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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사도행전

사도행전강해(30)무엇이 더 중요한가?(행11:1-4,17-18)

by 금빛돌 2022. 9. 23.

성주 벽진면에서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와 그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소식이 예루살렘에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여러분 복음이 유대인만 아니라 이방인인 고넬료의 가정에도 전파되었다면 칭찬할 일입니까? 아니면 비난할 일입니까? 당연히 칭찬할 일입니다.

그런데 2절을 보시면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두고 예루살렘에 있던 할례자들이 비난합니다.

여기서 할례자들이란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를 믿더라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을 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비난하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반대한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여기서 비난하다고 하는 것은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상대방을 격력하게 비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할례자들이 베드로에 대해서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비난했습니까?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할례자들은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이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어떻게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구약성경에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는 절대 식사하지 말아야한다는 율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베드로가 이방인과 식사를 했다는 것을 가지고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비난합니까? 그 이유는 이것이 당시 랍비들에게서 내려오던 전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만 아니라 그들에게 내려오는 전통들이 있습니다. 그 전통에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는 절대 식사하지 말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왜 이방인과 식사를 했느냐를 가지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베드로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무엇이 더 중요한지 덜 중요한지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것이 없습니까? 정말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신경을 쓰지 않고,

인간이 만든 율법적인 규칙을 더 중요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지 덜 중요한지를 구별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형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2316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22: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에 계신 하나님)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헌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바리새인들은 성전에 계신 하나님으로 맹세하면 굳이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에 있는 금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전 있는 금이란 하나님을 예배할 때 드려지는 헌금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헌금이 중요합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보다 헌금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맹세하면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헌금을 가지고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그 다음 절에서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3: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에 계신 하나님)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헌금)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3:19.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중요하냐) 그 예물(헌금)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에 계신 하나님)이냐

여러분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까? 아니면 우리가 드리는 헌금이 더 중요합니까?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섬기는 형식이 더 중요합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형식보다 당연히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형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찬양할 때 손을 어떻게 들어야합니까?

어떤 사람은 손을 들지 말아야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손을 더 높이 들어야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무엇이 중요합니까? 손을 들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의 손입니다. 얼마나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경건하고 거룩한 예배시간에 절대 손을 들지 말아야한다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또 반드시 손을 들어야한다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예배시간에 박수를 치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교인들이 찬양에 너무 은혜를 받아서 저절로 박수가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분이 왜 예배시간에 박수를 치느냐고 했습니다.

박수를 치느냐 치지 않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너무 기뻐서 박수가 나온다면 더 크게 박수를 쳐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이 없이 무조건 박수를 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박수를 치느냐가 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을 기뻐하느냐 입니다.

여러분 이방인인 고넬료가 예수를 믿는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이방인인 고넬료와 식사를 했느냐가 중요합니까?

이방인인 고넬료가 예수를 믿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렇게 이방인 고넬료가 예수님을 믿은 것보다 이방인과 식사를 했다는 것 때문에 비난한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여러분 여기서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운 것은 없습니까?

옛날의 베드로였다면 어떻게 반응했겠습니까?

화를 내었을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힘이 들게 복음을 전하다가 왔는데, 왜 너희들은 나를 알아주지 않느냐 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는 전혀 화를 내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베드로는 오직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성령 충만함으로 예수님의 온유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어떻게 된 일인가에 대해서 차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5-16절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자신이 본 환상과 어떻게 고넬료를 만나게 되었는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고넬료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게 되었는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성령)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그리고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것보다 왜 그들과 식사를 했느냐를 가지고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비난했던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을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고 합니다.

예수님은 마12장에서 상한 갈대도 걲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라고 합니다. 이때 상한 갈대는 문맥상으로 보면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왜 병자를 고치느냐를 가지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도 상한 갈대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다투지도 않고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하루 몇 천 명씩 예수님에게 돌아오는 것만 성령 충만이 아닙니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도 성령 충만 입니다.

그래서 그들로 잠잠하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도 성령 충만 입니다.

우리도 성령이 충만하여 더 온유하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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