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은 지금 우리와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바울처럼 이런 일들을 당했다면 우리는 낙담하고 원망하면서 주저앉아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가 당했던 어렵고 힘든 일들도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진보)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지금 바울이 당한 일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의 감옥에 갇히게 된 일입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사람들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실패했다. 이제 사도바울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나의 당한 일-즉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히게 된 일-“불행이다--실패다”-말하지 않고-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진보라는 말은 옛날에 로마군들이 전쟁을 할 때 보병이 들어가기 전에 포병이 집중 포격을 해서 보병이 들어갈 길을 열어놓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은 복음의 진보가 아니라 장애라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가 지금 당한 그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즉 더 널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여기서 보면 나의 매임-즉 감옥에 갇힘이 온 시위대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로마시민인 바울이 감옥에 갇힐 때 그를 지키고 있던 시위대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로마의 왕족이나 귀족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루 24시간 6시간씩 교대로 바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를 지키던 시위대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빌4장 22절에 보면 바울이 인사를 할 때 가이사의 집-즉 황제의 집-에 있는 몇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4: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이와 같이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 시위대 중에서 황제나 귀족의 집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된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가 당한 일이 복음의 진보가 되었습니다.
//또 14절에 보면 바울이 감옥에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고 용기를 잃었던 빌립보교인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그래서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 복음을 전하는 여러 사람에게 용기를 주게 되었고, 결국 복음의 진보가 되었습니다.
//또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바울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골로새서와 같은 주옥같은 글들을 썼습니다. 특별히 이 빌립보서와 에베소서는 너무나 아름답고 놀라운 복음의 진수를 담은 글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됨으로 복음이 위축된 것이 아니라 복음이 더 널리 전하여지게 된 기회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일들을 당하고 계십니까? 또 어떤 일들 때문에 힘들어하고 계십니까? 그것이 어떤 일이건 그 일 때문에 절대 낙심하거나 위축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절대 사람보거나 세상보거나 또 자신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당하고 있는 일들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질 것인가? //또 내가 지금 당하고 있는 일들을 통해서 어떻게 영적인 진보가 이루어질 것인가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실패하게 하시고 넘어뜨리게도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전히 넘어져서 못 일어나게 하시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시37편23“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걸음을 정하시고 인도하시는데도 우리가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녀는 절대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는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우리를 붙들어주셔서 어떻게 해서든 우리에게 살아갈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또 우리가 감당할 시험만을 허락해주십니다(고전10:13) 그 어떤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에게 피할 길을 열어놓으십니다. 그것이 육신적으로 우리가 먹고 살아갈 길도 될 수 있습니다. 또 영적인 진보의 길도 될 수 있습니다. 또 복음의 진보의 길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절대 낙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모든 것이 이 깜깜하고 무너져도 절대 하늘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 볼 때 우리에게는 반드시 솟아날 구멍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이 이렇게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던 비결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1)첫째는 빌립보서 1장 6절에 “빌1:6.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들과 빌립보교인들이 하고 있는 그 모든 일들을 절대 그 자신이 시작한 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하신 일들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또 이 모든 일들을 지금도 이루고 계시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마지막 날까지 완성하고 이루실 분도 하나님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금 감옥에 있어도 지금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감옥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바라보고 그를 지키던 시위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내가 힘들고 어렵고, 또 주위에 사람들이 힘들어서 쓰러지면------우리는--하나님조차도 일하지 아니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낙심하여 다 쓰러지고 넘어져도 하나님 한분만이라도 남아서----끝까지 당신의 일들을 진행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어떤 최악의 상황이라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기에 우리는 절대 낙심할 수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정에 어렵고 힘들이 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속에서도 분명히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또 지금도 그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또 사도바울이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비결은 사도바울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최악의 상황 속에도 최선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하게 사도바울이 인간적으로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기쁨이 있기에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고, 또 그 어떤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빌3:1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만일 우리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절대 안전하지 못한 삶이 됩니다. 우리가 주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잃어버린다면 죄의 유혹에 빠지기가 더 쉽습니다. 또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기쁨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비관적이되어, 최선의 상황속에서도 최악만을 보면서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안에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기쁨이 있을 때, 우리는 쓰러저도 절대 완전히 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기쁨이 있을때 우리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기쁨이 있을 때 모두가 절망하여 안된다고 해도 우리는 날마다 내게 힘주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빌4: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니라”
여기서 말하는 능력이 무엇입니까? 어떤 상황속에서 주안에서 자족하고, 만족하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에게도 제일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있는 이 기쁨이 있으면 우리는 절대 절망하지 않습니다. 사람 때문에 실망하지 않습니다. 상황보고 낙망하지 않습니다. 걸림돌 때문에 주저앉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이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의 상황이 심해처럼 깜깜하고 어두운 상황입니까? 그렇다면 작은 희망의 빛이라고 발견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또 조그마한 하나님의 임재도 느낄 수 있는 영적인 민감함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또한 도무지 희망의 빛이 없으면-----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희망의 빛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우리 앞에 모든 것아 다 막혀있는 것 같아도----예수님 때문에 희망의 빛을 밝혀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빛이 되시고 기쁨이 되시고 희망이 되시고 생명이 되신 예수그리스로 말미암은 그 어떤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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