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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선교적 교회(행13:1-3)

by 금빛돌 2018. 4. 14.

여러분 우리가 매주 예배를 드릴 때 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면서 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 중요한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현실가운데 안주하지 않고, 말씀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상을 향하여 달려가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지 않으면 항상 이만 하면 되었다 생각합니다. 또 내 현실이 이러니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끊임없이 보는 이유는 비록 지금 우리의 현실이 이러하다 할지라도 말씀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생각할 때 말씀의 이상을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산상설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래전에 산상설교를 보면서 너무나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산상설교대로 살아보고자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이름도 산상설교의 교회라고 하면 어떻겠냐는 생각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비록 완전하게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지만 우리는 그 말씀의 이상을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특히 우리는 교회를 바라볼 때 말씀의 이상을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저는 교회를 생각할 때 마다 묵상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1:23절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어떤 곳입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하신 모든 것이 충만한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복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의 충만한 것으로 충만하게 되어야 이 땅이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땅의 교회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라는 말씀입니다. 또 이 땅의 교회가 이 어두운 세상의 빛이고, 희망이고 대안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볼 때 마다 절망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현실의 교회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하고 거룩한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상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기 보다는 교회가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봅니다.

--그러나 저는 죽을 때까지 이 말씀의 이상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교회가 영광스러운 단체로서 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고, 이 어두운 세상의 희망이자 대안으로서의 교회를 꿈꾸고 있습니다(주님 언젠가 이런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또 오늘 말씀 보면 현실가운데 우리가 이상적으로 꿈꾸어야 할 교회의 모습이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입니다. 사도행전을 볼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교회가 안디옥교회입니다. 과거에는 초대교회하면 예루살렘 교회를 생각했습니다. 그 교회가 교회의 이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을 자세히 보면 예루살렘교회는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6장에 보면 예루살렘교회는 교회 안에서 누구를 구제할 것인가를 두고 서로 다툼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무엇보다 예루살렘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복음을 유대인과 예루살렘에만 머물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루살렘교회의 문제를 극복한 교회가 안디옥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복음을 유대인에게만 전하지 않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였습니다.

또 안디옥교회는 바나바와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성령 충만함으로 따뜻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또 바나바는 바울과 같이 새로운 사람이 왔을 때,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그를 따뜻한 받아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나중에는 자신보다 더 나은 사도 바울을 위해 사역의 주도권조차도 내어준 사람이었습니다. 또 실패한 마가조차도 훌륭한 사역자로 키워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정말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는 훌륭한 지도자 바나바 한 사람 때문에 큰 무리가 주님께로 돌아와서 수적으로도 성장하는 교회였습니다.

또 행1126절에 보면 안디옥교회는 단순히 수적으로만 성장하는 교회가 아니라, 한 사람 한사람을 말씀으로 철저히 가르치고 훈련해서, 교인들을 세상속의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드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최초로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이름을 얻는 교회였습니다.

또 안디옥교회는 행1127-30을 보면 예루살렘교회가 흉년이 들어 힘들었을 때 힘을 다해서 구제하였던 교회였습니다.

이와 같이 안디옥교회는 모든 교회의 이상이자 모범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안디옥교회가 이렇게 이상적인 교회가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이유는 안디옥교회는 선교적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안디옥교회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선교를 위해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선교를 위해서 하나가 되었고, 선교를 위해서 제자훈련이 있었고, 선교를 위해서 지도자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안디옥교회의 두 지도자를 선교사로 파송할 수 있었습니다. 안디옥교회를 요즘으로 말하면 선교적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선교적 교회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몇 년 전부터 한국교회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는 말입니다. 선교적 교회란 단순히 선교헌금을 많이 하고, 또 선교사를 파송하고, 또 선교지에 예배당을 짓는 정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선교적 교회란 교회의 본질 자체를 선교에 두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모든 모임과 사역이 오직 전도와 선교에 초점을 둔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교회가 안디옥교회와 같이 선교적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우리의 현실이 완전한 선교적 교회가 되기는 어려워도 선교적 교회를 지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교회가 안디옥교회와 같이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1. 첫째, 안디옥교회와 같이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해서 교회 안에 차별이 없어야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여기서 보면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이 5명이 나옵니다. 우리는 어느 교회라고 하면 한 사람의 지도자를 떠 올리기가 쉽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대표적인 지도자였던 바나바가 있었지만, 그 한 사람만 이야기 하지 않고 5명을 모두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안디옥 교회가 한 사람에 의해 끌어져 가는 교회가 아니라, 공동 지도체제로 움직이는 교회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은 교회에서 수퍼 목사나 수퍼 평신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모두가 함께 지어져 가는 공동체입니다. 바로 안디옥교회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또 지도자 그룹에 다양한 신분과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나바는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자라는 뜻에서 바나바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누가 나옵니까? 니게르라하는 시므온이 나옵니다. 니게르란 니그로란 말로서 흑인을 가리킵니다. 흑인은 당시에 가난한 사람들에 속했습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구레네(키프로스) 즉 북아프리카 지역에 사는 사람입니다. 또 그 다음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이 나옵니다. 마나엔은 헤롯과 같이 왕궁에서 생활한 왕족출신입니다. 헤롯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유대인의 왕이지만 로마의 편에서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샀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헤롯왕의 젖동생을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또 그 다음은 사울입니다. 바나나는 아주 덕스러운 사람이라면 사울은 높은 학식이 있는 지적인 사람입니다. 또 사울은 초대교회를 핍박했던 바울의 옛 이름입니다.

