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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갈라디아서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갈5:13-26)

by 금빛돌 2019. 8. 30.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는 율법의 종이 되지 말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에게 주신 이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우리는 자유를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그 자유를 죄를 짓는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아야합니다. 도리어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해야합니다.

앞에서 믿음이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가 믿음이 있다는 것은 사랑으로 표현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율법의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자라면 이제는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해야합니다.

14절과 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율법주의자들은 그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율법이 무엇입니까? 율법이란 네 이웃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율법의 종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고 있으면 그 믿음의 열매로서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참된 자유자라면 우리는 이제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참된 믿음이 있고, 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참된 자유가 있으면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율법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합니다.

서로 물고 싸운다는 것은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없는 것은 그 속에 예수님께 대한 진정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가 없는 자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는 자는 믿음이 없고 자유가 없는 자이므로 구원받는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일 사랑이 없이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구원받은 자로서 율법의 종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 아무렇게나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구원받은 자로서 율법의 종이 아니라 이제는 사랑의 종으로 살아야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의 열매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은 자로서 사랑의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습니다. 그 비결은 우리가 이제 육신이 아니라 성령을 쫓아서 살아가야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로마서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율법)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에 대해서 내가 사랑해야겠다 또 사랑해야겠다고 하면서 사랑이라는 글자를 세겨놓고 아무리 우리가 육신적으로 노력해야 사랑할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율법의 글자에 메이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죽이고 성령을 쫓아 살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사랑의 열매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16절부터 말씀하고 있습니다.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이제 그리스도 안들은 율법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서 행해야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서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습니다.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소욕과 성령은 서로 대립하고 대적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은 성령을 따라서 행하면 자연스럽게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서 율법에 메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에 메이지 않지만 율법의 최종적인 목적인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서도 너희가 성령으로 육체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육체의 일과 성령의 일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먼저 육체의 일입니다.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이런 육체의 일이 삶의 열매로 나타나는 자는 구원받은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육체의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습니다. 그 비결이 24절과 25절에 있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가 육체의 일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살 수 있는 비결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절에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어서 예수의 사람이 된 사람들은 이미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이 십자가에서 죽은 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첫 번째 비결입니다.

또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십자가에서 이미 죽은 자임을 믿고, 이제 우리가 육체나 율법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서 행해야합니다.

그것이 25절과 26절에 있습니다.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이것에 대해서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오늘 하루도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십자가에서 이미 죽은 자임을 믿고, 이제 육신이나 율법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서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을 따라서 행함으로 율법의 요구인 사랑의 열매를 나타내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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