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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에스겔

성전의 법(겔43:12-27)

by 금빛돌 2019. 11. 2.

43장에서 성전 동문으로 떠나가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동문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이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발이 있는 곳이라고 말씀하시고, 이 성전에 영원히 계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 성전에 영원히 계시기 위해서 먼저 과거의 죄를 버려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죄를 측량하여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법을 지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성전의 법을 지켜야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전의 법을 통해서 거룩이 지켜나갈 때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12절에 12.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 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1)오늘 본문의 말씀은 성전의 법이 이러하니라고 말씀하시고, 성전의 법으로 제일 먼저 번제단의 규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에스겔이 본 성전의 환상가운데서 제일 중앙에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는 지성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번제 단입니다. 이 번제 단은 성전의 바깥뜰에서 안뜰로 올라와서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기 전 안뜰의 중앙에 있습니다. 13-17절까지는 번제단의 모양과 크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번제단의 모양과 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전의 담장도 정사각형입니다. 또 지성소도 정사각형입니다. 항상 정사각형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18절에서 27절까지는 번제단에서 어떻게 번제를 드릴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18절에 1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 제단을 만드는 날에 그 위에 번제를 드리며 피를 뿌리는 규례는 이러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레위기 1장을 통해서 번제의 제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보통 번제의 제사라고 함은 헌신의 의미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번제의 제사는 피를 뿌리는 속죄의 제사를 먼저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제사의 핵심은 속죄 즉 죄 사함에 있습니다. 피뿌림을 통한 죄사함이 없는 제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피 없는 제사인 소제를 드릴 때에도 반드시 속죄의 번제물과 함께 소제를 드려야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번제의 제사는 속죄의 번제입니다.

이렇게 속죄를 위한 번제의 제사를 위해서 18절에서 26절까지는 번제의 제사를 드리는 번제단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6절에 보시면 26. 이같이 칠 일 동안 (번제의) 제단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려 정결하게 하며 드릴 것이요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번제의 제사를 드리기 전에 제일 먼저 번제의 제단을 위해서 19.-칠 일 동안 어린 수송아지를 잡아 속죄의 제물로 삼아(19), 20.그 피를 가져다가 제단의 네 뿔과 아래층 네 모퉁이와 사방 가장자리에 발라 속죄하여 제단을 정결하게 하고(20), 21. 그 속죄제물의 수송아지를 가져다가 성전의 정한 처소 곧 성소 밖에서 불사르고, 22절에 다음 날에는 흠 없는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삼아 드려서 그 제단을 정결하게 하기를 수송아지로 정결하게 함과 같이 하고23절에 정결하게 하기를 마친 후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떼 가운데에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드리되” 24절에 여호와 앞에 받들어다가 제사장은 그 위에 소금을 쳐서 나 여호와께 번제로 드릴 것이며25절에 칠 일 동안은 매일 염소 한 마리를 갖추어 속죄제물을 삼고 또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와 떼 가운데에서 숫양 한 마리를 흠 없는 것으로 갖출 것이며라고 하고 26절에 이같이 칠 일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려 정결하게 하며 드릴 것이요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번제의 제사를 드리기 전에 번제단을 정결하게 하는 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이 세상에 아무리 정결한 번제단이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의 번제단은 오염이 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그 번제단을 속죄제물의 피를 뿌림으로 정결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요한계시록의 표현대로 한다면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의 하얀 세마포옷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의롭다하심을 받은 우리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우리를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죄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눈에 보이게 큰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수히 마음으로 수많은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죄가 없다고 하면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성소와 지성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번제단에 뿌려지는 속제의 제물의 피 뿌림을 통해서입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1022절에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앞의 말씀과 연결시켜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성전에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서 성전의 법을 말씀하시면 제일 먼저 왜 번제의 제단을 정결하게 하는 법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앞에서는 우리가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과거의 죄와 현제의 죄를 씻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번제단에 뿌려지는 피를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성전가운데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습니까? 그것은 날마다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번제단에 나가서 예수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통하여 사죄의 은총을 받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왜 번제단이 새 성전의 중심에 있습니까?

그 이유는 이제 예수님의 피뿌림과 그로인한 죄 사함이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수 있습니까?

