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사랑을 위한 사랑의 기도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교인들을 위해서 기쁨으로 기도를 하는 이유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빌1장 8절에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을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빌립보교인들을 사랑하고 사모하니까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데, 기도의 내용도 사랑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래서 9절을 보시면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라고 합니다.
빌립보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은 여성적이고 감정적인 사랑입니다. 이것이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너희 여성적이고 감정적인 사랑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으로 점점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9절에서 사도바울은 너희 사랑을 모든 총명으로 더 풍성하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총명이란 상대방에 대한 통찰력, 또는 상대방에 대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감정적인 사랑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떻게 더 풍성하게 될 수 있는가를 보았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감정적인 사랑이 상대방에 대한 통찰력과 지식으로 어떻게 더 풍성하게 될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 어떤 여대 앞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남자가 그 여대에 다니는 여학생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여대 앞에서 —야 사랑한다 고 하고 마스크를 쓰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여학생은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남학생의 입장에서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남학생은 여학생을 전혀 배려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다고 하면서 학교에서 그 여학생의 이름을 적어놓으면 그 여대생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그러면서 자신은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상대방의 이름은 언론에 까지 노출시켰습니다. 이것은 무엇이 없는 사랑입니까? 오늘 본문대로 말씀을 드리면 총명이 없는 사랑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통찰력이나 지식이 없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너희 사랑이 상대방에 대한 지식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사도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생각할 때 사랑을 하는데 무슨 지식이 필요한가? 나의 뜨거운 열정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베드로사도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야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의 사랑이 더 풍성해지기 위해서 상대방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데, 왜 상대방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까?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일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방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이유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에 심리학에 대한 강의를 많이 듣습니다. 더 나아가서 정신의학에 대한 강의도 듣습니다.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은 사람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래서 그 강의를 들으니까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 그렇구나” 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또 우리가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상대방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이유는 그 사람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3장에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 위해서 먼저 하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제자들의 아래에 서 계셨습니다. 제자들의 아래에 서 계시니까 무엇이 보였습니까? 제자들의 더러운 발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주요 선생이지만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랑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 아래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어로 under stand입니다. 그 사람 아래 서 있는 것입니다.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제자들의 아래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의 더러운 발이 보였습니다.
이때 “나는 알았네 너희 발이 더럽구나” 라고 떠들고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또 제자들의 더러운 발에 대해서 책망하거나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이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이란 상대방을 알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이 상대방에 대한 지식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과 상대방에 대한 지식으로 더 풍성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10. (사랑이 풍성하게 되면)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더 중요한 것-사랑)을 분별하며 또 (사랑이 풍성하게 되면)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사랑이 풍성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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