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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요한복음

요한복음강해(24)진정한 안식은 무엇인가?(요5:9-18)

by 금빛돌 2023. 9. 23.

 영화 대사에 무엇이 더 중한디라는 대사가 있습니다이것은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신앙생활은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무엇이 더 중요 가를 잘 분별하고 있지 못합니다.

특별히 안식일을 지킴에 있어서 유대인들은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잘 분별하지 못합니다.

십계명에서 4계명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에는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유대인은 안식일에 어떻게 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인가를 평생을 연구했습니다. 또 유대인들이 미쉬나라는 책에서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규례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어떤 목사님이 정리하여 말씀하신 것을 읽어보겠습니다(손재익목사). “실을 꼬는데, 한 줄은 되는데 두 줄은 안 됩니다. 안식일에 900미터 이하는 되는데, 900미터 이상을 가면 안 됩니다. 또 불을 피우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전등도 켜지 말아야 합니다. 안식일에 구덩이에 소를 끌어 내면 안 되고, 함정에 빠진 사람은 사다리와 같은 연장을 가지고 건져내서는 안 됩니다. 머리에 이를 잡는 것은 되지만 벼룩을 잡는 것은 안 됩니다.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안식일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안식일에 버턴을 누르면 안 되기 때문에 안식일 전용 엘리베이터는 자동적으로 모든 층마다 열립니다. 평일 모드로 하면 모든 버턴을 눌러야 하지만 안식일 모드로 하면 버턴을 누를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안식일에 엘리베이트 버턴을 누르는 것도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고 했습니다.

저도 이번이 이스라엘에 가서 보았는데, 토요일 안식일에는 전기 찜기가 음식물도 없이 켜져 있었습니다. 알아보니까 안식일에는 전기 버턴을 누를 수 없기 때문에 안식일이 되기 전 금요일부터 전기 찜기를 미리 켜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전기가 낭비가 됩니까? 그래도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그것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서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본문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예수님의 말씀대로 이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여러분 만일 우리 가운데 38년 동안 낫지 않는 병으로 고생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기도하여 그 사람의 병이 나았습니다. 일어나지도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자지를 들고 걸어갑니다.

그러면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병이 나은 것입니다.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걸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와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38년 된 병이 나아서 자리를 들어 걸어가는 이 사람을 보고 유대인들은 어떻게 말합니까?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유대인들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안식일에 병자가 낫는 것보다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 나은 사람에게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합니다.

여러분 안식일에 병이 낫는 것이 중요합니까? 안식일에 자리를 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까?

당연히 안식일에 병이 낫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자리를 들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 38년 된 병에서 나은 사람이 어떻게 대답을 합니까?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이 사람은 나를 낫게 한 그 사람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해서 자리를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12절에서 유대인들은 “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고 합니다.

그때 13절에서 “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이 사람은 그를 낫게 한 예수님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병이 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이제 이 사람은 유대인들에게 찾아가서 자기를 고친 이가 예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이제 불똥이 예수님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유대인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는 일을 하신다고 하여 예수님을 박해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에 무엇을 하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안식일에는 하나님 아버지도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만일에 안식일에 하나님이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태양이 뜨지 않습니다. 지구가 돌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에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을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어떻게 합니까?

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신 것보다 안식일을 범한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일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안식일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유대인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일보다,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까?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진정한 안식이 무엇인가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자주 하신 말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라는 말씀을 23번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제일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진실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무엇이 진정한 표적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진정한 성전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무엇이 진정한 예배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 본문을 통해서 무엇이 진정한 안식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주장하지만 우리는 지금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대신 예수님께 부활하신 안식일 후 첫날인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토요일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있어서 "안식의 의미는 신약의 주일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을 잘 지키기 위해서도 안식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안식한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일을 쉰다, 중단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평안을 누린다 안식을 누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의 의미를 진정한 안식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먼저 일을 중단한다, 또는 쉰다는 의미로서의 안식의 의미입니다.

