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계속해서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하심을 얻지 못하고,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갈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의 행위라에 있는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만일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으려고 한다면 우리가 율법 가운데 한 가지라도 행하지 않으면 율법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일을 행하지 않는 자는 저자 아래 있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율법이란 하나님의 기준에서의 유법입니다. 우리가 만일 사람들이 만든 어떤 기준에서의 율법이란 그 기준만 지키면 그 율법을 지킨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율법이라 단순이 어떤 규칙을 지킨다고 해서 지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면 우리가운데 어느 누구도 내가 완전히 하나님을 사랑했으면 내가 완전히 이웃을 사랑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는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하심을 얻지 못합니다. 믿음이란 내가 예수님과 연합함으로 예수님의 의가 나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연합하여 그의 의가 나의 의가됨으로 비로소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12절입니다.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율법은 오직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13절입니다.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신명기에서 보면 나무에 달려 죽은 자마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를 대하신해서 저주를 받아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이제 결코 저주함이 없고 오직 축복만이 있습니다.
그래서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이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하여 그 안에 있는 자들은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을 이방이라고 받게 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이 무엇입니까? 바로 언약의 축복입니다. 언약의 축복이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되리라고 언약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예수님 안에 있게 되면 이런 아브라함의 복을 받아서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15절에서 18절에서 언약과 율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심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창15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의롭다고 여겨주셨습니다.
그런데 율법은 아브라함 이후 400년이 지난 후에 생겼습니다
그래서 15절에서 사람의 예대로 말하면 사람의 언약이라도 언약을 정한 후에 아무도 그 것을 폐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는 네 하나님이고 너와 너의 자손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는 언약을 하신 후에 400년이 지난 율법이 절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주신 것이지,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18절입니다.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유업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구원의 축복을 말합니다. 그래서 구원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율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또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율법으로 구원을 받았으면 우리는 항상 저주아래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에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축복아래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하루도 율법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아브라함에 받았던 그 축복들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에 받았던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축복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나의 하나님이 되고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로 살아 갈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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