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버가모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계2: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고난가운데 있던 서머나 교회에서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이유는 고난가운데서 죽었지만 살아났다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들로 위로와 용기의 말씀을 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버가모교회에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로 나타나십니다. 좌우에 날선 검은 말씀의 검이자 심판의 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버가모교회에 대해서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말씀의 검으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계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원래 이 말씀의 검은 요한계시록에서 세상과 사탄을 심판하시는 검입니다. 그런데 버가모교회에 대해서는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이 검이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버가모는 로마황제로부터 재판하고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황제로부터 받은 심판의 검을 버가모 사람들이 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이 세상과 사람들을 진정으로 심판하실 분은 예수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심판은 무력으로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심판은 말씀으로 하십니다.
또 이 세상은 육신만 심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육신만 아니라 영혼도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사람의 심판도 두려워해야하지만, 예수님의 심판도 두려워해야합니다.
예수님의 심판은 궁극적으로 재림 때 이루어집니다. 그 재림 때는 천국에서의 영생과 지옥에서의 영벌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니까 재림 때는 눈에 보이게 완전히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현재는 말씀으로 심판하십니다. 바로 오늘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예수님의 심판이 없기 때문에 아직 심판이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말씀으로 심판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의 말씀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교회에 대해서는 네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에베소교회를 향하신 예수님의 심판입니다.
그런데 고난과 가난가운데 있는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는 네가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예수님은 말씀으로 판단하십니다. 반대로 육신적으로 부요한 라오디게아교회에 대해서는 네가 실제로는 가난한 자라로 예수님은 말씀으로 판단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판단만 아니라 우리 곁에 계신 성령하나님의 판단이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7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마지막에는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계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눈에 보이는 어떤 심판을 받아야 예수님의 심판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말씀의 검으로 심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날마다 예수님의 말씀의 검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자신을 살피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 있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말씀을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은 마지막 최후의 심판 때에 심판이 임해도 그것이 예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심판이 있기 전에 말씀만으로 그 앞에 엎드립니다. 회개합니다. 이렇게 하는 자가 바로 이기는 자입니다.
그래서 항상 7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마지막에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고 이기는 자에게는 항상 그에 따른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교회에 대해서는 낙원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머나교회에 대해서는 둘째 사망의 해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버가모교회에 대해서는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새 이름이 새겨진 흰돌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구원에 대한 설명들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이 세상과 사판에 대해서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교회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대한 심판과 세상에 대한 심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교회에 대해서는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돌이켜 회개하면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대해서는 말씀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재앙들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이 계 8장과 9장에 보면 눈에 보이는 자연적인 재앙들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코로나와 같은 재앙들입니다. 과학자들은 코로나가 끝이 나도 앞으로 이런 재앙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이 세상 사람들은 이것도 단순히 자연적인 재앙으로만 볼 것입니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만 할 것입니다. 그래서 화석연료를 쓰지 않으면 그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지구가 멸망해도 화성에서 가서 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화성으로 갔다가 다시 지구에 착륙할 수 있는 로켓트를 5번 만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모든 재앙 뒤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합니다. 그리고 이 재앙가운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야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교회 마당만 밟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심판이 있기 전에 말씀만으로 돌이킬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 되어 심판이 아니라 진정한 구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하시기 전에 먼저 칭찬부터 하십니다.
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서 보시면 예수님은 네가 어디에 사는 지를 내가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거기는 사탄의 권좌, 사탄의 보좌가 있는 곳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버가모는 완전히 우상을 숭배하는 도시였습니다. 버가모에 세계적인 큰 병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병원 앞에서 우상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병원에 갔다가 온 사람들은 모두 그 신전에서 우상에게 절을 한다고 합니다. 그 우상중에서 제일 큰 우상은 로마의 황제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대로 버가모 교인들이 있는 곳은 사탄의 보좌가 있고, 사탄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도시 가운데서 예수님의 이름을 굳게 잡은 예수님의 충성된 증인인 안디바가 있었습니다. 안디바는 버가모 교회의 담임목사였습니다. 그는 황제를 주로 섬기라고 하는 가운데서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놋으로 만든 황소 속에서 넣어져서 서서히 불태워져 죽었습니다.
여러분 만일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같으면 그런 광경을 보면 신앙을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버가모 교인들 중에는 그 교회 담임목사가 불에 굽혀서 죽는 것을 보고도 예수님이 주시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서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었습니다. 14절입니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여기서 보시면 “거기 네게”라고 하는 것은 “너희 가운데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담임목사가 황제를 숭배 하지 않는다고 불에 죽는 것을 보고도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가 있었습니다.
/구약시대 발람은 거짓선지자의 대명사입니다. 그는 모압 왕에서 돈으로 매수를 당해서 이스라엘백성들 세 번이나 저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막았습니다. 이때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들고 와서 발람에게 경고를 합니다. 그런데 발람은 그 경고를 듣지 않고, 이스라엘백성들로 하여금 범죄하게 만듭니다. 이것에 대해서 민수기 31장에서 “민31: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14하--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놓은 걸림돌은 모압여인들과 음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민25:1). 그리고 그 여인들이 자신의 신들에게 제사를 할 때 이스라엘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사람들이 우상숭배와 함께 우상의 제물을 먹습니다. 또 당시에 우상숭배를 하는 곳은 지금으로 말하면 사창가와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상숭배를 하는 그곳에서도 음행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사람들이 염병으로 이만사천명이 죽습니다.
그래서 결국 발람의 교훈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것입니다. 버가모교회의 경우에는 한쪽에서는 말씀 때문에 순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쪽에서는 “우상숭배는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다.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괜찮다” 라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또 15절에서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나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는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버가모교회 안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고 죄를 짓게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앞에서 에베소교회는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죄를 짓게 하는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도 니골라 당을 미워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가 너무 정의만 외치다 보니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하시고 처음 사랑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반대로 버가모교회는 니골라 당을 용납하고 따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항상 공의와 사랑, 또 사랑과 공의, 이 두 가지의 균형을 이루어야합니다. 너무 진리만을 외치고, 정의만을 외치다가 사랑을 잃어버려도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반대로 너무 사랑만 외치다가 죄를 용납한다면 그것도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사랑만 외치다가 죄를 용납한다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말씀의 검으로 너희들과 싸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에베소교회를 향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까? 아니면 버가모교회를 향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까? 우리에게는 에베소교회를 향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버가모교회를 향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항상 마지막에 보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을 지어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들은 어느 한 교회가 아니라 지상의 모든 교회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처음 사랑도 회복하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 따른 공의도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죄를 짓게 하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지 않고, 니골라 당의 행위를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계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여기서 이기는 자란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지 않는 자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이기는 자입니다. 그는 감추었던 만나를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나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죄의 유혹에서 이길 때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생명의 만나를 먹여주십니다. 죄가 주는 배부름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주는 배부름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죄의 유혹에서 이기는 자에게 예수그리스도라는 풍성한 만나를 우리에게 먹여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새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을 주십니다.
여기서 흰 돌이란 승리를 상징합니다. 또 흰 돌이란 구약시대에 대제사장의 흉배에 박혀 있는 돌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흰 돌이 있는 옷을 입고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또 흰 돌에 새겨진 새 이름은 예수그리스도라는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죄의 유혹에서 승리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을 가지고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의 유혹에서 이기는 자가 되어 날마다 예수님의 이름에 힘입어서 하나님의거룩한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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