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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성령체험(롬5:5)

by 금빛돌 2018. 5. 19.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기독교에는 삼대절기가 있습니다. 성탄절, 그리고 부활절, 그리고 성령강림절입니다. 성령강림절은 부활절 후 50째 되는 날로서, 오순절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고,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 것을 기념한 날이고, 성령강림절(또는 오순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주셔서 신약의 교회가 탄생한 날 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기 전에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간헐적으로 임했습니다. 또 임하시더라도 떠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은 성령하나님이 우리가운데 영원히 또 충만히 거하시게 된 시발점이 된 사건입니다.

이것을 비유로 하면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은 마치 마르지 않는 큰 저수지가 생긴 사건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 저수지의 물줄기가 각 교회에게 부어지게 되었고, 또 각 개인에게 부어지게 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제 예수를 믿는 우리 안에 성령이 영원히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 거하여 계신 성령하나님은 영원토록 우리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고, 우리를 지키시고 보존하시고, 우리와 함께 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된 성령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먼저 우리 안에서 죄를 깨닫게 해주고, 죄에 대해서 꾸짖고 책망해주시는 일을 하십니다(16:8).

만일 우리에게 성령이 없었다면 저와 여러분은 절대 죄에 대해서 절망하거나 탄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우리가 도덕적인 규범만 지키면 나는 죄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에 대한 목마름을 주십니다.

또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사건이 나를 위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게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식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원사건에 대해서 들어서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아니면 그 십자가의 사건이 나를 위한 나의 죄를 위한 구원사건임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무엇보다 2000년 전 십자가의 사건을 우리에게 체험시켜 주시고, 나를 위한 사건으로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영적으로 거듭나게 해 주십니다.

-또한 우리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하나님의 지극한 은혜와 사랑을 우리 마음으로 느끼게 해주시고, 깨닫게 해주십니다(5:5).

또한 우리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이기게 하시고, 우리 육신의 연약함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우리 안에 육신의 생각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항상 조급한 마음을 주고, 시기하게 만들고 질투하게 만들고 분 내게 만들고 참지 못하게 만들고 다투게 하여서 결국 죄를 짓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우리에게 온유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고십니다. 인내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또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주셔서 우리로 성령 안에서 하나 되게 해주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끝까지 참으라 인내하라 하나님이 값아 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이 아니고는 절대 우리는 육신의 조급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하나님이 아니면 우리는 절대 기도할 수 없습니다. 또 기도하려고 해도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힘과 은혜를 주십니다.

또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은 우리가 외롭고 어렵고 힘들 때 우리에게 위로해주시고 격려해시고 삶의 희망과 소망을 가지게 해주십니다.

또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은 우리 안에서 우리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시고, 우리 몸도 치료해주심으로 우리를 더 온전하게 해 주십니다.

또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해주십니다.

또한 성령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기쁨을 알게 해 주시고,또 누리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은 이성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감정의 영역, 즉 체험의 영역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성을 우월시하고 감정을 저급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아는 것만 안전하다고 여겼고, 감정으로, 체험적으로 아는 것에 대해서는 위험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서구사상의 영향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이성으로 지식으로만 아니라 가슴으로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너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단순히 이론적인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을 머리로만 아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그 살아계신 하나님을 감정적으로 체험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서구에 기독교가 몰락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머리로만 알았고, 체험적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을 지식적으로만 안다는 것은 마치 저 꽃에 꿀이 있다는 것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저 꽃 속에 꿀이 있다는 것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만 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꽃 속에 꿀을 맛보는 체험이 있어야지 꽃 속의 꿀을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꽃 속의 꿀을 우리가 어떻게 맛보고 체험할 수 있습니까? 벌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꿀을 맛보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어떻게 체험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성령하나님을 통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살아 계신하나님을, 우리를 사랑 하시는 예수님을 맛보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이 시대는 더욱더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체험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지금 우리는 감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로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이 지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감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감정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말이고, 바른 지식이라 하더라도 감정이 움직이지 않으면 절대 행동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리 지식적으로 말해주어도 사람들이 하나님을 감정적으로 체험하지 아니하면 믿고 따르지 않습니다.

