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4: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나는 또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여 성공하고자 하는 동기가 자기 이웃에 대한 시기 때문인 것을 알았다.”(전4:4 현대인의성경)
요즘 언론에서는 개그맨 정형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가 심리적인 부담 때문에 모든 방송을 하차하고 난 다음에 이제 일 년이 지나서 복귀하는데, 다른 방송에는 다 복귀를 하는데 무한도전이라는 프로에는 복귀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러면 그동안 몸이 좋지 않다고 하는 이야기가 거짓말이 아닌가? 하면서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가 그 만큼 그에는 너무나 큰 부담이었기에 이해가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끌려서 살아갑니다. 개그맨 정형돈은 무한도전이라는 프로에 대한 중압감이 그의 삶을 지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삶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것을 살펴보기에 앞서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삶의 원동력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의 잘못된 삶의 동기가 무엇입니까?
1. 많은 사람들은 죄의식에 끌려 다닙니다.
여기서 죄의식이란 과거의 죄와 실수를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때 “아 내가 과거에 잘못한 것이 있구나 그것은 실수였구나”고 생각이 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이런 과거의 죄와 실수에서 자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세도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도 과거 40살 때 사람을 죽이는 죄를 지었습니다. 또 베드로도 수님을 배반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만일 모세가 베드로가 이런 과거에 실수나 죄의식에 메여서 살았다면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의 실수 때문에 하나님 저는 아무 것도 못 한다 고 했던 모세를 일으키셔서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키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예수님은 사랑의 눈으로 용서하셨습니다. 그래서 혹 내가 과거에 실수하거나 죄를 지은 것이 있다면 회개하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않겠노니 다시는 그런 죄를 (실수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2. 많은 사람들은 원한과 분노의 쓴 뿌리를 씹으며 살아갑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원한과 분노의 쓴 뿌리가 삶의 원동력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원한과 분노의 쓴 뿌리가 있습니까? 그 이유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상처를 받으면 분노합니다. 그리고 분노는 두 가지로 표현을 합니다. 한 가지는 속으로 가만히 참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우울 낙담 자포자기 그리고 마지막 극단은 자살입니다. 또 한 가지는 상처 입은 분노의 감정을 외부적으로 폭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다가 상대방에게 또 상처를 주고, 공격을 하다가 마지막 극단은 그를 죽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받았던 과거의 상처를 완전히 처리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거나 아니면 상대방을 죽이게 됩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은 무엇입니까? 용서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용서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따라서 해보시기 바랍니다. “과거에서 교훈만 얻고, 성처는 용서를 통해서 잊어버립시다”. 원한과 분노, 이런 것이 우리의 삶의 원동력이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3.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구약의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그들이 들어간 가나안땅을 앞에 두고 미래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두려움이 있으니까 그들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조차도 믿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한 사람도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광야로 돌아가서 38년 동안 방황하는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의 이런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 있습니까?
첫째, 아버지와 같으신 하나님을 믿어야합니다.
신명기 1장에서 두려워하고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모세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금도 여러분들을 위해 싸워주시고, 또 여러분들의 앞길에 여러분들보다 먼저 가셔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살 곳을 예비하시고, 준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어머니와 같으신 하나님을 믿어야합니다.
“신1: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아버지와 같으신 하나님의 등에 업히시고, 어머니와 같으신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 우리에게 있는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며 이기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많은 사람들이 물질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물질에 이끌려서 살아갑니다. 심지어 예수를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사랑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하나님조차 나와 함께 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절대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물질이 우상이 되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이 물질이 원동력입니까? 하나님이 원동력입니까?
오직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삶의 원동력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살아간다.
릭 워렌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성공으로 이끄는 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실패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의견에 통제받는 것은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놓치게 만드는 길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우리의 삶의 원동력이 무엇이 되어야겠습니까?
하나님께 받는 사랑과 사람에게 하는 사랑이 우리의 삶의 원동력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거짓교사들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4)”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고전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받는 사랑과 사랑에게 하는 사랑이 여러분들의 삶의 원동력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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