--이와 같이 안디옥교회는 백인과 흑인과 같은 인종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또 어느 지역출신이냐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라는 것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또 그 신분이 왕족이냐 평민이냐 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또 그 사람의 집안 내력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또 과거에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했느냐 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또 학식이 있느냐 없느냐 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또 심지어 정치적인 성향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당시 그 어떤 집단도 이런 다양한 구성원들로 모일 수 없었습니다. 또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지도자그룹을 형성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어떤 정치집단이-그 어떤 종교집단이--그 어떤 교육집단이-이런 다양한 신분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역사상 인간적인 차별의 철폐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인간적인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한쪽의 집단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노동자의 계급을 주인으로 만들자 하고 결국 모두를 죽이는 집단이 되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라고 한다면 마나엔과 같은 왕족과 바나바와 같은 부자와 사울과 같은 학식 있는 자를 타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디옥교회는 다양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로 역어갔던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면 안디옥교회가 인간적으로는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서로 하나로 묶어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밖에 없습니다.

복음 안에서 돈이 많은 것도, 복음 안에서 왕족 출신인 것도 자랑이 되지 않습니다. 또 복음 안에서 가난한다는 것도, 또한 과거에 그 어떤 잘못을 했다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328 “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나로 모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어떻게 선교적 교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복음 안에서 우리 안에 모든 차별이 없어야합니다. 야고보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합니까? 우리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학식이 있어서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는 학식이 없는 자를 차별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돈이 많아서 구원을 받았다면 돈이 없는 사람을 차별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서 구원을 받았다면 기도를 많이 하지 않는 자를 차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돈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우리의 공로가 절대 아닙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그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그 어떤 지역사람이라도 차별이 없어야합니다. 또 어떤 정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도 차별이 없어야합니다. 또 어떤 세대라도 차별이 없어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신 십자가만을 증거하고 자랑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된장찌개를 좋아합니다. 일주일동안 된장찌개만 먹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맛있는 된장찌개의 비결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다양한 메뉴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된장은 짠 성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된장찌개에는 짠 성분을 중화할 수 있는 단 성분을 가진 양파나 파가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된장의 맛을 흡수 할 수 있는 감자나 호박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감자나 호박이 너무 덮덮하기 때문에 매운 맛을 가진 청량고추가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된장찌개에서 이 모든 맛을 서로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무입니다. 무가 들어가야 모든 맛들을 함께 어우러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두부를 넣어야합니다. 두부는 모든 된장지개의 맛을 흡수해서 우리 입안에 술술 들어가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는 된장의 짠맛을 가진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옳고 바르게 하려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옳음의 짠맛과 함께 사랑의 단맛을 내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또 모든 사람을 흡수는 감자와 호박 같은 사람도 필요하지만, 청량고추와 같은 매운 맛을 내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든 사람을 다 어우러지게 할 수 있는 무와 같은 맛을 내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또 두부와 같이 된장찌개를 우리 입에 술술 들어가게 하는 그런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된장찌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결국 좋은 된장입니다. 또 된장찌개는 반드시 따뜻할 때 먹어야합니다. 우리교회를 된장찌개로 비유하면 된장과 같은 분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무리 맛있는 감자가 있고 호박이 있고 무가 있고 양파가 있고 두부가 있더라도 좋은 된장이 없으면 맛있는 된장찌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우리교회가 선교적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된장찌개와 같이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불로 보글보글 끓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향기가 날마다 나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안에 그 어떤 차별이 없이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향기와 맛이 나타나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해서 주님의 교회가 되어야합니다(2).

