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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사시기

쓰임 받고 버림받는 자(삿15:1-20)

by 금빛돌 2017. 12. 6.

오늘 본문은 삼손이 아내를 찾는 과정가운데서 블레셋사람을 물리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420절에 보면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그의 친구에게 준 바 되었더라고 합니다. 삼손의 장인이 삼손을 믿지 못하여 삼손의 아내를 삼손의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1절을 보시면 얼마 후에 삼손이 염소새끼를 가지고 그의 아내를 찾고자 장인의 집에 갑니다. 그런데 장인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네가 네 아내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그를 네 친구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의 동생이 그보다 더 아름다우니 그를 대신해서 아내를 맞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장인이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습니다. 앞장에서 삼손이 분을 낸 것은 블레셋사람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협박하여서 수수께끼를 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삼손이 그의 아내를 미워했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삼손은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에 찾으러 갔는데, 그의 동생을 준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삼손의 아내를 삼손의 친구에게 준 것도 화가 나는데, 삼손의 장인이 삼손의 아내 대신에 동생을 준다는 말 때문에 삼손은 더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3절에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해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4절과 5절을 보시면 삼손이 여우 삼백 마리를 잡아서 꼬리와 꼬리 사이를 매고, 두 꼬리 사이에 홰를 달고 홰에 불을 붙여서 블레셋사람들의 곡식밭으로 몰아 곡식단과 아지 베지

아니한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을 불사릅니다.

그러니까 블레셋사람들이 누가 이 일을 행했는가 하면서 삼손 때문에 그의 아내와 장인을 불사릅니다. 이 사건은 삼손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서 삼손은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고야 말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블레셋사람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이고 에담 바위 틈에 숨습니다(8). 그러니까 블레셋사람들은 삼손에게 보복하기 위해서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가득히 모여들었습니다(9). 그러니까 유다 사람들은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치느냐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삼손을 결박하기 위해서 너희를 치고자 한다고 합니다(10).

그래서 유다사람 삼천 명은 에담 바위 틈에 있는 삼손에게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했느냐고 합니다. 그러니까 삼손은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했을 뿐이라고 합니다(11). 그래서 결국 삼손은 자신들의 동족에 의해서 결박을 당하여 바위틈에서 끌려나옵니다(12,13).

결박을 당한 삼손이 레히에 이르렀을 때 블레셋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서 소리를 지를 때 갑자기 하나님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여 밧줄이 풀어지게 됩니다(14).

그리고 삼손은 나귀의 새 턱뼈를 집어 들고 천명을 죽이고(15), 그곳의 이름을 라맛 레히라고 합니다. 라맛이란 산을 뜻하고, 레히란 턱뼈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나귀의 턱뼈로 사람을 죽여서 높은 산을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삼손은 심히 목이 말라서 여호와께 부르짖기를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고 합니다(18).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레히의 한 우묵한 곳을 터뜨려 물이 솟아나오게 하십니다. 삼손은 그 물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다시 소생하게 되어서 그 샘의 이름을 엔학고레라고 불렀습니다(19). 엔학고래란 그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삼손은 블레셋 사람의 때에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년 동안 지냈습니다(20).

블레셋사람들이 유다사람들을 압제할 때 하나님께서는 분명 삼손을 사사로 쓰셨습니다. 그런데 삼손이 블레셋사람을 치는 과정을 보면 우리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삼손이 블레셋을 물리친 것을 사실인데, 블레셋을 물리치는 동기는 개인적인 복수였습니다. 그의 아내를 찾기 위해서 왔다가 찾지 못하자 블레셋에 불을 지릅니다. 그러니까 블레셋사람들은 그의 아내와 장인을 불태워죽입니다. 그러니까 또 그 복수로 블레셋사람을 죽입니다. 그리고 바위틈에 숨습니다. 그러니까 또 블레셋사람들이 삼손을 결박하기 위해서 유다사람을 치려고합니다. 그래서 삼손은 유다사람들에게 결박을 당하여 블레셋사람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결박을 풀게 하시고, 삼손은 나귀 턱뼈로 블레셋사람 천명을 죽입니다.

아무리 봐도 삼손의 개인적인 복수극 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개인적인복수극을 통해서 대적인 블레셋을 물리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삼손이 개인적인 복수를 하는 것이 잘했다고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서도 블레셋을 물리치는 일에 삼손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삼손은 나중에 이런 개인적인 원한과 감정 때문에 결국 자기 자신은 파멸의 길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삼손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지만, 자신은 버림을 받을 수 있는 자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작년에 노회 통합모임을 하면서 한 교단을 크게 이루고, 또 대형교회를 이룬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자신은 버림받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고도 버림받을까 하여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절대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지만, 자신을 버림받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방법도 중요합니다. 목적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그 일을 삼손처럼 내 개인적인 감정을 풀기 위해서 한다면 쓰임 받지만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우리가 육신의 기분과 감정을 따라서 살지 않고, 오직 성령을 따라서 몸의 행실을 죽이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에 쓰임도 받고, 나 자신이 하나님에게도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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