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성경연구/욥기

욥기강해(4)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욥4:1-11)

by 금빛돌 2023. 6. 30.

이 세상에선 단 한 사람이라고 내 슬픔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욥이 2장후반부에 보면 욥을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이 찾아옵니다ㅡ

그래서 욥기211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2:11.그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이 모든 재앙이 그에게 내렸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지역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서로 약속하고 오더니

지금 욥의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래서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가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13.밤낮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

여기서 욥의 친구들은 소리 질러 웁니다. 그리고 밤낮 7일동안 욥과 함께 땅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욥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욥의 친구들은 정말 욥의 고통을 참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진정한 위로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항상 위로란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위로가 무엇입니까?

함께 울어주는 것입니다.

함께 아파해주는 것입니다

함께 같이 슬퍼해 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2장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4장부터 37장까지 욥의 친구들의 지루하고 끈질긴 말들이 나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읽는 것도 어려운데 이 말을 듣는 욥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 왜 욥의 친구들의 지루한 말들이 성경에 기록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그 첫번째 말로서 엘리바스의 말을 살펴보겠습니다.

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데만은 에돔 족입니다. 이곳에는 지혜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데만에 지혜자들이 많은 가운데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먼저 대답합니다.

2.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싫증을 내겠느냐,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이것을 공동번역으로 읽으면 더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2. 누가 자네에게 말을 건네려 한다면, 자네는 귀찮게 여기겠지.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일세.

그리고 계속해서 공동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3. 여보게, 자네는 많은 사람을 지도하였고 손에 맥이 풀린 사람에게 용기를 주었었네. 4. 자네의 말은 쓰러지는 사람을 일으켰고 흔들리는 무릎에 힘을 주었었지. 5. 그런데 자네가 이 지경을 당하자 기가 꺾이고 매를 좀 맞았다고 이렇듯 허둥대다니, 될 말인가? 6. 자신만만하던 자네의 경건은 어찌 되었고 자네의 희망이던 그 흠없는 생활은 어찌 되었는가?

여러분들은 이 말이 욥에게 위로가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사실 지금부터 시작하는 욥의 친구들의 말은 그동안 욥이 겪어 왔던 그 모든 고통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불을 지피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로가 아니라 조롱입니다.

그래 욥아 그동안 네게 어려움이 없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니. 그런데 고작 이런 고난을 격었다고 기가 죽어 있구나, 그렇다면 그동안 네게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던 것은 어디 갔느냐, 그동안 네가 하나님께 품어왔던 그 소망은 과연 어디 갔느냐 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엘리바스는 욥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말을 합니다.

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생각하여 보라는 말은 율법을 생각하는 말입니다. 지금 엘리바스는 고난당하는 욥에게 율법을 생각하여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율법에 보면 죄가 없이 망한 자가 누구 있었느냐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죄가 없이 망한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네게 지금 이런 고난을 당하는 것은 너희 죄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직한 자의 끊어짐은 어디 있는가라고 합니다. “정직한 자가 이렇게 끊어지고 넘어지는 일은 없다그러니까 지금 네가 이렇게 넘어져 있는 것은 네가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8.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여기서 보시면 내가 보건대 라고 합니다. 지금 엘리바스는 율법을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난 다음에 자기가 보는 대로 말을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볼 때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둔다고 합니다. 이 말도 무슨 말입니까? 욥아 그동안 너는 악으로 밭을 갈았고, 독을 뿌리는 자였다, 그래서 그것을 지금 그대로 네가 거두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8절에서는 분명히 내가 보건대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9절에서는 자신이 보는 것이 마치 하나님이 보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욥에게 네가 이렇게 된 것은 다 하나님께 벌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네가 악을 갈고 독을 뿌렸기 때문에 너는 하나님의 입 기운에 의해서 멸망하고 하나님의 콧김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말입니다. 그냥 내가 볼 때는 이렇다 라고 말하면 됩니다. 그런데 엘리바스는 자신이 보는 것을 마치 하나님이 보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생각을 마치 하나님의 생각인냥 말하고 있습니다.

