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네 번째 전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가게 될 천국에 대한 마지막 환상입니다.
천국은 성령하나님의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곳입니다. 성령하나님이 성부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계십니다.
그런데 성령하나님의 생명수의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이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하나님의 생명수의 강에 힘을 입어서 열두 가지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또 생명나무의 잎을 통해서 만국을 치료하는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천국에는 다시 저주가 없습니다. 천국에 저주가 없는 이유는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당할 모든 저주를 대신 져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천국에 다시 저주가 없는 것은 저 천국에는 선악과가 없고, 오직 생명나무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선악과도 있고, 생명나무도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선악과는 사탄의 말들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저주합니다. 그리고 책망합니다. 정죄합니다. 그리고 분노합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완전한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그런데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끝까지 인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서로를 축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선악과를 선택하지 마시고 오직 생명나무만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의 말을 선택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축복하시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저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우리가 천국에 가면 우리 모두 이제 하나님의 얼굴을 친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멀어졌습니다. 그런데 저 천국에는 죄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의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 한 곳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직접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실제 하나님은 눈으로 본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게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성자예수님은 우리가 저 천국에 가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저 천국에 가면 우리가 하나님과 더 가까운 친밀감을 느낀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이 본문을 가지고 계속 드리는 말씀이지만, 이 말씀이 단순히 새 하늘과 새 땅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도 여기서 성령의 생명수의 강을 맛볼 수 있습니다. 또 생명나무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또 다시 저주가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지금 여기서 우리도 날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오늘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하나님과 친밀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마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이 땅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 마음이 청결해야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죄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우리 마음에는 끊임없이 죄가 들어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으로 짖는 죄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정결하게 합니까? 날마다 우리 마음가운데 짓는 조그마한 죄라도 예수님께 내어놓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함으로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정결한 마음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마음이 정결하다는 것은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한 마음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시편 51편에서 “정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기서도 정한 마음이란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이 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 여러분들의 마음을 하나님에게 집중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에 염려가 있으면 하나님에게 집중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여러분들의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 마음에 탐심이 있으면 하나님에게 집중하지 못합니다.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내 마음에 있는 모든 탐심들을 다 내어버리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에게 집중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사랑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마음이 오직 하나님 한분에게만 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하나님에게 집중이 됨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우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을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계14장 4절에 천국의 모습이 있는데,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 천국이 어떤 곳입니까?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도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양떼와 같이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80편에 보면 “시80:1 요셉을 양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라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요셉과 인도하심과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또 구약의 이스라엘은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신 것처럼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고, 또 요셉과 함께 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인도하실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요셉을 고난을 통해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하니까 무조건 잘 되는 일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은 고난입니다.
요셉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인도하심으로 형제들에게 쫓겨나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요셉을 인도하심으로 감옥에 가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심으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오히려 고난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이 보디말의 집에 갔기에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또 그가 감옥에 갔기에 애굽의 왕궁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또 이스라엘백성들을 하나님께서 고난의 광야로 인도하셨기에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품에서 앉으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 고난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고난 속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드시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린양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여러분들의 모든 삶 가운데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히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저 천국에서나 지금 우리의 이마에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이름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있습니다.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것입니다. 또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이기에 이 세상에 사탄의 그 어떤 세력도 우리를 침범하지 못하고 이기지 못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이것은 천국에 가면 진짜 밤이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천국에도 낮이 있으면 밤이 있습니다. 여기서 밤이 없다는 말씀은 저 천국에는 더 이상 영적인 어두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영광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그 얼굴에도 광채가 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얼굴을 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저 천국에 가면 우리 모두가 모세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친히 봄으로 우리 얼굴에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가득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테반을 보시기 바랍니다.
“행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라고 합니다.
돌이 날라 왔습니다. 그래도 스테반은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고 용서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순교자들의 기도가 있습니다.
나를 저주하십시오.
당신들이 나를 저주하면 할수록 더욱 나는 당신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내게 침을 뱉어 보십시오. 그러면 나는 사랑의 숨결을 뿜어 낼 것입니다.
나를 때리십시오. 나는 신음 소리로 사랑을 고백할 것입니다.
나를 찌르십시오. 나는 사랑한다고 절규할 것입니다.
나를 짐승의 먹이로 던지십시오. 나는 사랑의 제물이 될 것입니다.
나를 불태우십시오. 그러면 나는 사랑의 열기로 당신의 증오의 가슴을 녹일 것입니다.
사랑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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