--특별이 지금 이시대가 첨단 과학과 기계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감정적으로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감동체험, 영적체험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학자들은 21세기가 되면 첨단 정보화 시대와 함께 영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교회는 이 시대의 영적 필요를 채워주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진정한 영적인 체험, 즉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문균씨는 하나님께 대한 논리 정연한 이론은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체험이 없을 때사람들은 생명의 힘을 느낄 수 없는 교회를 떠나서 갖가지 미신적인 점술이나 뉴에이지의 종교적인 감성에 빠져들 수 없게 된다. 생명의 힘을 상실한 교회는 더 이상 매력을 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서구에서는 교회를 떠나는 이들의 수가 급증하는 반면에 교회 밖에서 이상한 영적인 체험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주요 원인은 교회에서 진정한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떠난 자들을 상대로 실시된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교회출석을 중단하는 주 원인은 교회가 지루하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예배가 좀처럼 스릴 있고 감동적인 체험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브라운은 교회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인 희열과 경험을 장려하기 보다는 억압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서구의 교회에서는 이론과 교리를 치중하는 교회는 쇠퇴하는 반면 감동과 체험을 강조하는 교회가 부흥이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론과 교리, 말씀을 무시할 수 는 없습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감정과 체험만 중요시 한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감정과 체험이 중요하다고해서 요즘에는 너무 음악적인 기교를 통해서 하나님께 대한 체험을 조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씨에스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씀이 지도라면 체험은 해변에서 수영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만일 말씀의 지도만 들고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다면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의 지도가 없이 무조건 물속에 들어가면 잘못하면 깊은 해변에 빠져서 죽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는 바른 말씀의 지도가 잘 갖추어지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과 바른 신학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바른 말씀과 신학을 가지고 있는데,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체험이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말씀과 체험, 두 가지가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합니다.

--특히 사회가 점점 더 혼란하고. 사람들의 마음들이 강팍해지고 있는 이 세상 가운데서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바른 체험이 정말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령하나님을 통해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데, 우리는 방언이나 병 고침과 같은 특별한 체험만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하나님을 통한 방언과 병 고침과 같은 체험만 성령체험이라고 하면 우리는 잘못된 체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하나님을 통한 바른 체험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성령하나님을 통한 바른 체험이란 어떤 것입니까?

첫째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1907114일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열린 사경회에서 참석한 사람들은 교회 안에 들어올 때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래함 리 선교사는 그날 저녁에 자신이 그때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성령의 특별한 임재가 있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어떤 말로도 어제 있었던 그 집회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제까지 결코 목도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성령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19세기에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났던 부흥에 관한 기록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상한 임재가 온 회중을 뒤덮었다. 갑자가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으로 충만해 졌다. --능력으로 가득차고 넘치는 권세, 사랑, 거룩함, 절대적 즐거움, 부드러움과 찬란한 빛이 구속주의 열굴에서 나타나 많은 영혼들 속에 남아 있는 의심과 죄를 멀리 쫓아버렸다고 증언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모두 체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

이렇게 성령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체험이 진정한 하나님께 대한 바른 체험입니다.

조지 휘필드는 주님께서 밤낮으로 내게 그의 사랑을 채우신다--나는 너무나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압도되어 거의 호흡이 끊어질 정도다햇습니다.

찰스 피니는성령이 사랑의 파도처럼 내게 밀려 오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또 해리스란 전도자는 나의 영혼에 소낙비가 내렸다. 그래서 나는 도무지 나 자신을 억제할수 없었다---나는 온전한 사랑에 사로잡혔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의 충만한 사랑이었다

