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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에스겔

에스겔강해(1)위기와 환상(겔1:1-4)

by 금빛돌 2018. 11. 2.

요즘 에스겔서 큐티를 하시는 분이라면 굉장한 어려움을 격을 것입니다. 이상한 환상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도무지 잘 정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에스겔서의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에스겔서가 쓰이게 된 역사적 배경과 에스겔의 상황들 살피면 왜 이런 환상들이 기록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여기서 삼십년이란 여러 가지의 해석이 있는데,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이글을 적고 있는 에스겔의 나이를 말합니다. 제사장으로 한 참 일할 나이인 에스겔이 바벨론의 그발강가에 포로로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런데 2절에 보면 유다 왕 여호야긴 왕과 같이 포로로 잡혀 온지 오년이 되었습니다.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바벨론 왕은 유다 왕 여호야긴을 포로로 잡아온 후 시드기아 왕을 유다 왕으로 세우는 데, 결국 시드기아 왕 때 유다나라는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왜 에스겔이 하나님의 이상과 말씀을 듣게 된 곳에 바베론의 그발강가인가를 생각해보아야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시편 137편에서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137: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포로로 잡혀온 유다백성들은 바벨론의 강변에 수금을 걸어놓고 있습니다. 왜 수금을 걸어놓았습니까? 바벨론 사람들이 기쁨의 노래를 불러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포로로 잡혀온 유다백성들은 이제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뜻에서 강변에 수금을 걸어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바벨론 강가는 유다백성들의 탄식의 장소였고, 애통의 장소였고, 절망의 장소였습니다.

--지금 국가적으로 보면 유다나라는 멸망직전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에스겔은 제사장으로서 아무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또 이런 상황가운데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어떤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사람인 바벨론사람들에 의해서 짓밟히고 있는데, 과연 하나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하나님은 과연 이런 상황 속에서도 살아계십니까? 하나님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보고 계십니까? 라고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 에스겔은 개인적이나 국가적으로 보았을 때, 현실가운데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것을 느끼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개인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국가적으로도 경제가 너무 큰 위기입니다. 또 남북의 관계도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언론을 통해서 한국교회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 더 이상 교회에게도 그 어떤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누구 우리에게 기쁨의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면, 우리도 그 어떤 기쁨의 노래도 부를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마치 바벨론 강가에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라고 하니까 수금을 걸어놓고 더 이상 기쁨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 에스겔의 상황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수금을 걸어놓고 탄식하고 있는 에스겔에게 무엇이 열립니까?

하늘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 하늘에서 환상과 하나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세계가운데서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여도------우리에게는 하늘의 영적 세계가 있습니다. 이 하늘의 영적 세계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평안하고, 아무 어려움이 없을 때는 보이지도 않고. 필요치도 않습니다.

--그런데 언제 하늘의 세계가 열립니까? 이 땅에 희망이 전혀 없어 보일 때입니다. 바벨론의 강가에서 수금을 걸어놓고 탄식하며 있을 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 어려움이 없을 때 우리에게는 하늘의 영적세계가 우리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땅 가운데서 희망을 잃어버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의 영적세계를 열어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시대에도 우리도 에스겔처럼 환상을 보아야하겠습니까? 또 에스겔처럼 하늘의 열린 세계를 보아야겠습니까? 물론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인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보고 듣는 환상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계시는 완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 에스겔과 같이 환상을 보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에스겔이 본 환상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도 우리가운데 있는 하늘의 영적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에스겔의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이 시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볼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지금 절망가운데서 있는 에스겔에게 하늘이 열리고--하늘의 환상이 보이고그에게 무엇이 주어집니까?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 시대에 지금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전혀 보이지 않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현실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내가 살아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아무 것이 보이지 않아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굳게 붙들고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이 절망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다시 보시면 절망의 장소인 그발강가에서 제일 먼저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고, 또 그에게 여호와의 권능이 그 위에 임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우리가 가장 절망스럽고 어려울 때-------그때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을 입을 때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서를 보면 더 이상 일어설 수 힘도 없고, 싸울 힘도 없는 마른 뼈와 같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성령의 능력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마른 뼈들이 능히 살아나서 일어나서 큰 군대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여호와의 권능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을 직역하면 하나님의 권능의 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십니다.

