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십계명 중에서 육 계명으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나는 어느 누구도 육체적으로 살인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만큼은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마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육체적인 살인만을 살인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형제들에게 대하여 노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보십니다.
또 형제들에 대하여 라가라고 하는 것은 머리가 텅 빈 사람이란 말로서 욕설입니다. 우리나라식으로 말하면 골 빈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욕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보십니다.
또 예수님은 우리 마음속으로 형제들에 대하여 미련한 놈이라고 하면서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보십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내가 사람들에게 원망을 들을 만한 일을 하여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그것도 살인이라고 보십니다.
/그러니까 육체적인 살인만 살인이 아닙니다.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미워하고 것도 살인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일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여러분의 마음가운데 조금이라도 형제나 자매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도 살인의 죄입니다.
--또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이렇게 말씀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 어떤 사람도 마음속으로 미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어느 누구도 마음으로 살인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무관심한 것도 결국 그 사람이 인격을 무시한 살인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마음으로도 미워하지 말고 이렇게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요일 3장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 우리가 이런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웃을 내 몸 과 같이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사랑해야합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삶을 보면 이렇게 미워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지만 얼마나 우리가 마음으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있습니까?
또 우리가 얼마나 많은 말들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또 받고 있습니까?
//한 미디어 매체에서 대학생 621명에게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33프로가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은 살인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또 왜 그런 살인 충동은 느끼게 되었는가를 물었더니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밉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68프로가 나왔습니다. 또 사회에 대한 불만이 14프로, 또 이유 없이 사람이 그냥 싫고 미워서가 7프로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는 지금 살인 예비생들을 키우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우리나라에서 의료 선교를 하고 계시는 존 린턴 박사는 방송에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한국 사람들은 전부 분노하고 있습니다. TV 뉴스에서,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전부 화내는 것뿐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혹시 사람들끼리 서로 부딪히신 적이 있습니까? 그러면 요즘 사람들은 무의식가운데 건드리면 악이 나오고 분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런 세상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합니까?
우리가 오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무엇보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미워하고 분노하는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미워하고 분노하는 마음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마음을 얼마나 잘 다스리며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가인이 아벨을 죽일 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창4장 6절과 7절에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노)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분노하는)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분노하는)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분노하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왜 가인이 아벨을 죽이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가인이 아벨에 대하여 분노하는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 마음속의 분노하는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마음의 분노를 잘 다스릴 수 있습니까?
먼저 내 안에 분노의 정체를 잘 파악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떨 때 우리 마음에 분노가 생깁니까?
내가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입니다.
또 내가 무언인가 열심히 일을 했는데 그 일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 때입니다.
또 사람들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인격적인 모욕감을 느낄 때입니다.
또 무엇보다 말로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을 때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은 나만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상처를 받음과 동시에 나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조건 그렇지 않은 채 하고 분노를 참아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무조건 참아야 한다고 해서 한국인들에게 생긴 병이 화병입니다. 이 화병이 너무 특이해서 1996년 미국 정신과협회에서는 이 화병을 한국인에게만 나타나는 정신질환으로 공인했습니다. 그래서 화병의 영어표기는 ‘Hwabyung’이다. 특히 이 화병은 무조건 분을 참아야 하는 한국의 여성들에게 많이 생기는 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에베소서에 보면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엡5:26)”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무조건 분을 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분을 내어도 죄는 짖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분을 내면 어떻게 됩니까?
오사카 의과대학에서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습니다. "개 한 마리를 네 시간 동안 결박하여 때리면서 잔뜩 성이 나게 만든 후 그 뇌수 가운데서 액을 취하여 검사해 보니 “시안”이란 독소가 다량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양은 개 80마리를 능해 죽일 수 있는 독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람들도 화를 낼 때 피가 독소를 내어 신체조직과 기관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또 의학적인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이 분노하고 화를 내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와서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를 자주 내면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7배가 높다고 합니다. 건강하게 살고 싶으십니까? 화를 너무 자주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화를 잘 내는 것이 조기 사망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화를 잘 내면 우리 영혼이 황폐하게 됩니다. 우리가 화를 내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모세는 단번의 화로 40년 광야생활을 하게 되었고, 또 그 이후에 또 한 번의 화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는 우리가 화를 잘 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야고보서를 보겠습니다.
야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화)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화를 내기는 내되 더디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원하교수님은 화가 날 일이 있으면 먼저 침을 삼키라고 합니다.
또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화나 분을 잘 다스릴 수 있다고 합니까?