그것은 절대 우리의 의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뿌림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그래서 예전 찬송가 190장 가사에 “1.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0장에 왜 우리가 마음에 예수님의 피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 벗어나서 하나님께서 나아가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최대한 양심적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내 양심에 있어서도 정직해야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 양심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심에 대해서도 깨끗해야합니다. 그래서 양심이란 우리 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율법입니다. 또 양심이란 우리 속에 있는 작은 하나님이라고도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날마다 우리 속에 있는 양심의 거울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어야합니다. 또 다른 사람의 양심의 거울을 통해서도 우리 자신을 보아야합니다. 만일 우리 속에 양심이 제 기능을 나타내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 양심이 화인 맞은 자가 되지 말아야합니다. 이렇게 양심은 좋은 것입니다. 양심은 반드시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어느 정도 양심적이어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내 양심의 거울과 다른 사람의 양심의 거울로 보았을 때 어느 정도 거리 낄 것이 없어야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나갈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에 보면 인간이 가진 그 어떤 양심으로도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설수 없는 죄인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간이 가진 양심조차도 심히 부패하고 타락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17:9).

우리가 처음에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우리의 선한 양심을 가지고 나가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은 끝까지 자신의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양심은 날마다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네가 그런 모습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느냐, 너의 그런 더럽고 부끄러운 모습을 가지고 어떻게 감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느냐, 그런 죄악 되고 부끄러운 모습이라면 아예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그래서 도리어 하나님께 나아가지 마라, 하나님께 피하라 도망하라, 그리고 네 양심상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될 때까지 예배도 참석하지 말고, 기도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이런 사람에 대해서 참으로 양심적인 사람이구나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서 이것을 악한 양심이라고 말합니다. 옛날 성경에서는 양심의 악이라고 합니다. 양심은 좋은 것입니다. 양심은 필요합니다. 양심은 반드시 있어야합니다. 양심이 없으면 믿음도 헛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양심이 악입니까? 내 양심의 선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양심으로는 절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저는 자주 새벽기도회에 나갈 때마다 양심에 괴로움을 느낍니다. 밤늦게 까지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꿈속에서라도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면 항상 내 양심이 나를 고발합니다. “네가 그런 모습으로 어떻게 하나님께 나갈 수 있나고 합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그 양심의 괴로움 때문에 새벽기도시간에 나가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내가 나의 양심으로 하나님께 나가려고 하는 것이 양심의 악이구나. 그래서 그 다음 부터는 새벽기도회 나갈 때 마다 예수님의 피를 생각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가는 길에 예수님의 피가 뿌려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 양심이 아니라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까? 번제단에 뿌려진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 양심으로는 도무지 하나님 앞에 설수 없는 죄인이지만,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힘입어 담대하게 날마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가 날마다 양심의 악을 깨닫고 우리 마음에 피 뿌림을 통해서 사죄의 은총을 경험하고, 그 사죄의 은총의 결과로 임마누엘 즉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피뿌림을 통해서 사죄의 은총과 임마누엘의 은총은 받은 우리가 이제 매일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27절에 있습니다.

27. 이 모든 날이 찬 후 제팔일과 그 다음에는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너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속죄를 통한 임마누엘의 은총을 입은 우리들이 할 일을 번제와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번제란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의미이고, 감사제는 감사의 의미입니다.

속죄함을 통한 임마누엘의 은총은 받은 우리가 날마다 자신을 헌신의 제물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12:1.2). 그리고 속죄함을 통한 임마누엘의 은총을 받은 우리가 날마다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그리고 겔441-3절에서는 성전 동문을 통해서 들어오셨던 하나님께서 영원히 계시기 위한 성전의 법을 말하는 중에 두 번째 동문 닫음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번제단의 규례를 통해서 우리의 의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속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겔44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4: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의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혔더라

여기서 보면 다시 천사가 에스겔을 데리고 성소의 동쪽을 향한 바깥 문으로 돌아왔는데 보니까 동문이 닫혀 있습니다. 이것은 안에 닫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지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문은 닫고 다시 열리 못할지니 아무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하나님 나 여호와가 이 동문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동문을 닫아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이 동문을 닫으라고 말씀하십니까? 그 이유는 동문을 통해서 떠나셨다가 돌아오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더 이상 이 성전을 떠나지 않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동문을 닫으라는 말씀은 이제 이 성전에서 내가 너희와 함께 영원히 할 것이라 내가 이제는 절대 너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이 말씀은 앞에서 하나님께서 동문을 통해서 떠나가심으로 이방민족이 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멸망시켰습니다. 이렇게 이제는 내가 이 성전을 떠나지 않음으로 더 이상 너희를 해치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도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입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지 아니시고 영원히 함께 거하실 수가 있습니까?