또 우리가 가장 어렵고 낙심하고 절망할 때하나님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에스겔이란 이름의 뜻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에스겔'이란 뜻은 '하나님이 은혜로 강하게 하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단련시키시다'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나라가 멸망하기 직전, 왕과 제사장인 자신이 포로로 잡혀온 이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로 에스겔을 강하게하시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단련시키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 그때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강하게 단련시키시고 훈련시키시는 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오 주여 나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주옵소서).

/벧전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잠깐의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그 이유는 그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더 온전하게 하시고, 더 굳건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더 견고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에스겔과 같은 이 절망의 시대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더 강해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에스겔이 본 환상이 무엇입니까?

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4.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여기서 보면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옵니다. 이것은 북쪽 바벨론이 유다나라를 폭풍과 큰 구름과 같이 침공해 올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분명 암울하고 절망적이고 어려운 역사적 현실입니다. 우리가 만일 이것만 본다면 낙담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4절을 다시 한 번 더 주목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북방으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 그 속에서 무엇이 보입니까?

바로 희망의 불빛이 보입니다. 그 폭풍 속에서도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을 사면을 비취는데, 그 불 빛 가운데서 단 쇠 같은 것이 보입니다. 단 쇠란 빛을 발하는 금속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환상들을 볼 때 항상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저자가 단 쇠가 보인다고 하지 않습니다. 단 쇠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에스겔이 지금 스마트폰을 본다면 어떻게 표현을 하겠습니까? 에스겔이 지금 스마트 폰을 본다면 이 스마트폰도 빛나는 금속인 단 쇠 같은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단 쇠 같은 것이 무엇인줄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단 쇠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단 쇠의 의미는 아무리 큰 절망의 시대라 할지라도 희망의 빛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단 쇠 같은 것이 어두움과 절망의 시대에 희망의 빛입니까?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면 단 쇠 같은 것 속에 무엇이 보입니까? 5절에 보시면 그 속에 보니까 네 생물의형상이 나타납니다(5절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6절에 각 생물을 자세히 보면 머리는 하나인데 얼굴은 4개입니다. 10절에 보면 정면은 사람 얼굴과 같고, 오른 편은 사자의 얼굴과 같고, 왼편은 의 얼굴과 같고, 뒷면은 독수리의 얼굴과 같습니다. 특별히 네 생물 주위에는 엄청나게 큰 바퀴가 하나씩 있는데 바퀴는 보석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16).그런데 이 바퀴 둘레에는 번쩍이는 눈들이 많이 박혀 있습니다(18).

-그런데 요한계시록에도 보면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고, 그 네 생물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고 하고 있습니다.

4: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에스겔이 본 환상과 거의 같습니다(요한계시록은 얼굴을 돌려서 보았다). 여기서 네 생물에서 4란 숫자는 사방, 즉 세상의 모든 곳을 나타냅니다. 생물의 얼굴과 모양이 사람과 같고, 사자 같고, 송아지 같고, 독수리 같다는 말은 사람은 모든 피조물의 대표입니다. 또 사자는 맹수의 대표입니다. 또 소는 가축의 대표입니다. 그리고 독수리는 조류의 대표입니다. 그러니까 이 네 생물은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주관하는 살펴보는 영적존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그들에게 눈에 가득하다는 것은 이 네 생물들이 사람과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다 살펴보고 있고 감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다 하나님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네 생물에게 빠른 바퀴가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이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빨리 빨리 달려가서 그 모든 사정들을 다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 네 생물보다 더 중요한 환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보좌의 환상입니다. 1:26. 그 머리(네 생물의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에스겔시대는 바벨론이 전 세계를 통치하고 지배를 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 환상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바벨론이 통치하고 지배하는 시대할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이 세계만국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보좌에 앉아 계시다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환상이 폭풍 같은 역사적 어두운 역사적 현실 가운데서 에스겔에게 어떻게 희망의 빛이 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고 잡혀가 있는 암울한 역사적 현실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셔서 하늘의 보좌가운데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네 생물을 통하여 이 세상의 모든 형편들을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십니다. 아무리 이 세상이 빨리 빨리 돌아가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십니다.