-저도 2000년도 새벽기도를 하면서 이런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 새벽마다 5시간씩 무릎을 끓고 하나님 정말 나를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아이를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때였습니다. 아침 9시쯤 되었을까 기도하는데 갑자기 제 마음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로마서55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는 말씀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사실 그때 까지 그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 정말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대로 느껴지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벌떡 일어서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나를 사랑하신다------그 사랑의 증거는 예수님의 십자가다--이렇게 외치게 되었습니다-물론 그동안 제가 이론적으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증거는 예수님의 십자가라고 가르쳤습니다--그런데 그때 정말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느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성경을 보니까 그것이 바로 성령충만의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래서 그 당시에는 붉은 색만 보아도--------눈물이 나고--감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다른 곳에 강의나 설교를 하러 갈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했습니다-이런 체험은 그 전에 있었던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평-------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하심에 대한 의심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습니다-또 병이 낫지 않아도 십자가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지금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완전히 깨닫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성령 충만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체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는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과 사랑하신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사랑에 대한 체험을 할 수 있습니까?---이것은 물로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우리가 무조건 원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무조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지금 나와 함께 계신 것이 감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내 느낌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감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먼저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윗이 시편에서 자주 고백했던 것처럼 감정으로 마치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처럼 느껴지고, 내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때 붙들어야할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참된 신앙이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있지 않다는 감정에 나를 맡기지 아니하고, 신실하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붙들어 놓고, 그 말씀으로 불안한 나를 제어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해서 먼저 감정을 붙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무 느낌이 없어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며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죽을 병에 걸린 어리 아이가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빠 나 곧 죽게 되지--그러면 나 천국갈수 있어아빠-지금 내가 너무 약한데 하나님은 과연 날 사랑하실까 라고 물었습니다.--그때 그 아이를 위해서 지었던 찬송이 563장입니다.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너무 힘들어서 순간적으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사랑하신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도 하나님께 날 사랑하시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성경입니다-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즉 나와 함께 하시며 절대 나를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고 있을 때-언젠가 감정적으로도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감정적으로도 체험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어떻게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배입니다--대부분 하나님의 살아계신 임재를 경험한 간증을 보면 예배시간에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이런 체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령하나님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예배시간에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신 위엄과 영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여러분 이 예배시간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두 체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 번째--어떻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가?
성도의 교제와 사랑의 연합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3:17--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라고 합니다. 이것을 쉽게 말씀을 드리면 너희가 사랑이 뿌리가 되고 기초가 되면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고 화해하고 용서하면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3:18. 능히 (서로 사랑하는)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우리가 입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면 우리가 서로 사랑한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적으로 알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장로님이 되셨는데 어떤 집사님이 너무 감격해하면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말씀대로 교회 앞에 사시는 어떤 장로님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과 서로 화해를 했습니다. 그러니 제 마음 가운데 정말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진다고 하셨습니다.

얼마 전에 어머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님 장례식 때 친척 분 중에서 한 분만을 초청하지 않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서로 용서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분을 용서하고 화해를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랬는데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할 때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해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합니다. 또 예수님은 하루에 일흔 번식 일곱 번 490번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이 말씀대로 먼저 서로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것을 진정으로 체험하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옆에 분들과 손을 잡으시면서 함께 이 찬양을 불러보겠습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그래서 우리안에 진정한 사랑의 교제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언제 살아계신 하나님을 어떻게 체험할수 있습니까?

그것은 사망의 음침할 골짜기를 통과할 때입니다. 우리 인생이 실패하고 좌절할 때입니다. 아 이제 나는 죽었구나 나는 더 이상 살수 없구나 할 때입니다. 그때가 하나님 앞에서 갈급한 심정으로 기도함으로 나갈 때입니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아무 일이 없을 때 상한 심령으로 갈급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나가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하나님체험 방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인생의 위기상황이 닥치지 아니하면 상한 심령, 갈급한 심령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영혼의 어두운 밤을 주십니다. 사역에 실패를 주십니다. 가정에 실패를 주십니다. 사람에게 버림받는 경험을 하게 하십니다. 육신적 극한 곤란을 격게 하십니다. 그때 그동안 나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마치 내게 숨어계시는 것 같은 그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내 삶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껴지고 만져지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의 인생이 사망의 음침할 골짜기와 같다고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더 간절히 마음으로 성령하나님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며,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계신 것을 마음으로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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