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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느헤미야

느헤미야강해(10)회개는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느9:1-6)

by 금빛돌 2023. 2. 17.

느헤미야서는 단순히 성벽만을 건설하는 책이 아닙니다. 무너진 마음을 회복시키는 책입니다. 무너진 영혼을 회복시키는 책입니다. 그래서 부흥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부흥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부흥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었습니다. 성벽을 다 건설하고 난 다음에 5일 만에 수문 앞 광장에서 모여서 말씀 듣기를 청했습니다. 억지로 성경을 공부하자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 스스로 말씀을 듣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를 청했습니다.

그래서 71일에 모여서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새벽부터 정오까지 일어서서 6시간 동안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들 가운데서 회개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평양대부흥운동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평양대부흥운동이라고 하면 단순히 회개의 역사가 먼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회개의 역사가 있기 전에 일주일 동안 평양 장대현교회와 다른 교회가 연합으로 모여서 사경회를 했다고 합니다. 제가 어릴 때도 부흥회라고 하지 않고 사경회를 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사경회는 지금 우리가 보는 부흥회와는 다릅니다. 사경회는 일주일 동안 전체 교인들이 성경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인천에 어느 교회가 지금도 사경회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경회 때는 성경책을 한두권씩 공부를 합니다. 그래서 평양대부흥운동이 있기 전에 먼저 장대현교회에서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를 오전에 3시간 동안 읽고 사경회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는 또 전도하고 저녁에는 또 말씀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말씀 사경회를 하던 중에 그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길선주 장로님이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회개로부터 시작해서 회개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회개의 역사로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느헤미야서에서나 우리나라에서 부흥 운동이 있기 전에 제일 먼저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에게도 부흥이 있기 전에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청년들 사역을 할 때도 제일 먼저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주 모일 때마다 몇 시간씩 성경을 강의했습니다. 그리고 여름철이 되면 78월에 매주 목요일에 4시간씩 앉아서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청년들 간에 말씀 안에서 교제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사모하는 청년들이 하나씩 모여들기 시작해서 청년회 모임 방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9:1.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그달 스무나흗 날은 724일입니다. 71일에 나팔절에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하루에 6시간씩 말씀을 듣고 깨닫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후에 지도자들이 또 다시 말씀을 듣고 깨닫는 가운데서 715일에 초막절을 지키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 데만 그치지 않고 715일부터 일주일 동안 721일까지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8일째에 성일을 지켰습니다.

8:18. 에스라는 (초막절) 첫날부터 끝날까지(715-721)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초막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722)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여기서도 보면 일주일 동안 초막절 행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였습니다. 그리고 722일에 초막절의 모든 행사가 끝이 나고 하루를 쉬고 724일에 또 다시 이스라엘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724일은 어떤 절기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또 누가 모여라고 해서 모인 것도 아닙니다. 71일부터 거의 한 달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듣고, 또 깨닫고 하는 가운데서 다시 모여서 금식하고 있습니다.

724일은 오늘날로 말하면 월요입니다. 여러분은 월요일에 무엇을 하십니까? 보통 주일에 하루 종일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보고 나면 월요일에는 말씀을 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절기도 아닙니다, 성일도 아닙니다. 주일도 아닙니다. 또 어떤 행사가 있는 날도 아닙니다.

그런데 724일에 모였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또 이 날에 3절에 보면 “3.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고 합니다.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에 그 제자리에 서서 또 율법책을 낭독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율법책을 그냥 읽었습니다. 우리도 성경을 교독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724일에 또 하루 세 시간 성경을 읽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 때문입니다. 이것을 묵상이라고 합니다. 묵상이라는 말이 조용히 말씀을 생각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묵상이라는 단어(하가)는 사자가 먹이를 움켜쥐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우르릉거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31:4.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하가) 때에-”하는데 여기서 으르렁거릴 때가 하가입니다. 이때 낮에는 독수리가 먹이를 훔치려고 합니다. 또 밤에는 하이에나가 먹이를 훔치려 합니다. 그래서 먹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밤낮 으르릉거리는 것이 하가즉 묵상입니다.

