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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느헤미야

느헤미야강해(14)중단 없는 개혁(느13:1-31)

by 금빛돌 2023. 4. 14.

해당화(두물머리)

느헤미야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안락한 페르시아에서 얼마든지 자신의 영광을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벽이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왕에게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성이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고 택한 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서는 단순히 예루살렘 성벽만을 건설하는 책이 아닙니다. 무너진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이 어떻게 회복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마지막 느헤미야서를 보면서 다시 한번 더 우리 마음에 떠올려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입니다. 하나님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 자녀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마지막에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랍니까?

단순히 저 사람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살아온 사람이다 는 평가만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너무나 허무한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산 사람이는 평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삶이 정말 영광스러운 삶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가 다시 기도하는 동기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까? 소원이 있습니까?

하나님 오늘 이 기도회를 통해서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3:1. 그 날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여기서 그 날에란 느12장에서 성벽봉헌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벽봉헌예배가 어떻게 드려졌는가를 보았습니다.

1243절에 12:43.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벽봉헌예배를 드릴 때 모든 무리들이 심히 즐거워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로 즐거워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기쁨의 반응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자들만 아니라 부녀와 어린 아이들도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즐거워하는 소리가 담장 밖을 넘어서 소리가 멀리 들렸습니다.

그런데 그 날에 또 느헤미야는 무엇을 합니까? 1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1절입니다.

13:1. 그 날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우리 같으면 찬양집회를 하면서 온 교인들이 들떠서 함께 기뻐하고 기뻐한다면 그것으로 끝을 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모두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가운데 또 백성들에게 무엇을 들려줍니까?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들려줍니다.

왜 이렇게 하였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감정적으로 기뻐서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을 돌려드려도 결국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에게 영광이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흥 뒤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따란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부흥이 먼저겠습니까? 아니면 부흥이 먼저겠습니까?

부흥이 먼저 일어냐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흥이 일어나지 않으면 사람들은 절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부흥이 무엇입니까?

부흥이란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런데 만일 부흥이 없이 개혁이 가능하겠습니까?

여러분 부흥이 없이 개혁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지 않고는 절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하지 않습니다. 저도 사람들에게 쫓아다니며 아무리 성경공부를 하자고 해도 잘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부흥이 먼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일이 먼저 일어나기를 바랍나다.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의 회복이 먼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만일 부흥을 통해서 하나님으로 기쁨이 회복이 되면 이제는 반드시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개혁이 일어나야 합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결국 남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모세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낭독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낭독하는 중에서 신명기의 기록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암몬과 모압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2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2. 이는 그들이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이것은 신명기 23장의 3-6절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3.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만이 아닙니다. 4절부터 보면 느헤미야가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보니 도비야가 다시 하나님의 성전에서 큰 방을 차지고 있는 일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도비야가 어떤 사람입니까? 성벽을 건설할 때 제일 방해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하나님의 성전에 큰 방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도비야가 왜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성전에 큰 방을 차지하였겠습니까?

이것에 대해서 4.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의 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전의 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전부터 도비야와 연락을 주고 받는 친한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절과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 그 때에는 내가 (페르시아로 돌아가서)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느니라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이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7.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다시 돌아와서)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만든 악한 일을 안지라

여기서 보시면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해서 하나님의 성전에 방을 만든 일을 악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8절과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8.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9. 명령하여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놓았느니라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0.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또 느헤미야가 알보니까 제사를 맡은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는 일이 있었습ㄴ다. 그래서 제사의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예배 시에 노래를 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가 일하는 밭으로 도망하는 일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왜 예배를 맡은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유다 사람들이 또 다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레위 사람들과 예배시간에 노래하는 자들이 다시 그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도망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앞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부흥이 있을 때 유다사람들이 하나님께 약속을 한 일이 있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십일조를 온전히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떠났던 레위사람들을 돌아오게 했습니다. 또 안식일을 잘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또 자녀들을 불신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느헤미야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 모든 것이 다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또 레위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서 도망하였습니다. 이 말은 또 다시 예배가 제대로 드려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어떻게 합니까?

11. 내가 모든 민장(지도자)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12.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그래서 백성의 지도자들을 꾸짖어서 다시 온 유다 사람들이 십일조를 드리게 합니다.

그리고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4.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

여러분 이 일이 무슨 일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십일조를 드리게 한 일입니다. 그래서 다시 예배에 집중하게 한 일입니다.

15절에 보면 또 유다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17절에 “17.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라고 합니다.

그리고 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2. 내가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여기서도 이 일이 무슨 일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식일을 지키게 한 일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식일을 지키게 한 일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껴주시옵소서 라고 느헤미야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23절에서는 유다 사람들이 불신 결혼하는 일이 다시 있었습니다.

그래서 27절에 “27.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고 합니다.

그리고 30절에 보면 “30. 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3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1.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여기서도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여 달라는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것에 대해서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라고 합니다.

이것은 느헤미야의 마지막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느헤미야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드리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기도를 드리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남은 것은 우리가 이룬 꾼 업적이 아닙니다.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체험했느냐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마지막 남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 종말 때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어떤 기도를 드립니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평생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것을 기억하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것에 대하여 나에게 복을 내려주시옵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우리가 평생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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