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주일에 새로운 말씀이 없을까 생각했지만 역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어버이 주일에 제일 적합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바로 보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치 거울과 같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내가 오늘 아침에 거울을 보았으니 이제 더 볼 것이 없다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내 코가 여기에 있고, 내 눈이 여기에 있는 것을 알았으니 더 이상 거울을 볼 필요가 없다고 하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내 얼굴이 어떻게 생긴 것을 잘 알지만 매일 보아야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말씀을 잘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볼 것이 없다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이 말씀을 보면서 자녀로서 부모님께 대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또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더 자녀로서 부모로서의 모습을 점검해보시고,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가정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서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에베소서 1장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세전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선택을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다는 것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우리는 이런 영적인 복을 받은 자입니다. 이렇게 하늘에 속한 영적인 복에 대해서 말씀하다가 오늘 이 본문에서는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첫 계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재로 십계명을 보면 첫 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입니다.
그러면 왜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첫 계명이라고 합니까?
먼저 십계명 가운데 1-4계명은 하나님과 관련한 계명이고 5-10계명은 사람과 관련한 계명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사람과 관련한 계명들 중에서는 가장 첫 번째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또 여기서 ‘첫’ 에 해당하는 ‘프로테’ 에는 순서적으로 ‘첫째’ 라는 뜻도 있지만 중요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이란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첫 계명이라고 하는 것은 십계명에서 매우 중요한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십계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십계명 서문입니다. 십계명서문에서 “출20: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십계명은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값없이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사랑하고 섬겨야합니다. 그것이 일계명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내가 만들어서 섬기지 말아야합니다. 그것이 2계명입니다. 또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아야합니다. 그것이 3계명입니다. 또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안식일을 지켜야합니다. 성경에서 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합니까? 그 이유는 아무 일한 것이 없는 우리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합니다. 그리고 5계명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사람에 대한 첫 계명으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합니까? 또 이 계명이 매우 중요한 계명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인간이 되면, 당연히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인간은 부모의 은혜를 알게 되고, 부모의 은혜를 아는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도 알게 됩니다. 또 그것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인간이 되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5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과 6-10계명에 나타난 인간 사랑에 대한 계명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정말 매우 중요한 계명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또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공경하여 섬기는 것과 부모를 공경하여 섬기는 것을 다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려야합니다. 그런데 헌금을 하다 보니 부모님께 드릴 용돈이 없습니다. 이때 “하나님께 헌금을 하다 보니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합니다. 우리가 볼 때 “그 사람 신앙이 좋은 사람이다, 그 사람은 부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 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사람에 대해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공경함으로 잘 섬긴다면,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잘 공경하여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저 자신을 비추어 볼 때도 정말 이 말씀이 옳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겉으로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주일성수는 토요일 열두시 땡 하면 공부를 그만두었고, 주일 밤 열두시 땡 하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겉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단순히 율법적 규칙으로 의무감으로 계명을 지키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늘 정죄하고 비판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한번은 교회 선배들과 같이 잠을 잤는데, 교회선배들이 몰래 술을 먹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 선배들을 마음가운데 경멸하고 정죄했습니다. 또 하나님에 대해서도 전혀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란 단순히 나를 율법적으로 억압하고 명령하는 분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대 때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줄 알았습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전에는 하나님께 대하여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을 주시지 않았기에 늘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나니까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을 주시기 않아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또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은혜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부모님께 대하여서도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을 해 주시지 않았기에 마음으로는 늘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되자 부모님의 은혜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감사하게 되고, 이제는 진정으로 부모님에 대하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여기서 공경이 우선입니까? 아니면 순종이 우선입니까? 공경이 우선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억지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공경함으로 순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공경이 무슨 말입니까? 공경이란 무겁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부모님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무겁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또 여기서 무겁게 여긴다는 말도 부담스러움으로 무겁게 여긴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무겁게 여긴다는 말은 감사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겁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부모님을 가볍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분들이 우리보다 시대적인 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볍게 여길 수 있습니다. 또 그분들이 우리보다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가볍게 여길 수가 있습니다. 또 그분들이 우리보다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볍게 여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부모를 절대 인간적인 이유들로 가볍게 여기지 말라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느냐 그렇다면 하나님 섬기듯이 부모를 공경함으로 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까?
효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부모를 공경하는 다섯 가지의 요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선은 자주 뵈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말은 단순히 말로만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직접 찾아뵈어야합니다. 만일 찾아뵙지 못하면 전화라도 드려야합니다. 여러분 지난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전화라도 드렸습니까? 연세가 드시면 제일 힘드신 것이 외로운 것입니다.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연락이 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일 큰 효도는 자주 찾아뵙는 것입니다. 또 자주 연락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주 손을 잡아 드려야합니다. 할 수 있다면 자주 안아 드려야합니다.
