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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느헤미야

느헤미야강해(9)진정한 부흥이란 무엇인가?(느8:13-18)

by 금빛돌 2023. 2. 10.

유다백성들이 52일만에 성벽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마음의 성벽을 건설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학사 에스라를 초청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랬을 때 그들에게 회개의 눈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라와 느혜미야와 지도자들은 이 날은 여호와 성일이니 울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힘이란 힘 또는 능력이는 말도 되지만, 피난처, 산성이라는 말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무엇이 우리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닙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피난처이고, 산성입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어떻게 말합니까?

3: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여러분 그래서 여호와로 인하여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안에 죄가 들어옵니다. 또 사탄이 들어옵니다. 그러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할 때 우리 안에 죄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사탄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함으로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8장은 우리에게 진정한 부흥이 무엇인가를 제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흥이라고 했을 때 여러 가지 의미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부흥이란 수적인 증가를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도행전에서 날마다 믿는 자를 더하여 가신다는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는 수적인 증가가 아닙니다. 구약성경에서 특별히 느헤미야서에서 부흥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8:13. 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

71일에 유다백성들은 수문 앞 광장에서 모여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참 맛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회개와 찬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도 어떻게 합니까?

이제는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율법의 말씀을 더 밝히 알고자 하여서 학사 에스라에게 모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지도자들의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이들은 백성들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밝히 알고자 하여 에스라에게로 모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이제는 다 알았다고 하는 순간부터 영적인 교만이 생깁니다. 그래서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만 말씀을 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이렇게 말하였거니와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여러분 저는 지금도 시간이 나는 대로 말씀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어린 목사님들 중에서 탁월하게 성경을 가르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에 설교 준비를 하는 시간 외에 거의 모든 시간마다 그 목사님의 강의를 듣고 또 듣습니다. 그래서 깨닫게 되는 것은 내가 어떤 말씀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 절대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저 지난 주간에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 전에 무엇을 하셨는가를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 전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시고 심심하게 계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심하셔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심심하게 계신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이 서로가 서로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요17장에서 있습니다. 요한복음 175절에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창세 전에 서로가 서로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계속해서 아버지가 나를 영화롭게 하고, 또 내가 아버지를 영로롭게 한다고 합니다.

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그러면 여러분 서로가 서로를 영화롭게 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 말은 서로가 서로를 기뻐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너무 따분하고 심심하게 계신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기뻐함으로 서로가 서로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당신들끼리 누리셨던 그 기쁨을 우리 인간에게 나누어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처음 만드신 동산을 에덴동산이라고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은 기쁨의 동산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다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그 기쁨을 나누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것은 정말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의 흘러넘치는 기쁨을 나누어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의 흘러넘치는 기쁨을 나누어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죄가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으로부터는 오는 기쁨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람들이 왜 마약을 합니까? 재벌 집의 3세들이 왜 마약을 합니까? 왜 유명한 연예인들이 마약을 합니까?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원초적인 기쁨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구원이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차원에서 보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란 인간적인 열심으로 신을 기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3864. 주 예수여 완전한 주의 사랑 나 받기를 원합니다 그 사랑이 내 맘에 충만하여 날 기쁘게 하옵소서 <후렴> 주 예수여 충만한 은혜 내 영혼에 부으소서 주 예수만 나의 힘 되고 내 만족함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독교는 절대 율법이 아닙니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까?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입니.

그래서 여러분 이제 나는 더 이상 말씀에 대해서 배울 것이 없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밝히 알아감으로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이 더 충만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유다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밝히 알고자 하여서 에스라에게 모였는데 그들이 말씀을 공부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되었습니까? 14절입니다.

14. 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였고

율법을 보니까 모세 율법에 이스라엘 자손을 7월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초막절 절기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 40년간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살았던 때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은 유대 종교력으로 715일부터 일주일 동안 거행되었습니다(23 : 16). 이 일주일 동안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함으로 광야 생활을 기념하였습니다(23:33-43 ; 16 :13). 이런 초막절 규례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었는데,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거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7절과 18절을 보면 “17.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18.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초막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고 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진정한 부흥이란 무엇입니까?

첫째, 진정한 부흥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흥이란 내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이 충만한 것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서를 통해서 본 부흥이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지금 온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6시간 동안 듣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유다백성들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밝히 알고자 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자 했습니까? 단순히 지적인 호기심때문이 아닙니다 . 말씀대로 순종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유다 백성들의 지도자들은 에스라를 통해서 말씀을 더 밝히 보니까 지금이 72일인데, 715일부터 초막절을 지키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말씀을 깨닫고 지금 그들이 우선으로 해야 할 말씀을 즉각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진정한 부흥입니까?

우리가 단순히 열심히 성경공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단순히 새로운 말씀을 깨닫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내가 할수 있는대로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부흥입니다. 1907년도 평양 대부흥이 있을 때 그들은 즉각적으로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의 물건을 도둑질했으면, 그것을 고백하고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미워했으면 회개하고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도 있듯이 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깨닫는데만 그치지 말고, 한 가지라도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았을 때 진정한 부흥이란 광야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을 짓고 일주일을 보내라고 합니까? 단순히 캠핑을 즐기 위함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서 초막을 짓고 생활하던 것을 몸으로 생각하기 위함입니다.

이번에 노회에서 가는 이스라엘 성지순례에서 제일 가고 싶은 곳이 유대 광야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스라엘을 갈 때마다 유대 광야를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유대 광야란 우리가 보는 그런 광야가 절대 아니라고 합니다. 유대 광야란 인간의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까? 한 순간도 하나님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자인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키면서 그들도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까? 그들을 더욱더 낮추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살 수 있고, 순종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 신83절에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살 수 있는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초막절을 지킨다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4236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 나와서 예루살렘 곳곳에 초막을 치고 일주일을 생활한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광야의 이스라엘을 다시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부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다시 광야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초막절을 지키지 않더라도 이런 광야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또 이 말씀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진정한 부흥이란 하나님과의 신혼 때의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초막절은 광야를 기억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지서를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를 하나님과 신혼의 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2.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이지웅목사).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주님과의 첫 사랑이 없이도 열심히 교회를 봉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과의 첫 사랑이 없이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너무나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첫 사랑을 회복하는 진정한 부흥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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