10절과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0. 사자의 우는 소리와 젊은 사자의 소리가 그치고 어린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11. 사자는 사냥한 것이 없어 죽어 가고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니라

여기서 사자는 욥을 가리킵니다. 또 어린 사자는 욥의 자녀들을 가리킵니다. 또 암사자는 욥의 아내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욥아 네가 마치 사자와 같이 용맹하게 울었지만 이제 너희 사자와 같은 소리가 그쳤다. 또 네 잔들을 모두 이가 불러졌다. 너는 사냥한 것이 없는 사작와 같이 죽어가고 있고, 네 아내의 자녀들을 다 흩어져 죽었구나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혜가 가장 많았다고 하는 엘리바스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엘리바스는 율법적인 사고방식에 사로 잡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인과응보입니다. 권선징악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악하게 살면 멸망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절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시편 1편에서도 하나님은 분명히 의인은 형통하게 하시고, 악인을 망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에서도 율법에 순종하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모든 일에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욥에게 맞는 말입니까? 맞지 않습니다.

욥기 31장을 보면 욥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31:1.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욥은 자신의 눈과 약속하였습니다. 그래서 욥은 다른 처녀에게 눈도 돌리지 않기로 눈과 약속하였습니다. 그래서 욥은 눈으로도 예쁜 여자를 바라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31:9. 만일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문에서 숨어 기다렸다면

31:10. 내 아내가 타인의 맷돌을 돌리며 타인과 더불어 동침하기를 바라노라

욥은 마음으로 음란의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욥은 정직했습니다.

31:5. 만일 내가 허위(거짓)와 함께 동행하고 내 발이 속임수에 빨랐다면 6.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

욥은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또 욥은 가난한 자나 과부와 같은 사람을 돌아보는 삶을 살았습니다.

31:16.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나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 17. 나만 혼자 내 떡덩이를 먹고 고아에게 그 조각을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18.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

또 욥은 부자라도 절대 재물이 소망을 두지 않았습니다.

31:24. 만일 내가 내 소망을 금에다 두고 순금에게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다면 25. 만일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다면 --28. 그것도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

여러분 과연 우리가 이 세상을 볼 때 인과응보의 법칙으로면 세상을 볼 수 있습니까? 권성징악의 법칙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 과연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사야는 톱으로 베여서 죽임을 당했습니까? 바울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수많은 고난을 받았습니까? 예수님께서 무슨 죄를 지었기에 고난을 받았습니까? 말씀대로 살면 분명히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말씀대로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서도 수많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대 이 세상을 단순히 인과응보로만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여인이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이혼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때 당신이 잘못한 것이 있기에 이혼을 당했겠지, 네가 남편에게 더 잘했어야 되라는 말은 절대 절대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에게 너 기도안했지 더 기도해야되 기도안해서 이런 어려움을 당한 거야하고 하는 말도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앞으로 계속 보겠지만 맞는 말이 얼마나 틀리 말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엘리바스의 말은 하나도 맞지 않는 말이 없습니다.

너는 정직 해야되 악을 심지 말아야 해 그러면 너는 망해라는 말은 절대 틀린 말은 아닙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정말 그 사람에게 맞는 말이냐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제자들이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면서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때문 입니까?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조차도 인과응보의 관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예수님은 인과응보의 입장에서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주위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것은 당신의 죄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기대하십시오 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악이 변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고난이 변하여 축복이 되게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고통이 변하여 감사가 되게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대 내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인 것처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과응보의 입장에서만 사람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들이 즐비합니다.

답이 없는 고난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도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하실 일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절대 사람들에게 기대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그 사람을 절대 하나님처럼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단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내 슬픔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을 절대 죽지 않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욥은 이 세상에 단 사람도 그를 이해해 주지 못했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그의 슬픔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그래도 욥이 어떻게 살 수 있었겠습니까?

욥기를 보면 욥은 장차 올 구속자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또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 구속자가 이미 왔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단 사람이라도 우리를 이해해 주지 못할지라도 단 사람 예수님은 우리를 다 이해해 주십니다.

예수님 한분 만은 우리의 모든 슬픔을 다 이해해 주십니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슬픔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으며 그 사람을 절대 죽지 않습니다. 그 한 사람이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또 그 한 사람이 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