/저는 요즘에 시편 1편의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주야란 먼저 하루 24시간입니다. 밤낮입니다. 주일이나 말씀을 준비하는 시간만 아니라 하루 24시간을 말씀을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요즘에는 유튜브를 통해서 언제든지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월요일에 산에 갈 때도 하루 종일 산에서 말씀을 듣습니다. 또 밤에 잠을 잘 때도 말씀을 들으면서 잠을 잡니다. 이번 주에는 아가서강해를 계속해서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말씀을 들으니까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이상하게도 더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그래서 주일에 회개기도를 할 때 매주 하는 기도는 하나님 내가 이번 한 주간 동안 더 많은 시간동안 말씀을 묵상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은 빨리 주일 예배 시간이 지나갔으면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은 하루 종일 말씀을 들어도 또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이 그렇습니다. 한 달 동안 말씀을 들었는데, 더 갈급해서 또 모여서 말씀을 입으로 낭독하고 있습니다.

또 말씀을 하루 종일 계속해서 들으니까 자연스럽게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삶 가운데서 내가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도 거의 한 달 동안 말씀을 듣고, 또 세 시간씩 일어서서 말씀을 낭독하니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 회개였습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에 내 안에서 들어왔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회개합니까?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먼저 모든 이방사람들과 절교하였습니다. 이것은 않는 사람들과 사귀지도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를 포함해서 거의 100년 동안 이방 바벨론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의 삶 가운데 이방의 문화가 들어오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깨닫게 되는 것이 우리가 매일 듣고 보는 문화는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가 됩니다. 제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는 복수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잠시 볼 때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수하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신나는 일인가에 대해서 드라마를 통해서 매일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만일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이 무엇이든지 끊어야 합니다. 그런데 회개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그래서 3절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회개할 때 제일 먼저 한 것이 성경낭독이었습니다. 어떤 설교를 듣고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고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회개란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을 향한 것입니다. 그래서 2절을 보시면 그들은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누구를 향해서 회개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조상들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의 회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회개에 대한 메시지를 들으면 마치 아버지에게 혼이 나는 아들과 같습니다.

아버지에게 혼이 나는 아들은 더 이상 어떤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은 3시간 율법책을 낭독하고, 3시간 자신의 죄와 조상들의 죄를 자복하는 일만 하지 않고 회개와 동시에 하나님 여호와를 경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3.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3시간)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여러분 우리가 만일 3시간 동안 죄만을 자복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우울해 주저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죄를 자복함과 동시에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무엇이 여호와를 경배하는 것입니까?

경배는 기도와 찬양입니다. 그래서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기도회를 하는 모범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말씀이 있어야합니다. 또 그 다음에는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회개가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부르짖음이 있어야합니다.

어떤 부르짖음이겠습니까?

하나님 내 허물과 죄를 용서해주옵소서 우리 허물과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여러분 어떻게 단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이런 기도를 세 시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들은 기도회를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기도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회를 하고 난 후에 어떨 때는 공허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내가 기도회를 인도할 때입니다. 그러면 공허합니다.

지금 이들이 왜 단 앞에 나와서 기도합니까?

기도회를 인도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허물과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은밀한 중에 보이는 하나님께 부르짖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고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왜 찬양하겠습니까?

하나님께 자신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요일19절에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고 합니다.

우리는 마치 요8장에 나오는 여인과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여인을 정죄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돌로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 물러갑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노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회개할 때 반성만 아니라 구체적인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백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해도 용서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회개의 삶을 살수 있습니까? 용서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하나님께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도 회개와 함께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찬양이 있기를 바랍니다.

만일 우리에게 회개가 없는 찬양은 너무 가벼운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만 있고 경배와 찬양이 없으면 우리가 다시 새롭게 살아갈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8장에서도 죄 때문에 우울해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죄로 인해 우울해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기도와 찬양으로 더욱더 힘을 내어서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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