오늘 말씀 2절에 보면 안디옥교회 지도자 그룹이 모여서 주를 섬겨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안디옥교회지도자들이 교회의 주인으로 오직 주님만을 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디옥교회 지도자들은 그들 자신을 주로 섬기지 않았습니다. 또 그들 중에 특정한 사람을 주로섬기지도 않았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오직 주님만을 주로 섬기는 주님의 교회였습니다.

요즘 들어 교회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가지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가 교회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의 주인은 장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의 주인은 회중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오직 주님만이 주인이 되는 주님의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교회가 주님의 교회라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주님의 교회라는 말은 특정한 사람의 교회가 아니라--우리 모두의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교회가 주님의 교회가 되는 것이 목사의 첫 번째 사명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목사나 교역자는 절대 자기 마음대로 말할 권리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성경대로 전해야합니다. 목사의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목사가 성경대로 하나님말씀을 증거야 해야 하나님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목사만 아니라 누구라도 성경대로 말하면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합니다.

-- 목사만 주의 종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주의 종이고, 제사장이며, 또 사역자이며, 함께 주의 일을 하는 동역자들입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정신입니다.

또 교회가 주님의 교회가 되기 위해서 먼저 목사가 철저히 주님의 종이자 사람의 종이 되어야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자신이 주님이 종이자 사람의 종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분이 "목사님 주의 종이라는 말은 이해가 되는데, 사람의 종"이라는 말은 너무 지나친 말이 아닙니까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주님의 종이자 모든 성도들의 종입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4:5“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종은 섬기는 사람입니다. 대접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중직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많이 섬기고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종 되는 것이 중직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이 교회가 특정한 사람의 교회라면 누가 교회일할 맛이 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교회가 정말 주님의 교회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교회가 주님의 교회이자 우리 모두의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교회가 주님의 교회며 우리 모두의 교회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면 우리 모두가 주님을 섬기듯이 이 교회에 충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적 교회란 어떤 교회입니까? 선교적 교회란 주님이 주인인 교회이고, 또 우리 모두의 교회입니다. 선교적 교회란 교회 일의 주체가 목사가 아니라, 모든 성도들입니다. 목사는 성도들이 주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동기부여를 해주고, 또 기도로 힘을 주는 조력자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선교적 교회로서 오직 주님이 주인이 되는 교회이며, 또 우리 모두의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또 선교적 교회는 교회의 주인 되신 주님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교회입니다.

--안디옥교회 지도자들은 단순히 모여서 회의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오직 주님만을 섬기고,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성령을 통해서 교회의 주인 되신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2절에 보시면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고 합니다. 그리고 3절에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안디옥교회가 성령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누구를 선교사로 파송합니까?

안디옥교회의 가장 중요한 두 지도자였던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을 했습니다.

지금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바울은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나바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또 그 사람들은 바울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안디옥교회의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그들을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아무 이견이 없이 순종했습니다.

그러면 왜 안디옥 교회가 두 지도자를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까?

그 이유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안디옥교회를 세우신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1119절에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라고 합니다. 초대 교회 사람들은 그들에게 스테반의 일로 큰 환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행11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안디옥교회를 세운 사람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여기서 보시면 안디옥교회를 세웠던 사람들이 이제 누구에게도 복음을 전합니까? 유대인이 아닌 헬라인입니다. 왜 안디옥교회를 세웠던 사람들이 유대인이 아닌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합니까? 그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께서 초대 예루살렘교회에 큰 환난을 주신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환난을 통해서 흩어지게 하심으로 유대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행11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안디옥교회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에 아주 민감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인에게만 아니라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 지도자를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때 그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순종했습니다.

교회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관리형교회와 비전교회입니다.

옛날에는 교회는 오직 관리형의 교회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따라서 관리하고 처리하는 교회였습니다. 물론 교회가 당연히 관리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부흥하는 교회들을 보면 관리형을 뛰어넘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그 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 문제만 가지고--해결하려고 하는 교회가 아니라--문제가 있든 없든 간에--주님이 그 교회에 주시는 비전에 따라서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이 안디옥교회가 그렇습니다.

물론 안디옥교회도 문제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그것이 언급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교회는 단순히 교회의 내부를 관리하는 문제 보다,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했고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비전을 따라서 움직이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내부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었습니다. 또 주님께서 그런 문제들을 다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교회도 안디옥교회처럼 우리 안에 문제가 있건 없건 간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비전을 향해 움직이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비전은 무엇입니까?

전도와 선교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우리의 문제에 메이지 말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전도와 선교의 비전과 사명을 향해서 달려갈 수 있는 안디옥교회와 같은 선교적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적 교회란 그 교회가 그 지역에서 떠났을 때 가장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교인들이 아니라 그 지역사람들이 되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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