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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전도서

권세와 물질에 대하여(전5:8-20)

by 금빛돌 2015. 8. 13.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 세상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의 허무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8.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

여기서 보면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 약한 빈민을 학대하고 약자에 대한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것이 잘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권세 있는 자들에게 대해서 너희 보다 더 높은 자가 너희들을 감찰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9절을 보시면 권세가 있는 왕이나 모든 사람들도 하나님이 주신 밭의 소산물을 먹는 것에는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세상에서 아무리 권세가 있는 사람이라도 하루에 열끼를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들도 땅의 소산을 하루 세끼 먹고 일반 사람도 그렇게 먹기에 실상은 같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0절부터 17절까지는 돈이 많은 부자의 허무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입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고 합니다.

여기서 은은 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절대 그 돈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그 돈의 풍요를 사랑하는 자도 아무리 많은 소득이라도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연일 나오는 재벌가의 소유권 분쟁을 보면서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도 결국 그 돈 때문에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또 형제와의 관계가 평생 원수의 관계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시대나 오늘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빈익빈 부익부입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그 부가 얼마나 공평하게 분배가 되어 있느냐에 있습니다.

그래서 후진국일수록 부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게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는 그렇게 부자가 더 많이 가지게 되는 것을 자신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재물의 허무함에 대해서 14절부터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4. 그 재물이 재난을 당할 때 없어지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 15.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16. 이것도 큰 불행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랴고 합니다.

이렇게 이 땅에서 재물을 쌓는 것이 허무하고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 있는 삶입니까?

그것이 1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18.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에게 물질이 필요 없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평생 먹고 마시는 것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먹고 사실 것이 있다면 그것이 선하고 아름다우며, 그것이 그의 몫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먹고 마시는 일용할 양식이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면 살아가는 것이 참 지혜로운 삶입니다.

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앞에서는 돈을 사랑하여 더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의 허무함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한 재물과 부요함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재물과 부요함은 그 사람에 열심히 수요하여 얻는 자신의 몫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정당하게 수고하여 얻은 물질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그 풍요를 누리도록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0절 보시면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는 19절에서 정당한 수고에 의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물질의 축복을 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살아 있는 날에 깊이 생각하지 아니한다는 말은 자신의 인생을 후회와 염려가운데 자신을 돌아보지 아니한다는 말입니다. 앞에서 돈을 사랑하며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된 사람의 허무함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돈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삶의 목적이 되어 열심히 살아간 사람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물질이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고, 그것은 절대 헛된 것이거나 후회를 가져다주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축복으로 물질을 많이 가진 사람의 경우에도 절대 그 많은 물질이 기도의 응답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게 주신 물질이 단순히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여기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이 기도의 응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부는 소유의 양이 아니라 만족의 양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고 하는 것이 절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적은 물질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면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권세와 부라고 하는 것으로는 절대 인생의 만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권세와 부가 우리가 하나님처럼 평생을 추구하여 대상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권세를 주신 목적은 섬김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권세를 주신 목적은 약자를 돌봄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목적도 궁극적으로 나눔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질의 종착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물질의 종착역이 되면 그 물질을 우리를 썩게 만들고,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물질도 언젠가는 썩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물질의 간이역이 되어야합니다. 간이역은 물질의 종착역이 아니라 물질이 흐르는 통로의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또 누가 진정한 부자입니까? 진정한 부자는 내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많이 물질의 흐르는 통로가 되었느냐에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평생 2천억을 자신을 통해서 흐르는 통로가 되겠다는 목적을 세우고 지금도 있는 물질을 나누거나 아니면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서 물질이 흐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물질자체가 절대 선이라거나 절대 악은 아닙니다. 물질을 어떻게 얻었느냐와 그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선이 되기고 하고 악이 되기도 합니다. 또 무엇보다 진정한 부자는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한 자입니다. 사도바울은 나는 가난한 자 같으나 하나님에 대하여는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조그마한 권세를 주셨다면 그 권세를 사람을 섬기는 도구로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 평생에 더 많은 물질의 종착역이 아니라 더 많은 물질의 간이역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더 부요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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