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 막 12:30>
막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이번 주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에게 “요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고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요4:2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4)”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하셨습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성전에서 너무 형식에 치우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너희의 예배가 형식에 치우신 예배가 아니라,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지 않는 그들이 만든 거짓 제단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너희의 예배가 거짓이 아닌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와 같이 무엇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입니까?
/1)먼저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예배를 드리고 싶은 하나님의 모습을 가지고 예배를 드릴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저 하늘 높은 곳에만 계신 분으로 생각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주 엄격하고 딱딱하고 무서운 분으로 생각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또 반대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너무 편한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는 하나님은 저 하늘위에 계신 무섭고 딱딱하신 분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친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님은 무조건 편한 하나님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우리가 만든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릴 때 철저히 성경의 진리에 바탕을 두고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말씀을 잘 들어야합니다. 만일 말씀을 듣는 시간에 잘 듣지 않고 존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아닙니다.
둘째, 영으로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너무 형식적이고 외식 적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예배가 영으로 드려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영이란 성령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우리의 영혼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네 마음과 영혼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배가 진정으로 우리 영혼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경우 어떤 형식에만 집착을 합니다. 그래서 그 형식이 되어야지 참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배에 우리가 어떤 형식을 갖추느냐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보십니다.
이에 대해서 릭 워렌 목사님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음악 때문에 감동을 받는 것을 성령에 의해서 감동받는 것과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둘은 절대 같지 않다. 실제로 감성적이고 내면에 와 닿는 음악이 때로는 예배를 방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칼빈은 예배시간에 주로 시편 찬송을 불러야 된다고 했는데, 그 곡조들은 지금 우리가 듣기에 너무 지루합니다. 칼빈이 왜 이렇게 주장했겠습니까? 그 이유는 찬양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과 진심을 담은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너무도 자주 내가 번제와 제사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예배가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 아니라, 마음이 없는 예배, 영혼이 없는 예배, 진심이 깃들지 않는 예배는 아무리 완벽한 형식을 갖추어도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영혼을 드리는 진실한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마음을 다해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마음을 다하는 예배란 우리의 예배가 상투적인 것이 되지 말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아무 생각이 없이 내가 평소에 사용하는 단어들을 가지고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또 요즘에 미사여구를 담은 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하는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요즘에 적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내용을 적으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 기도가 상투적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비록 어눌하게 기도를 하더라도 마음을 담은 기도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우리의 진실한 마음을 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가 현실적일 때 기뻐하십니다.
롬12: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산 제물이란 생활로서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영적예배에서 영적인 원어로 보면 “합리적 이성적”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란 우리의 생활로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 현실적인 예배가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일상적인 모든 삶이 예배가 되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습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제물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인은 땅의 소산을 드렸고, 아벨은 양치는 자였기에 양을 드렸습니다. 이에 대해서 창4장 4절과 5절에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물이 문제가 아니라 그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문제였습니다.
고대근동시대에 이방의 제사는 오직 의식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삶과는 관계없이 의식만 잘하면 신이 받아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 고대의 신전은 크고 화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배의 의식만 아니라 예배하는 사람을 보십니다. 예배하는 자의 삶으로서 예배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공중목욕탕에서 물을 잠그는 예배, 걸 거리에 휴지를 버리지 않는 예배, 지하철을 탈 때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예배를 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유치부축복의 날입니다. 한나가 대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나는 위기의 때에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위대한 점은 그가 기도로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약속한대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자녀를 기도로 가지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아니라 한나는 기도로 얻은 자녀를 하나님의 품에 떠나보내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특히 한나가 사무엘을 떠나보낼 때가 젖을 뗄 때였습니다. 젖을 땔 때가 제일 어머니를 찾을 때입니다. 사무엘을 가장 품에 않고 싶을 때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부모가운데 자녀가 잘못되기를 원하는 부모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녀가 잘 되기 위해서 끝까지 자녀를 내 품에 앉으려고만 합니다. 그런데 한나는 가장 품에 앉고 싶을 때 그 자녀를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한나가 일년동안 한 일은 사무엘을 위해서 겉옷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겉옷이 무슨 옷이겠습니까? 제사를 할 때 입는 옷입니다. 한나가 한 일은 사무엘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로 바로 서는 일만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새벽에 이렇게 자녀를 데리고 예배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나처럼 이 아이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를 위해서 이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 자녀가 평생 하나님께 예배자로 서 있는 것을 돕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자녀를 가장 아름답게 키워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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