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12절 상반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사도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라고 합니다.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누구보다 더 많은 얻은 사람입니다. 또 온전히 이룬 사람입니다. 특히 바울은 예수님을 아는 일에 누구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에 관한 지식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체험적으로도 더 많이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지식이 너무 고상하기 때문에 자신이 자랑하는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신이 아직 예수님을 다 알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을 알기 위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알고 싶어 하고, 또 죽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을 더 알고 싶어 합니다.
또 사도바울은 누구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룬 사람입니다. 전도나 선교의 업적으로 말하면 사도바울보다 많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신이 그 어떤 것도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과거에)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사도바울은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누구보다 예수님을 굳게 붙잡고 있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사랑을 누구보다 더 붙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3절에서는 나는 아직 내가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잡은 줄로 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사도바울은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합니다. 여기 한 일은 과거에 바울이 한 일입니다. 바울이 과거에 한 일중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는 것도 있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과거에 스테반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과거에 그가 한 일도 모두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또 과거에 그가 잘한 일도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과거에 얼마나 많은 선교의 업적을 이루었습니까?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가 과거에 잘한 모든 일도 다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끊임없이 달려간다고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노인과 어른의 차이는 노인은 과거에 머무른다. 그러나 어른은 미래를 내다본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 어른이다. 노인은 다 된 줄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른은 아직 다 된 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이 어른이다”고 합니다.
만일 우리가 과거에 메여있어서 과거에 잘 한일만을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교만한 사람이 됩니다.
또 만일 우리가 과거에 메여 우리가 잘못한 일만을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낙심하고 좌절하여 주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과거에 메이지 않습니다.
과거에 잘 한일도 잊어버립니다.
또 과거에 잘못한 일도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오늘도 열심히 달려갑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공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성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이루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란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늘도 계속해서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또 여러분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까?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을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 행복한 사람은 끊임없이 잡으려고 계속해서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노인이 아니라 어른으로 오늘을 살아갑니까? 과거를 살아갑니까?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더 이루려고 달려가는 사람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만일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다시 사도바울의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누구든지 나는 이미 온전히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라고 합니다.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내가 말한 것과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만일 어떤 일 즉 우리가 과거에 한 일에 대하여 사도바울이 말한 것과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만일 과거에 잘한 일만을 자랑하고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나타내십니까? 과거에 우리가 아무리 잘했다고 생각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족하게 나타내 실수 있습니다. 또 과거에 우리가 아무리 부족 했다고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렇지 않게 나타내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전 4장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4: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여기서 사도바울은 누가 나를 판단하는 것이 매우 작은 일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누가 나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종말에 나를 판단하실 주님을 생각하면 그것은 매우 작은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도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고전4: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사도바울은 자신이 판단하기를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해도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심판하실 이는 오직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판단할 때 내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합나니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내게는 너무 자책할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연말이 되면 자신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모든 일을 그만 두려고 할때가 않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도 아직 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완전한 판단은 주님께서 마지막에 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 자신에 대한 심판과 판단은 오직 주님께서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고전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님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고 합니다.
내가 과거에 잘 했다 해도 판단하지 말고, 내가 과거에 부족했다고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 잘했어도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또 과거에 내가 잘못했어도 현재에 잘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현재를 요구하십니다. 과거는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이고, 미래는 주님에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현재라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도바울처럼 과거에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현재를 끊임없이 달려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과거를 잊어버리고 현재를 열심히 달려 가야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달려가야 할 푯대가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푯대가 없이 무조건 열심히 달려간다면 우리는 잘못된 길을 열심히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14절에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달려가야 할 푯대는 어떤 것입니까?
첫째, 내가 그리스도예수님께 잡힌 바 된 그것입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이것을 제가 쉽게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벼랑이 있습니다. 이 벼랑에 사람이 어떤 사람의 손을 붙잡고 메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의 손을 붙잡고 있는데, 점점 힘이 빠져갑니다. 이제 내가 이 손을 놓으면 저 벼랑 밑으로 떨어질 것 같습니다. 그때 저 위에서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네 겨드랑이를 보라”고 합니다. 겨드랑이에 무엇이 있습니다. 위에 어떤 사람이 그를 붙들고 있는 손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이 사람이 굳이 힘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혹 내 손을 놓는다 하더라도 위에서 나를 붙들고 있는 손이 있습니다.
그때 또 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나를 붙들고 있는 손을 보지 말고, 내가 너를 붙잡고 있는 손을 보라”고 말합니다.
--바로 저 위에 계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 내가 먼저 주님을 사랑함으로 붙잡았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붙잡으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붙들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를 당신의 사랑의 손으로 붙들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붙잡아야할 삶의 푯대가 무엇입니까? 나의나 공로가 아닙니다. 내 열심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내 의나 공로나 열심을 붙들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곧 낙심하여 지쳐서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붙잡아야 할 삶의 푯대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손입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린 그 사랑으로 우리를 붙잡고 계시는 사랑의 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낙심치 않고 포기하지 않고 날마다 새롭게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직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사로잡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붙잡고 살아가면 우리는 절대 낙심하여 쓰러지지 않습니다.
--날마다 예수님에게 잡힌바 된 그 사랑의 손을 붙잡고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이 땅이 아니라 우리의 무덤 저 건너편에서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상입니다.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는 결코 이 세상의 영광과 상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과 사람에게 영광과 상을 받으려 한다면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면서 고 곧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에게는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의 상급이 있습니다. 마지막 날 우리가 결승지점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부르실 날이 옵니다. 그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보이야 할 마지막 푯대입니다.
우리가 이 푯대를 바라본다면 지금 당장 내 눈에 열매가 없고, 또 칭찬이 없어도 절대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종말에 주실 영원한 칭찬의 상급을 바라보시면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마시고, 푯대를 향하여 오늘도 열심히 달려 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16절을 읽어보고 마치겠습니다.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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