첫째, 쉰다는 것은 먼저 육체적인 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천지를 창조하실 때 6일을 일하시고, 마지막 날 쉬셨습니다. 이것에 근거해서 우리도 6일을 열심히 일하고 제7일에 쉬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또 이 세상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 6일을 일하고 7일은 쉬도록 창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 무엇보다 우리가 하는 생업을 중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육체적으로 쉬어야 합니다. 이것을 유대인들은 율법적 규례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일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 규례보다 쉬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쉰다는 것은 믿음으로 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6일 동안 우리는 수고하고 땀을 흘린 만큼 수고의 대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6일 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수고하고 일을 한다 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모든 수고와 노력이 허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6일 동안은 열심히 일하다가 주일 하루를 쉼으로서 하나님 이제 저의 이 산업을 주님 손에 맡김니다. 제가 아무리 수고한다 하더라도 주님이 도와주지 아니하시면 안 됩니다라는 의미에서 우리의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내가 오늘 하루 일을 하지 않더라도 주님께서 대신 이 일을 해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주님을 믿는 마음으로 쉬어야 합니다.

그리고 6일 동안도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이런 정신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더라도 이 산업을 하나님이 도와주지 아니하시면 안됩니다라고 하면서 우리가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면서 우리의 일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의 삶은 서양화가 아니라 동양화가 되어야 합니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동양화는 여백이 있는데, 서양화는 여백이 없습니다.

정말 열심히 사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어느 한 순간도 일 없이는 못하시는 분입니다. 주일 한 시간 예배드릴 시간도 없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평생을 일 만하다가 결국 남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삶의 여백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내 인생에 최선을 다하지만, 그것만으로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최선을 다한 삶 속에서 삶의 여백으로 하나님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노를 젓는 만큼 내 인생의 배가 가는 것도 있지만--내가 가만히 있어도 뒤에서 하나님이 바람을 불어주셔서 그저 가는 삶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 쉬실 때 그냥 쉬지 마시고 믿음으로 쉬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여러분들의 일들만 아니라 염려도 쉬어야 합니다. 이날에 일만 쉬시고 염려를 쉬지 않으시면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모든 일만 아니라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믿음으로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일에서 쉬고 염려에서 쉴 동안 하나님이 우리 대신 일해주시는 것을 경험 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쉰다는 것은 일하지 않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기억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창조 때 안식을 기억하여 일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명기에 보면 같은 출애굽을 기억하여 일하지 말라고 합니다. 출애굽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서에서는 우리에게 거저 베풀어주신 구원사건을 기억하고 안식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날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에게 공짜로 베풀어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주일 일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공로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공로를 쌓기 위함이 아니라--우리에게 공짜로 주시는 그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또 우리가 주일에 일을 하는 것도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성가대 봉사나 주일학교 봉사가 내가 일한 어떤 공로로 여겨지면 그 봉사를 하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봉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은혜가 중요합니다. 내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그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일을 해야 합니다. 내가 많은 헌금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내 공로가 아니라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주일은 우리가 무엇보다 내 수고와 봉사를 기억하는 날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내게 주시는 그 은혜를 기억하고 누리는 날입니다.

--그래서 아무 공로 없는 우리에게, 일하지 않는 우리에게 거저 베풀어주신 그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십자가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리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일을 중단한다, 쉰다는 의미에서 안식의 의미를 말씀드렸습니다.

2. 두 번째로 평안을 누림으로 안식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 그냥 쉬는 날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주일 쉰다고 해서 교회도 쉬고 집에서 하루 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안식한다는 말이 쉰다는 말도 되지만,,평안을 누린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이 주일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진정한 안식과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어떤 교인은 인간적으로 너무 힘이 드니까, 주일에 예배도 드리지 않고, 산이나 들로 가서 안식을 누리려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하여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자연이 우리에게 조금의 안식은 주지만 진정한 안식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우리 영혼의 참된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평안을 누림으로 안식할 수 있습니까?

