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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출애굽기

출애굽기강해(23)간음하지 말라(출20:14)

by 금빛돌 2023. 10. 11.

오늘 말씀은 제7계명으로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전하는 자나 듣는 자나 다 부담스러울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말씀입니다.

//예전 농경사회에서는 부부가 같이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간음죄를 지을 확률이 적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부부가 같이 있는 것 보다 다른 이성들과 있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간음죄의 위험성들이 더 많습니다.

/또 요즘은 결혼 연령이 늦추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는 결혼연령이 15,6세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혼연령이 늦추어지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죄를 지을 확률이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 이것은 연세 드신 분들도 예외가 없습니다. 나이가 많으면 성적 유혹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연세가 드셔도 얼마든지 이런 죄의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이 문제에 있어서는 성직자들도 예외가 없습니다. 횃불트리니티대학교에 김용태 교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담임목사는 절대 여성도들을 일대일로 개인 상담을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생깁니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무시무시한 말씀이 있습니다.

17: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니

여기서 보면 음녀가 나오는데 이 음녀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하게 하는 모든 세력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또 이 음녀는 하나님의 백성들조차도 음행에 빠지게 하는 자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 음녀가 지금도 하나님백성의 피를 빨아 먹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먼저 간음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또 이 간음죄를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간음이란 먼저 육체적인 간음이 있습니다. 법적인 부부관계를 떠난 모든 성적 행위는 간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육체적인 간음만을 간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겠습니다.

5: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우리가 육체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것만 간음이 아닙니다. 내가 만일 조금이라도 음란한 마음으로 이성을 보았다면 그것은 이미 간음한 것입니다.

다윗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이스라엘나라가 전쟁가운데 있을 때 한가하게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왕의 옥상이니까 모든 시내가 다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저기 한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우연하게 그 여인을 보았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연하게 보는 것조차 간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보는 순간 눈을 돌렸어야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계속 응시를 했을 것입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다윗이 그 여인을 보는 순간 그 여인에게 마음이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마음가운데 음란한 생각이 이미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음란한 생각이 마음이 이미 들어오니까 이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죄란 항상 끝장을 보는 성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죄의 생각이 들어오면 끝까지 죄를 짓고 나서야 후회를 하게 됩니다. 간음죄는 더욱 그렇습니다.

내 마음속에 음란한 생각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간음이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간음죄를 짓고 나서야 나중에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음란한 생각이 들 때부터 호들갑을 떨어야합니다. 그래서 마음의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합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딤후3: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여기서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서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가 어떤 자입니까? 이 자는 성경을 공부하자고 하면서 여자를 유인하는 자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아무리 성경을 공부하자고 해도 그 마음속에 음란한 마음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음란한 마음으로 성경을 공부하면 두 사람 모두 참된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든다고 하면 주일학교 교사들이 학생들을 지도한다고 하면서 일대 일로 만난다면 음란한 마음으로 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럴 경우 교사와 학생이 모두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간음의 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성을 대할 때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나의 쾌락이나 즐거움이나 탐욕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간음의 죄입니다.

이 십계명은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하며, 또 부모님이나 이웃이나 이성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합니까? 하나님도 나의 탐욕을 위한 도구로 삼지 말아야합니다. 이것이 십계명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내게 놀라운 구원의 사랑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육신적인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그 자체로만 사랑하고 섬겨야합니다. 이것이 1-3계명의 의미입니다.

//5계명에서 부모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도 나의 탐욕을 위한 도구로 삼지 말아야합니다. 자녀들은 항상 부모가 내게 해 준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서 부모님을 나의 탐욕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부모가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을 들어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생명의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모님을 대할 때도 나의 탐욕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지 말아야합니다.

//6계명에서 이웃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우리가 이웃에 대해서 비난하고 분노를 합니까? 이웃을 나의 탐욕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주위 사람들이 나의 탐욕을 채워주지 않을 때 그 사람을 비난하고 분노하는 살인죄를 짓습니다.

//7계명에서 이성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에 대한 태도도 우리의 탐욕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지 말아야합니다.

남자를 대하고 여자를 대할 때 외모로만 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성을 나의 즐거움이나 쾌락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외모와는 상관없이 다 존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보아야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이성을 나의 쾌락을 채워주는 도구로만 생각한다면 그것이 이미 마음에 간음한 것입니다.

--저는 사춘기 때 방이 하나 밖에 없어서 누님과 같이 방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누님은 정말 얼굴이 예뻤습니다. 그래서 따라다니는 남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누님과 함께 같이 방을 쓰면서도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밤새도록 서로 이불 뺏기만 하고 싸웠습니다.