이것도 역시 우리의 의와 공로가 아닙니다. 앞에서 번제단의 규례에서 말씀한 것과 같이 예수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와 그의 공로 때문입니다.

6장에 보면 하나님의 성령이 육체가 된 인간과 영원히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롬810절에 보면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이라는 말씀은 너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와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 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됩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 인해서 우리 안에서 영원히 살게 되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깨끗한 사람이 더러운 집에서는 못 삽니다. 그런데 그 집에 깨끗한 사람이 거하는 의자가 있습니다. 그 의자 때문에 깨끗한 사람이 그 집에 거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고 계심을 믿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이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서 적용해 본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성전인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니까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의 은혜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우리 마음의 동문을 닫아야합니다.

우리가 이론상으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 가운데 우리의 삶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받았던 은혜들을 너무나 많이 마음 문 밖으로 흘려보내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보아야합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가운데 날마다 영원히 거하시며 또한 충만히 거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마음의 동문을 열어서 그 받았던 충만한 은혜들을 쏟아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특별히 언제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우리 마음가운데 끊임없이 허용하는 염려와 걱정과 근심과 불안, 그리고 불신앙이 있을 때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집에서 돌아가 보니 내 삶 가운데 염려할 문제가 있습니다. 근심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가지고 걱정하며 신음합니다. 그리고 괜히 불안한 마음을 가집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었을 때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그런데 현실의 삶 가운데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합니다.

이때 여러분 동문 닫음의 원리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동문을 닫으심으로 내가 더 이상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마음의 동문을 닫음으로 더 이상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흘러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동문을 닫음으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는 일이 없도록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 우리가운데 영원히 거하시기 위한 성전의 법으로서 마음의 할례의 규례가 있습니다.  

 44: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여 내가 네게 말하는 바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또 성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목하고

여기서 보시면 다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성전의 모든 규례와 법을 귀로 듣고 성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진심으로 주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성전의 입구와 출구에 성전의 문지기들의 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지기들의 방에 성전의 문지기들이 있습니다.

이 문지기들이 하는 역할이 무엇입니까? 누구나 이 문으로 성전에 들어올 수 있지만 또 아무나 이 문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구약시대로 말하면 진정으로 몸만 아니라 마음으로 할례를 받은 사람만이 들어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44:9.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러면 여러분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구약시대에 할례는 신약시대에 세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단순히 육신적인 세례를 받은 사람들만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단순히 몸의 할례만을 먼저 말씀하고 있지 않고 마음의 할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오늘날로 다시 말하면 마음과 몸에 세례를 받지 아니한 사람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할지니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 마음의 문지기들을 통해서 우리가 진짜 세례를 받은 자인가라고 하는 것을 날마다 시험해 보아야합니다.

세례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세례란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은 것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다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음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와 하나가 되어서 나의 죄가 예수님에게 전가가 되고, 예수님의 의가 우리의 의로 전가가 되었음을 믿어야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었고,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었음을 믿어야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 마음의 문지기를 통해서 내가 정말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를 날마다 자신을 시험 해보아합니다. 우리는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을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선지자 노릇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만을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물리치는 것만을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와 함께 온전히 죽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내 안에 사시는 것이 진정으로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 정말 나는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정말 육신의 세례만을 받았고 마음의 세례를 진정으로 받았습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앞의 말씀과 서로 연결시켜서 보아야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한 성전의 법으로서 번제단을 통한 속죄의 원리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죄의 원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동문을 닫으심으로 우리가운데서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한 성전의 법으로 마음의 할례와 마음의 세례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진짜 문제는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지 않는데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문제에 대해서 고린도전서와 후서에서 여러 가지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12: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절대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너희를 버리지 않겠다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은 자다. 그래서 이제 네가 사는 것은 네가 사는 것이 아니다. 이제 네가 사는 것은 네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마음에 할례받지 못하고 마음에 세례 받지 못한 사람들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몸만 아니라 마음에 세례를 받은 자로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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