--이런 하늘의 광경이 에스겔과 요한계시록에서 같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지금 이 환상은 오늘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아무리 흑암과 같고 암울해도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하늘의 보좌에 영광스럽게 계십니다. 그리고 그 곁에 예수그리스도가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또 그 앞에 네 생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모든 역사적 형편과 우리 개인적인 모든 형편들을 지금도 감찰하고 계십니다(미국중간선거-상원이김-대법관-동성애판결)

그런데 여러분 특별히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세계와 동물의 세계와 가축의 세계와 조류의 모든 세계의 형편을 감찰하고 계시는데, 그 중에 특히 누구를 더 감찰하고 계시겠습니까?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눈동자와 같이 더 감찰하고 계시고 보고 계십니다.

시편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여기서 생각하고 계시다는 말은 기억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우주 만물가운데, 또 무수한 많은 사람가운데서 특별히 나를 생각하고 계시고 기억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특별히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은 나의 고통을 기억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인자가 무엇이기에...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여기서 돌보신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파카드'란 말인데, “주의깊게 돌보신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만 나를 알아주시고 기억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이 세상에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아도 하나님만이 나를 알아주시고 당신의 정확한 눈동자로 나를 보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왜 이 환상이 에스겔에게 희망의 빛이 됩니까? 그들을 포로로 잡고 있는 바벨론을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다가 언젠가는 그들을 물리쳐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아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만 보고 현실만을 본다면 폭풍과 검은 구름 같은 어두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전히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살아계셔서 지금 온 세상을 살펴보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 살아계셔서 고통당하고 있는 나를 기억하고 계시고, 지켜보고 계시고 돌보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또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면 이 모든 것을 살펴보고 계시다면 왜 당장 이 땅 가운데서 바벨론과 같은 세상을 물리치고 우리를 구원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 해답이 무엇입니까?

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에스겔시대로 말하면 앞으로 유다나라가 멸망하고 그리고 그 후에 70년이 지나야 포로에서 귀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왜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을 주관하시고, 우리의 삶을 감찰하신다면 왜 당장 하나님의 영광을 내게 보여주지 않습니까?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기까지 하나님께서 에스겔과 같이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과 권능으로 단련시키시고 강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무리 절망적인 시대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고, 그 가운데서 특별히 나를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고 돌보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과 권능으로 우리를 더 강하게 하시고 단련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만약 우리가 에스겔과 같은 절망적 상황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어두운 현실만을 바라보지 말고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늘의 세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봄으로 날마다 엎드려 그 말씀을 들으시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28). 그래서 2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8.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

둘째, 어두운 현실가운데서도 하늘의 세계에 계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4:8.--그들이(네 생물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여기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는 말은 다르다 다르다 다르다는 말입니다.

/나는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절대 부족하거나 연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달리 언제나 전능하시고 강하십니다. 나는 비록 이 세상에서 실패하고 좌절하지만 하나님은 절대 실패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이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은 절대 이 세상가운데 싸이지 않습니다. 나는 천만번 넘어지지만 하나님은 절대 넘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병들어 죽어서 없어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세세토록 살아계셔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 속에서 날마다 나와 다르시고, 세상과 다르시고, 모든 사람들과는 다르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시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셋째, 어두운 현실가운데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제사장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여기서 무엇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에스겔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현실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신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무엇입니까?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씻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씻어줌으로 다시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즉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왕 같은 제사장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이 세상과 우리들의 모든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다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이 땅에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도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이 세상을 회복하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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