우리가 화를 내되 하나님 앞에서 내어야 합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는가를 볼 수 있습니까? 그때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하지 않고 하나님께 분풀이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의 시를 보면 이런 내용이 너무나 많습니다.
시35:1. 1.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7. 그들이 까닭 없이 나를 잡으려고 그들의 그물을 웅덩이에 숨기며 까닭 없이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함정을 팠사오니 8. 멸망이 순식간에 그에게 닥치게 하시며 그가 숨긴 그물에 자기가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
박영돈목사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시편에는 원수에게 저주를 퍼붓는 탄원시가 자주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시인은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라고 간구합니다(시 69:22-23). 아주 악의적이고 파괴적인 분노가 가득한 것 같습니다. 시인의 저주는 점점 극에 달합니다.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공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시 69:27-28).
시인은 악인들이 회개의 은혜를 입지 못하고 계속 죄 속에 살다가 망하도록 내버려두라고 간구합니다.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고 확실히 망하게 해달라는 거지요. 악인에 향한 저주가 절정에 이릅니다. 참으로 끔직한 저주지요. 그런데 이 말씀을 읽으며 속이 후련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를 가장 열불 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그토록 힘들게 하고 거짓과 불의를 행함으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에 큰 피해를 입힌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까지 받으면 우리는 완전히 돌아버리지요.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싶은 마음은 솔직한 우리 내면의 소리입니다. 그런 마음을 느낀다면 하나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잘 아십니다. 그것을 억누르고 포장하느니보다 하나님께 정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낫습니다. 자신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계속 억누를 때 우리는 영적으로 더 피폐해집니다. 그런 분노와 미움을 사람들에게 쏟아내면 화를 좌초하지만 하나님께 그것을 토해내면 힐링을 체험합니다. 그러는 중에 하나님이 우리의 아프고 쓰린 마음을 어루만져 치유하고 싸매십니다.
시편은 불의를 당하는 이가 겪는 원통함과 분함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통 받는 이들의 내면세계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 없이 잠잠하고 용서하라는 상투적인 말을 툭툭 던지는 것만큼 인간을 아무 감정 없는 머신이나 무골위인으로 취급하는 매정함은 없습니다. 시편은 아프고 상한 심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위로와 치유함을 받는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기도가 새로워지게 합니다. 우리의 저주가 단순히 개인적인 원한과 복수심의 표출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에서 불의에 대해 분노하며 그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이 임하기를 탄원하는 차원으로 나아가게 합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또 시56:8에 보면 다윗은 “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고 합니다.
---또 억울해서 울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우시기 바랍니다.
“오주여 나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하고 울더라도 하나님에서 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위로의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모든 분노를 잠재워 주시고, 위로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수 있습니까?
한나의 경우를 보시기 바랍니다. 한나는 자녀를 가지기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녀를 주시기 않았습니다(삼상:5). 또 브닌나가 그런 한나의 마음을 심히 격동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나는 참을 수 없는 억울함과 인격적 모욕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만일 이때 한나가 그런 분노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했다면 엄청난 범죄도 저지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어떻게 했습니까?
한나는 감정대로 브닌나에게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또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여 낙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에게 있는 분노의 감정을 기도로 잘 승화를 시켰습니다.
//한나는 개인적인 아픔과 분노가 있었지만, 그런 분노 속에서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개인적인 아픔과 분노 속에서도 사사시대의 영적인 암울함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에게 아들을 주시면 이 아들을 하나님께 다 바치겠습니다. 이 아들을 통해서 이 사사시대의 영적인 암울함을 해결하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주셨을 때 수송아지를 바쳤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렇게 한나는 자신의 개인적인 아픔과 분노를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승화를 시켰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한나의 아들 사무엘을 통해서 사사시대의 영적인 암울함을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한나에게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심으로 한나의 개인적인 원한도 다 풀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 마음속의 분노를 잘 다스릴 수 있습니까?
단순히 화를 내지 않고 잘 참고 다스리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와 화를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승화를 시켜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억울함과 분노의 눈물 속에서도 나를 울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어야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나를 이런 감옥으로 보냈습니까 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합니까?
감옥에 갇힌 것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분노를 통해서도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심을 믿을 수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분노를 극복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의 분노를 발전시켜 더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가 눈물을 흘린 만큼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답답함을 느낀 만큼 내 마음에 시원함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한 만큼 내 삶에 빛을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분노가 사람을 향하지 않고, 더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뱡향으로 사용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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