와 첩이 있었고, 그 사이에 17명의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자녀교육에 있어도 다윗도 실패 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다윗에 대해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솔로몬이 잘못했을 때도 왜 그에게 모든 벌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아버지 다윗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상11장 12.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다윗이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습니까? 다윗은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고 자백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예배를 드릴 때 마다 하나님께 통회하고 자백하는 눈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눈물로 시작한 예배가 나중에는 기쁨과 춤추는 예배로 마쳤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늘 청결한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다윗의 마음을 본받기를 바랍니다.
또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이 나누어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이 나누어지면 우리가 하나님에게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이 집중이 되지 못합니까?
우리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하는 세상의 염려가 우리 마음을 하나님에게 집중시키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마음에 세상의 물질에 마음을 빼앗긴 것 때문에 하나님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 우리 마음에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하나님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하나님에게 더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마음들을 다 내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우리 마음을 집중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의 경우를 보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으로 팔려가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으로 팔려가지 않으면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보디발의 집에 가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보디발의 집에서 집안의 재산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으면 애굽의 총리로서 애굽의 재산을 관리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또 요셉에 감옥에 갇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요셉은 술 맡은 관원을 만나지 않았고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신의 모든 삶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창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또 시편 80편에 보면 “요셉을 양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라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또 구약의 이스라엘은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신 것처럼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고, 또 요셉과 함께 하셨던 것처럼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어떻게 함께 하셨습니까? 어떻게 하나님께서 요셉을 인도하셨습니까?
그것은 고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니까 무조건 잘 되는 일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고난입니다.
요셉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심으로 형제들에게 쫓겨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감옥에 가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으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오히려 고난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나눔을 하실 때 특별히 고난가운데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신 것을 나누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전 생애를 두고 어떻게 하나님께 함께하셨는가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 여러분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볼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청결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 것을 날마다 보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신약성경연구 > 마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상설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마5:1-3)(1)새 언약의 관점에서 (1) | 2023.10.18 |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 복(마5:10-12) (0) | 2016.05.28 |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마5:9) (0) | 2016.05.21 |
마음이 가난한 자의 복(마5:1-3) (0) | 2016.04.30 |
애통하는 자의 복(마5:4) (0) | 2016.04.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