첫째, 예배를 통해서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진정한 영혼의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그 힘으로 우리가 일주일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일 예배에 은혜를 누리지 못하면 월요일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전혀 마음의 평안과 안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예배 시간에 정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레위기에 보면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1:1)”라고 합니다. 보통 우리는 성막이라고 하는데, 왜 여기서 회막이라고 합니다. 회막에서 회자는 모일 회, 또는 만날 회자입니다. 그래서 회막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만나는 곳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예배는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이 단순히 설교를 들으러 오는 시간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배의 모든 순서 순서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장로님의 기도를 통해서 --또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회중의 찬양을 통해서--또 성가대의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며--또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내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오주님 이 예배시간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아니하시면, 저는 도무지 한 주간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진정한 영혼의 안식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성도 간의 교제를 통해서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성도간의 진정한 교제를 통해서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3)우리는 치유의 사역을 통해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안식일에 유대인과 예수님과의 논쟁이 나옵니다--그것은 주로 안식일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그것을 어기면 안식일을 어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 가운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굳이 안식일만을 골라서 예수님은 일을 하셨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날 38년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유대인에게는 정말 불괘한 일이었습니다--안식일에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하는데--예수님은 안식일에 굳이 병자를 고치는 일을 하셨습니다-예수님이 유대인에게 박해를 받은 것도 이것때문입니다--=생각해보십시오--예수님도 이런 유대인의 안식일을 아셨습니다. 그러면 괜한 논쟁을 피하시고금요일 저녁에 병자를 고치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굳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습니다----왜 그렇습니까? 진정한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하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이 안식일의 성취가 바로 주일입니다. --

--그러니까 즉 안식일의 성취로서 주일은 단순히 무엇을 하지 않는 날이 아닙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주일을 지켰습니다--그때 왜 어른 들은 이 날 무엇 하지 마라 무엇 하지 마라--이것만 말하는 가-이것이 불만이었습니다--그래서 내가 어른 이 되면 이날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가르켜 주어야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안식일을 보내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주일에 무엇을 해야합니까?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해야합니다--무엇보다 치유사역을 해야합니다..

----이 가운데서 육체적인 질병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그 질병 때문에 참 안식안을 누리지 못합니다--우리는 주일에 무엇보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어야합니다-

=또 그것뿐만 아닙니다--우리에게 마음의 상처와 병들이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우리 안에 가정의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들로 마음의 상처가 난 사람들이 많습니다--예수님당시 안식일에 베데스다 못가에 누워 있는 38년된 병자는 오늘 우리현대인의 모습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분명 안식일입니다. 그런데 38년된 병자는 그의 병 때문에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38년 된 병자의 문제가 단순히 병 때문만이 아닙니다. 한번씩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서로 경쟁하면서 그 물에 들어가면 낫는다고 합니다-그런데 지금 이 사람은 생존경쟁에서 뒤쳐지고 있습니다. 또 이 사람의 문제는 물이 동할 때 아무도 그를 그 물속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소외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주일 교회에 나왔지만 교회 안에서도 소외를 느끼고 있는 모습과 같습니다. 여러분 주일은 어떤 날입니까? 바로 38년된 병자와 같은 그 한 사람을 찾아가는 날입니다. 그 마음의 병들을 위로하고 싸메주고 치유해주는 날입니다. 또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날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오늘 만의 일이 아닙니다--좁은 의미에서 오늘이 주일이지만--모든 날이 다 주의 날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이 날 만 아니라 모든 날 동안에 노동과 쉼의 조화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아무 일하지 않는 자에게 거저주시는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우리의 삶에 여백이 있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노력하지만 나머지를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날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참된 하나님의 안식과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우리 가운데 마음이 상한 자 고통당하는 자들을 치유하고 돌아보면서 참된 하나님 안에서의 안식을 주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진정한 안식을 누리면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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