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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빌립보서

빌립보서강해(18)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빌3:17-21)

by 금빛돌 2021. 11. 6.

이 빌립보서는 계속해서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기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 때문에 기뻐하고 기뻐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쁨을 강조하고, 또 그리스도 때문에 기뻐하던 바울이 오늘 본문에 보면 눈물을 흘리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18절입니다.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사도바울에게 눈물을 흘리게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여러 사람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여러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있고,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삶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습니다. 또 이런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첫째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오직 자신의 유익과 욕심만 체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사람들은 가리켜 저희의 신은 배요라고 합니다.

여기서 배라는 말은 육체의 욕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한국기독교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한국 기독교인들은 매우 이기적이며 자기만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자기 배만 채우며 살아가는 것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기 배만 채운다”는 말은 자기의 유익과 욕심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상처가 나도 괜찮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욕심만 채우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보면 이 사람의 신(우상)은 오직 자신의 배 즉 육체의 욕심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임마누엘 팀과 할렐루야팀이 축구시합을 합니다. 그러면 서로 어떻게 기도하겠습니까? 임마누엘 팀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주님 우리 팀이 이기게 하옵소서, 그리고 저 원수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임마누엘”하면서 싸웁니다. 그런데 또 할렐루야 팀은 어떻게 기도하겠습니까?.

오 하나님 우리 팀이 반드시 이겨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 팀을 완전히 짓밟고 우리 팀이 이기게 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과연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과연 이런 모습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분명 기억해야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까? 고린도 후서5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고후5:14.-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예수님 한사람만의 죽음이 아닙니다.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 오직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위해서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서로 화목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이기주의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자기 배만 위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자기 배만 채우는 사람은 끝까지 물질로, 명예로, 권세로 자기 배만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이렇게 자기 스스로의 탐욕으로 자기 배만 채우는 사람에게는 결코 하나님의 위로가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위로가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스스로 자기 배를 채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비우고, 정말 하나님만을 위해, 또 다른 사람의 유익만을 위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분명 그것은 현실적으로 보면 손해이고, 또 잃어버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자기를 비우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또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채워주심과 공급하심이 있습니다.

“내 유익 내 명예 내 권세 내 자존심” 하면서 내 것만을 손에 쥐고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러나 내 손을 벌리고 주님을 위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또 지체들을 위해 비우고 비우고 또 비우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위로와 은혜와 충만하심을 맛보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십자가의 원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지 않고 인간의 의나 공로를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19절을 다시 보시면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합니다.

19절에 보면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고 한 말입니다. 여기서 부끄러움에 있다는 말은 할례 한 부분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 초대교회는 끊임없이 할례를 주장하며, 또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만으로는 완전한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이 완성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들의 영광이 아니라, 오히려 할례가 그들의 영광이요 자랑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공로만을 의지하지 않고, 거기다가 자신의 공로나 의를 더 하려는 모든 자들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십자가만으로는 부족하다--그러니 거기에다가 우리의 행위라 공로를 쌓아야 구원이 완성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거룩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합니다. 우리의 그 어떤 행위나 공로가 절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와 그 은혜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교회봉사나 일들이 결코 우리의 공로나 자랑이 되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열심을 다해서 교회 일을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일입니까? 그것이 공로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예수님의 십자가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결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안에 꿈틀거리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십자가의 은혜와 생명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위해 일할 수밖에 없고 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하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오주여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오직 자랑할 것은 내 어떤 공로가 아니라,,예수님의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만 자랑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오직 땅의 일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19절을 다시 보시면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합니다.

614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여기서 말씀하는 십자가는 세상에 대한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우리들은 이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오직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영광만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우리는 이 땅에서의 종교적 명예와 명성을 추구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여우도 굴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와 함께 이 세상의 정욕과 육체와 모든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입니다.

/여러분 정말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으십니까?

그러면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이기심의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그 십자가 안에서 나의 모든 이기심이 죽었음을 인정하고--더 이상 내 배만 채우면서 살아가는 자가 되지 말아야합니다.

또 십자가는 나의 의의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의외에 나의 의도 내 세우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또 십자가는 세상에 대한 죽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상적 명예와 영광, 이 땅의 종교적 명예와 영광을 다 포기하고, 오직 하늘나라의 영원한 복만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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