왜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저의 누님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젊은 디모데에게 바울이 어떻게 말합니까?

딤전 5:2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그래서 우리가 이성을 대할 때 나의 탐욕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이성을 나의 탐욕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면 간음의 죄를 짓게 됩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인간들은 이성을 대할 때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지 않고 내 탐욕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6장에서 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그래서 우리 모두는 그 어느 누구라도 간음죄에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예외가 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막의 성자라고 불리는 성 안토니가 35년 동안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사막에서 수도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수도 생활을 하고 난 다음에 한 말은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음란의 죄와 35년 동안 싸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음란의 죄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마음에 음란한 죄를 이기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우리가 간음의 죄를 짓기 않기 위해서 간음죄의 비참함을 생각 해 보아야합니다.

유명한 많은 사람들이 불륜의 사실이 드러나면서 명성에 흠이 가고 있습니다. 또 불륜을 감추기 위해서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륜 때문에 명성을 잃고 돈을 잃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간음의 죄를 처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으로 더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다윗이 간음죄를 짓게 되지 영적으로 잃어버리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하는 집중되는 하나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에게 집중에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혹시 내게 감추어진 간음의 죄가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또 다윗은 간음죄를 짓게 되지 그 안에 성령의 역사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성령은 아주 민감하고 거룩한 영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에 조금이라도 간음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성령은 우리안에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또 다윗은 간음죄를 짓게 되자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간음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하나님을 향한 하나의 마음)을 창조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성신을 내게 거두지 말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다윗은 내게 자원하는 마음을 주사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간음의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간음죄를 지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피해야합니다.

여러분 만일 우리 중에서 누가 열심히 기도합니다. 40일 철야기도를 합니다. 또 방언도 받습니다. 또 성경을 수십독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나 해서 음란물을 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 순간에 넘어집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경건해도 눈으로 보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조건 피해야합니다. tv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장면이 있으면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려야합니다.

음란의 죄를 이길 수 있는 길은 맛서는 것이 아니라 피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딤후2: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이 시대의 음란한 문화에 대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애통하는 마음으로 살아야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소돔땅에서 아무도 구원을 시키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가족가운데 한 사람도 구원을 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후서에 보면 그런 롯을 가리켜 의로운 롯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소돔땅에서 롯이 의로운 롯이 되었습니까?

벧후 2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롯은 음란한 땅인 소돔땅에서 아무도 구원시키지 못했지만, 그 음란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시대의 음란의 문화를 즐기고 있습니까? 렇다면 음란의 죄에 빠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음란한 문화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매일 그것을 보고 들음으로 우리 심령이 항상 상해있기라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속에 음란의 죄에 대해서 애통하는 마음이라도 있어야 음란의 죄를 이길수 있습니다.

//넷째는 만일 우리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믿음의 형제들과 건전한 문화를 즐길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음란한 문화에 대해서 무조건 피하거나 애통하는 마음으로만 살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이제 우리가 음란한 것을 피함과 동시에 경건한 형제들과 같이 화평을 즐기면서 살아야합니다.

딤후2: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남자와 여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만일 결혼했다면 전도서의 말씀대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아야합니다.

또 전도서9: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마지막으로 여러분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실 분이 있습니다. 나는 이미 내 남편이 돌아가셨다 또 내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살아란 말인가? 항상 부부에 관한 말씀을 드리면 그런 분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몇 년 전에 가정사역자가 와서 강의를 하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분은 정말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말하기를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가 빨리 죽어도 괜찬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분은 매일 아침마다 사랑을 고백하는 대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매일 아침마다 사랑을 고백하면서 시를 적는 대상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아무리 아내가 사랑스러워도 주님만큼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부가 제일 건강한 부부입니까?

서로를 제일로 사랑하는 부부가 아니라 서로가 주님만을 제일로 사랑하는 부부입니다.

서로에게 영혼의 만족을 누리려는 부부가 아니라 오직 주님에게서 참된 만족을 누리는 부부가 제일 건강한 부부입니다.

--그래서 나의 가장 깊은 영혼의 만족과 기쁨을 오직 주님한분에서 찾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며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절대 이성에게서 하나님과 같은 절대적인 만족과 기쁨을 누리려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성에게서 하나님과 같은 만족을 찾으려 하면 간음의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체스터톤(G. K. Chesterton)이라는 아주 경건하고 보수적인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창가 문을 두드리는 남자는 사실 하나님을 찾고 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아내를 두고도 사창가를 찾습니까? 그 이면에는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참으로 모든 만족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기뻐하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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