뉴욕대학의 돌로레스 크리저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손에는 감촉을 느낄 수 있는 기관이 오백만 개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손을 마주잡으면 혈액 속에 있는 헤모글로빈의 산소 운반작용을 크게 촉진시킵니다. 재생명 능력, 재생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시험 삼아 환자들에게 적용해보았습니다. 환자 둘이 있는데, 한 환자의 가족에게는 자주 와서 환자를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주라고 하고, 다른 한 환자의 가족에게는 만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겠습니까? 가족들이 사랑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준 환자는 그렇지 못한 환자보다 배나 빨리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옆에 있는 분들의 손을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이것은 잘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부모님을 만나면 꼭 손이라도 잡아 드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연세가 드시면 어린아이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섭섭하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자주 찾아뵈고 자주 연락을 드려야합니다. 또 자주 찾아가서 손이라도 잡아 드려야합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어르신들을 만날 때 인사하시면서 손을 꼭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또 찾아뵐 때 빈손으로 가지 말아야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빈손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고 드릴 것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너무나 큰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부모님을 찾아 뵐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을 찾아뵐 때 빈손으로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부모님께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몇 달 전에 어머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집에 세를 든 사람이 나갔는데, 집이 좋지 않아서 세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조심스럽게 한 달에 10만원만 보내주면 어떻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로 15만원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떨리는 음성으로 너무 많이 보내주어서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한다고 하고 찾아뵙기도 합니다. 또 돈을 드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무 말이 없습니다. 또 부모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려 하면 “아버지는 아무 것도 모르시잖아요, 모르면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라고 합니다. 이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자주 찾아뵙고 부모님에게 조곤조곤하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또 부모님들로 말을 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그동안 이랬고 저랬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아버지 어머니 요즘 이런 일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말을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입니다. 그래서 외로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말을 많이 하시고, 또 말을 더 많이 하시게 하기 바랍니다.
셋째,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님의 높은 존재의 가치를 인정해드리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는 나이에 따라서 변하다고 합니다. 네 살 때는 “아버지는 전지전능하다. 모르는 것도 없고, 못하는 것도 없다. 힘 도 참 세다”고 생각을 합니다. 열두 살이 되면 “아버지는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또 열 네 살이 되면 “아버지는 생각하는 것이 모두 구식이다. 마음에 안 든다” 고 생각합니다. 또 스물한 살이 되면 “아버지는 골동품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스물 다섯살이 되면 생각이 좀 달라집니다. “아버지도 제법 아는 것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서른 살이 되면 내가 결정할 이 문제를 놓고 “아버지에게 의논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오십 세가 되면 ”역시 아버지는 훌륭했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육십이 넘으면 ”나는 아버지만 못 하구나“라는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 많습니다. “원수를 저주하지 말고, 사랑하고 축복하라”고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보다 몇 천만 배 더 오래살고 계신 분이십니다. 또 우리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공경함으로 순종해야합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님들의 말씀이 이해가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우리보다 더 오래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격었던 모든 일들을 겪으시고, 경험하셨던 분들이십니다. 또 지식보다 더 귀한 삶의 지혜를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님의 존재가치를 더 귀하게 생각하고 인정해드리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님들이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부모님들의 미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 부모님들의 미래는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볼 때 미래가 보이도록 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한다고 해 놓고 자녀들의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부모님들은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까? 무엇보다 자녀인 내가 잘되어야 합니다.
저는 제가 제일 어렵고 힘들 때 부모님을 생각합니다. 내가 만일 무너지고 넘어지면 나 자신만 아니라 나를 나보다 더 염려하시는 부모님이 어떠실까 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잘되고 못되는 것을 단순히 나의 미래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잘되고 못되는 것은 나의 미래만 아니라 부모님들의 미래입니다. 그래서 나만 아니라 부모님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내가 잘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눈을 감으실 때 자녀들을 볼 때 아무 걱정이 없도록 해드리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혹시 예수를 잘 믿지 않는 자녀들이 있다고 한다면 제일 큰 부모공경은 예수를 잘 믿는 것입니다. 자녀가 아무리 잘 되어도 예수를 믿지 않고 지옥 가는 것을 보고 편히 눈을 감을 부모는 없습니다. 이와 같이 부모님들이 자녀를 보고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섯째는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항상 이런 말을 합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사셨습니까? 그때 아버지는 어떻게 말하십니까?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였더라도 너희들이라도 그렇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 고 말씀하십니다. 왜 우리가 부모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순종해야합니까? 그것이 자녀를 잘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의 유일한 바람은 자녀가 잘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부모님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였을지라도 자녀에게는 좋은 말씀만 하십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의 말씀이 정말 나를 위한 말씀이라고 여기시고 공경함으로 기쁨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또 이렇게 부모를 공경하기 위해서 셈과 야벳처럼 부모의 연약과 실수에 대해서 덮어주고 이해하는 자녀가 되어야합니다.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하체를 드러낸 것은 분명 잘못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들추고 공개하고 드러낸 함은 하나님의 영원한 저주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하나님과 같이 공경해야한다고 하니까 부모님에 대해서 하나님처럼 완벽한 존재로 생각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부모는 절대 하나님처럼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 자녀들을 먹이고 살리느라고 손에 때가 묻으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절대 부모를 공경할 수 없다” 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부모님들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덮어주신 것처럼 우리 자녀들로 부모님들의 연약을 덮어 주어야합니다. 죽은 자와 아내와 부모는 절대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는 절대적 선은 아니지만, 자녀만큼은 부모를 선으로 여겨줌으로 공경해야합니다.
