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당시에 믿음으로 의롭다심을 받았으니 얼마든지 죄를 더 지어도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롬5장 20절에 “롬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 넘친다고 하니까 은혜를 더 누리기 위해서 죄를 더 짓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롬6장 1-2절에 “롬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받은 우리가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그와 함께 우리가 죽었음을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의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죽었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에 대하여 이미 죽은 자입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 세상에 대하여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죄가운데 더 살리요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5절에서도 “롬5: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은혜 아래에 있다고 죄를 지을 수 있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5장 16절 부터는 23절까지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이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7절과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롬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우리가 원래 죄의 종이었는데, 너희에게 전하여 준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너희에게 전하여 준 교훈의 본은 무엇을 가리키겠습니까? 그것은 복음입니다.
어떤 복음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복음입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복음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복음을 믿음으로 죄의 종에서 의의 종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 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여기서도 보면 너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20절입니다.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예수를 믿기 전 죄의 종의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해서는 자유로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21절입니다.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너희가 그때 즉 예수 믿기 전에는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 죄와 불법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난 이제는 너희가 그 일(즉 죄와 불법의 일)을 부끄러워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의 의의 종이 되어 죄가 아니라 의의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자신을 누구에게 종으로 드리느냐에 따라 삶이 좌우됩니다. 어떤 사람은 죄의 종이 되어 사망에 이릅니다. 어떤 사람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릅니다(16). 원래 우리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17,18).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 우리 몸을 의의 종으로 의로운 삶을 살아야합니다(19,22). 여기서 의란 3장에 나오는 칭의의 의와는 다릅니다. 3장에 나오는 칭의의 의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전가되어지는 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의는 성도가 마땅히 행해야 할 옳은 행실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과는 관계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로운 삶을 위해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서 의의 종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의 종으로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으로 어떻게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의의 종으로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것은 의의 기준입니다.
요즘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의의 기준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것이 의로운 삶이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은 아니다 저것이 의로운 삶이다고 합니다.
그래서 각자가 소견이 옳은 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의의 종으로 의로운 삶을 살아야하는데, 우리는 그 의로운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겠습니까? 우리 각자의 생각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하는 의의 기준은 오직 성경입니다. 그런데 성경이라고 말하면 너무 막연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경에서 의롭게 살아야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율법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율법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율법의 핵심이 무엇이겠습니까?
마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것을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율법대로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롬 7장에서는 우리가 율법대로 서로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 우리가 율법에 얽매여서는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상한 말씀 같습니다.
우리가 의의 종으로 율법대로 살아가야하는데, 왜 우리가 율법에 얽매여서는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연약한 육신 때문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아무리 율법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려고 해도 잘 되지 않지 않습니다. 특별히 롬 7장 전체에서 나타난 바울의 고백은 율법은 선한데 육신이 약하여 율법대로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롬8:3)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얽메여서는 의로운 삶을 살 수 없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리스도와의 바른 관계를 맺어야지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4).
그래서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율법과)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예수님)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보시면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율법과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님에게 가서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합니다.
또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율법)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여기서도 보면 이제 우리는 우리를 얽매이게 했던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율법 조문의 묵은 것이 이니라 영 즉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겨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율법에서 벗어나 성령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롬8장3절과 4절에는 “롬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성령)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우리가 말씀대로 의롭게 살며, 또 서로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는 율법에서 벗어나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혼인관계를 비유로 들고 있습니다.
롬7: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즉 남편이 살아있을 동안에는 남편의 법이 아내를 지배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남편의 법에서 벗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음으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율법과는 다른 이 곧 그리스도께로 가서 그와의 바른 관계를 맺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열매를 맺으며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율법에서 벗어서 성령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잘못 보면 마치 율법무용론을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앞에서 믿음과 은혜를 강조하면서도 율법을 폐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롬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그러면 왜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율법에서 벗어 나야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율법이 “필요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율법은 결코 폐할 수 없습니다. 또 율법이 악한 것도 아닙니다. 또 율법이 성도의 삶과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은 성도의 바른 삶의 지침을 제시해줍니다. 그런데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려는 바는 우리가 그 율법에 메여서는 율법대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의 생명의 관계를 맺고, 성령하나님을 좇을 때 율법의 요구는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롬8:4)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조항에 메여서 주를 섬길 것이 아니라,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주를 섬기면서 살아 가야합니다(6). 주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고, 성령을 따라서 섬길 때 비로소 우리는 율법대로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율법대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옛날에 어떤 집에 종이 있었습니다. 그 종은 매일 열 가지의 일을 했어야했습니다. 첫째, 아침에 마당을 쓸고, 둘째, 밥을 짓고, 셋째 상을 차리고, 넷째 밭을 갈고, 다섯째, 씨앗을 뿌리는 등등 이런 율법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종은 그 율법 조항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율법 조항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기면 집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두려움 가운데 살았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종을 불렀습니다. 그 주인은 종의 노비문서를 태우고, 이제 너는 종이 아니라 내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 아들로서 나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날 어떻게 했겠습니까? 똑 같이 아들로서 주인을 섬깁니다. 이 아들에게 율법의 조항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예 여전히 율법의 조항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들이 된 종은 절대 율법의 조항에 메이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들이 된 종은 그 율법의 조항대로 살지 않아도 집에서 쫓겨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율법의 조항에서 자유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율법의 조항이 없이 아무렇게나 살아갑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의 조항보다 더 한 차원 높은 차원에서 아버지를 섬깁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율법의 조항보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생각하고 아버지를 섬깁니다.
그래서 율법의 조항으로 마당을 쓸 때도 내가 마당을 쓸어야한다는 율법의 조항에 메이지 않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아침에 일어나서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당을 씁니다. 옛날에 율법의 조항에 메였을 때는 마당을 쓸기만 했는데, 마당에 있는 풀도 뽑습니다. 또 풀도 뽑다보니 아버지를 위해서 이제 더 새로운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것은 이 마당에 잔디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제 마당에 잔디를 심습니다.
여러분 아들이 된 종이 마당을 쓸라는 율법의 조항을 지켰습니까? 지키지 않았습니까? 지켰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된 종이 율법의 조항에 메였습니까? 메이지 않았습니까? 율법의 조항에 메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된 이 종은 율법의 조항을 지켰습니다.
어떻게 아들이 된 종이 아버지를 섬겼습니까? 아들이 된 이 종은 율법의 조항에서 벗어나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더 율법의 조항보다 새롭게 아버지를 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율법)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여러분들은 율법의 조항들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과의 바른 관계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율법의 조항에 메여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령님과의 바른 관계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율법의 조항이 아니라 주님과의 바른 관계로 하나님을 섬기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율법의 조항이 아니라 성령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으며 하나님을 섬기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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