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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출애굽기

출애굽기강해(26)탐내지 말라(출20:17)

by 금빛돌 2023. 10. 11.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만족하게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부족하게 느껴지십니까? 또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가정에 대해서도 지금 있는 상태로 만족하게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부족하게 느껴지십니까?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오늘 십계명 마지막에서 이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십계명의 마지막 결론으로 탐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물질)를 탐내지 말라

여기서 특별히 무엇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이겠습니까? 이웃의 아내와 이웃의 물질입니다.

탐내지 말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하며 감사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십계명의 마지막 결론의 말씀입니다.

//톨스토이가 쓴 사람에게는 얼마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파폼은 땅만 많다면 악마가 나타난다 해도 겁날 게 없다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을 듣든 악마는 주인공에게 시험합니다. 그래서 네가 가지고 싶은 땅 만큼 가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네가 하루 동안 걷다가 다시 돌아오면 그 모든 땅이 너의 땅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걷고 또 걷다가 나중에 돌아오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마지막 차지하게 된 땅은 자신의 죽은 몸이 들어갈 땅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이 땅에서 물질을 얼마나 가지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까?

세계최고의 갑부에게 어떤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가진 돈으로 만족하십니까? 그때 세계 최고의 갑부는 어떻게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아니 절대 만족할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가 되어야겠습니까 하니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 있는 것에서 조금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그 갑부가 말하는 조금은 얼마 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결혼하지 않는 사람에게 아내를 구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물질이 없는 사람이 그 어떤 물질도 구하지 말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아내가 있는 사람이 그 아내로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아내를 구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또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물질을 구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게 아내가 있고 기본적으로 먹고 살만한데,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것을 구하는 것을 성경에서는 탐심이라고 합니다.

-이 탐심의 죄는 인류 최초부터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영육간에 만족할만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를 대형마트에 데리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대형마트에 있는 모든 것을 공짜로 네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다 먹어도 괜찮은데, 여기 있는 빨간 사탕은 먹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머지 모든 사탕은 먹어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마트에 있는 모든 것을 먹고, 또 다른 사탕을 다 먹고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빨간 사탕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선악과를 따먹었습니까? 탐심 때문입니다.

36절입니다.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여기서 탐스럽다는 말이 탐심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이상의 것을 구하는 것을 탐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이와 같은 탐심을 버리며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가 탐심을 버리며 살아가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탐심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축복의 통로를 막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세면대에 물이 막혀서 아무리 물을 부어도 물이 잘 내려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면대에 머리카락과 같은 찌꺼기가 있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풍성한 은혜와 복을 내려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 은혜와 복을 누리지 못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 막고 있는 탐심이라는 더러운 찌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4: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동안 광야에서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하고도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탐심 때문입니다.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11: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탐심)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중에서 썩여 사는 다른 인종(이방인)들이 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같이 따라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왜 이스라엘을 따라왔겠습니까? 그들은 애굽에서도 만족한 생활을 하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스라엘백성을 따라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절대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무리 가운데서 끊임없이 원망불평을 합니다.

///이들이 이스라엘 무리가운데서 끊임없이 원망 불평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탐욕 즉 탐심이라고 합니다. 탐심 때문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리고 이들의 탐욕이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전염이 되어 이스라엘백성들이 한 사람도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 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탐심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개척해서 건강하게 성장을 시킨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개척교회를 할 때 목사와 성도들이 모두 하나님께 만족하고 기뻐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개척교회를 한다는 것이 절대 만족이 될 수 없습니다.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인들 수가 작아도 모든 성도들이 만족하고 기뻐하면 어떤 일이 벌이지겠습니까?

이 교회는 이렇게 작은데, 성도들이 무엇 때문에 기뻐하는가? 라고 의아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작은데 무엇 때문에 만족하고 기뻐하는가를 알기 위해서 계속해서 교회를 나오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0명에도 만족하고 기뻐하고 20명에게 만족하고 기뻐하면 하나님은 더 많은 사람들을 보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물질에 대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은 큰 부자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분은 하나님이 주신 물질에 대해서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나누어주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나누어 주면 줄수록 하나님께서 더 많이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까? 만족하며 감사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해서 만족하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탐심을 버리면 하나님께서 과거에 내게 주신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탐심을 버리면 하나님께서 현재 이미 내게 주신 은혜가 보이게 됩니다.