이렇게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함으로 순종하면 어떤 복이 주어집니까?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땅에서 오래 사는 것만이 축복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모든 것이 잘되면서 장수하는 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부모를 공경함으로 이 땅에서 잘됨으로 장수하는 축복을 받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주님께서 자녀들에게만 명령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부모님들에게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여기서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과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 중에서 어떤 말씀이 우선입니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음으로 양육하고 훈계해야합니다. 또 여기서 자녀를 노엽게 한다는 말은 자녀를 크게 낙심시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장 21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그러면 부모들이 자녀를 노엽게 하여 낙심시키는 일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1) 부모들이 외식된 신앙생활을 할 때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더 많이 보겠습니까? 아니면 집에서 같이 생활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겠습니까?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더 많이 봅니다. 그래서 우리자녀들이 어떨 때 부모에 대해서 낙심하고 실망하겠습니까? 단순히 이 예배시간에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아닙니다. 도리어 정말 거룩하고 경건한 예배를 드리고 집에서 와서 자녀에게 하는 사소한 행동과 말들입니다. 특별히 가정에서 정말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어떻게 하느냐를 봅니다. 이사는 하는데 집값이 더 좋은 곳보다 교회에 가까이 오는 것을 자녀는 봅니다.
그런데 우리 자녀들이 볼 때 부모님들이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한다고 느낄 때 자녀들은 노여워합니다. 낙심합니다. 그리고 부모님께만 아니라 하나님께 조차 낙심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부모의 신앙의 시험지와 같습니다. 부모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 왔느냐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사무엘과 같이 신앙의 모범을 보여도 자녀들이 그 본을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또 부모가 좋은 본을 보여주지 않아도 하나님의 은혜로 잘 되는 자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것은 자녀는 부모의 신앙의 본을 따라갑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기 위해서 가정에서 일상의 삶을 통해서 신앙을 보여드리는 부모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부모들이 자녀를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여길 때 자녀들이 노여워하고 낙심합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부모 자신의 욕망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자녀를 위한 것인지 항상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훌륭한 부모는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그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을 찾아주는 부모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녀가 하나님 앞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찾아주어야 합니다. 물론 자녀가 자기가 하고 싶은 비전대로 살아간다고 하면서 너무 비현실적인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자녀들은 모두 연예인이 꿈입니다. 또 경제적으로 아무 대책이 없는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이때도 무조건 안 된다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분명 현실 가운데 실패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 실패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 실패도 경험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처인 사라를 통해서 난 자녀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본처가 아닌 자를 통해서 자녀를 가지려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무조건 막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13년 동안 그에게 침묵하셨습니다(창17:1). 그러시다가 13년 뒤에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말씀하시고 본처인 사라를 통해 자녀를 낳게 하십니다. 요즘에는 리더쉽이 아니라 코칭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리더쉽이란 리더가 원하는 데로 일방적으로 무조건 이끄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코칭이란 말 그대로 코치만 해주고 스스로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리더가 아니라 코치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자녀의 온전한 리더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가 하나님의 비전과 인도하심을 잘 받을 수 있는 코치의 역할을 잘 해주시기 바랍니다.
3)또 자녀의 인격을 손상시키는 말들이 자녀를 노엽게 하고 실망시킵니다.
누구보다 자녀를 더 잘 아는 분들이 부모입니다. 그런데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자녀에 대해서 너무 쉽게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녀에 대해서 부모가 말을 할 때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단순하게 말 할 수 있습니다. “너 왜 이리 자꾸 늦어, 또 왜 그렇게 꾸물대는 거야”는 말은 단순한 행동에 관한 말입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그런 행동들을 보면서 “너는 미련하고 게으른 놈이야”라고 자녀의 인격을 손상시키는 말들을 하기가 너무 쉽습니다.
/특히 부모들은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많기에 칭찬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 자녀에 대해서 바라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작은 일이라도 칭찬합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고 쉽게 말해버립니다. 이렇게 부모들이 자녀의 인격을 손상시키는 말들을 통해서 자녀는 노여워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우리 자녀들이 비록 부족하지만, 더 적극적으로 칭찬할 수 있는 부모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교회의 젊은 사람들이 비록 부족하더라도 잘 한다고 칭찬해주시는 어르신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단순히 가정에서만 아닙니다.
/또 우리교회의 어르신들을 공경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거울삼아서 더 훌륭한 자녀와 부모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영적인 복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점점 더 잘 됨으로 장수한 축복을 받으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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