또 탐심을 버리면 하나님께서 미래에 내게 주실 은혜가 보이게 됩니다.

이와 같이 탐심을 버리면 모든 축복의 통로가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탐심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왜 우리가 탐심을 버려야합니까? 탐심은 모든 죄를 짓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5절에 보면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하고 있습니다.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왜 탐심이 우상숭배가 됩니까? 우상숭배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운데 탐심이 있으면 절대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탐심이 있으면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탐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우상숭배의 죄를 짓게 합니다. 이것은 십계명가운데서 1,2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또 탐심이 있으면 하나님을 인격 그 자체로 온전히 섬길 수 없습니다. 탐심은 하나님 조차도 내 탐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 탐욕을 채워주면 감사하고, 그렇지 않으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이름 즉 인격 그 자체로 섬기라는 3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또 탐심이 있으면 안식일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하루라도 더 일해야 돈을 벌수 있는데 탐욕이 있으면 절대 안식일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탐심은 4계명을 어기게 합니다.

또 탐심이 있으면 절대 부모를 온전하게 공경할 수 없습니다. 항상 부모님에 대해서 부모가 내게 해준 것이 무엇이냐 고하면서 부모조차도 내 탐욕을 이루는 대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탐심은 5계명에서 말씀하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도 어기게 합니다.

//또 탐심이 있으면 하나님만 아니라 사람들도 나의 탐욕을 채워주는 도구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게 탐욕을 채워주면 가까이합니다. 그러나 내 탐욕을 채워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떠납니다.

/또 심지어 사람들이 내 탐욕을 채워 주지 않을 때 분노하고 미워합니다. 그리고 이런 분노화고 미워하는 마음이 살인죄를 짓게 합니다. 그래서 탐심은 6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도 어기게 합니다.

//또 탐심이 있으면 여자를 보면서 음욕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7계명에서 있는 간음죄를 짓게 합니다.

//또 탐심이 있으면 노력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의 물건을 탐하게 됩니다. 그러면 8계명에 말씀하는 도둑질하는 죄를 짓게 합니다.

//또 탐심이 있으면 이웃에 대해서 거짓말을 해서라도 내 욕심을 챙기게 됩니다. 그래서 탐심은 9계명 이웃을 해할 목적으로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씀을 어기게 합니다.

--이와 같이 왜 십계명의 마지막 결론이 탐내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탐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모든 죄를 짓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정말 은혜와 복을 받으면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모든 탐심을 내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탐심을 가져라, 욕망을 가져라 그리하면 네가 바라던 욕망대로 대로 되리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탄의 말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는 방식과 세상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는 방식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적인 탐욕과 욕망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것을 허물어버리시고, 철저히 빼앗아 가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서 철저히 우리의 욕망을 내어버리게 되면, 그 빈자리에 하나님의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까?

그래서 갈5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탐심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이미 못 박혔기에 우리는 모든 탐심을 버리며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탐심을 버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탐심을 버리고, 모든 일에 자족하며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탐내지 말라 는 말씀은 부정적인 말씀으로 이 말을 긍정적으로 바꾸면 모든 일에 자족하며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에 6절에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이익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탐심을 버리고, 자족하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또 사도바울은 빌4장에 보면 내가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고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처음부터 자족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도 인간적인 탐심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는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신앙생활을 해가면서 점점 자족하는 삶을 살에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탐심을 버리고 자족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먼저 우리가 자족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고, 또 세상을 떠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딤전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전6: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을 때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줄로 알고 자족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가 어떻게 탐심을 버리고 자족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육신적으로 풍부한 삶을 살 때 교만하여 주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잃어버리지 말아야합니다.

또 우리가 육신적으로 너무 궁핍할 때도 너무 힘들어서 주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잃어버리지 말아야합니다.

왜 우리가 탐심을 가지게 됩니까? 주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가지게 되면하나님 앞에서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합니다.

또 주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가지게 되면--사람들이 내가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한분 만으로 만족하며 기뻐함으로, 모든 것에 만족하며 기뻐하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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