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에 보면 사도바울은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소명이라고 하고, 우리의 입장에서는 사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은 소명 또는 사명을 위한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 즉 사명을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겠습니까?
사도바울의 경우에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라고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인 사명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제일 먼저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그것을 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경우에 로마서를 보면 내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공동체의 부르심이 있어야합니다. 아무리 내가 하고 싶어도 하나님만 아니라 교회공동체가 불러 주지 않으면 내가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이지 온전한 사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공동체의 부르심이 없는데 자기하고 하고 싶어서 가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 번째, 내 안에서 그것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거룩한 부담감과 사명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바울은 “행20: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합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단순히 내가 예루살렘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원해서 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이 바울을 원해서 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또 예루살렘에 가면 더 환영을 받고, 또 좋은 대우를 받기 때문에 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예루살렘에 가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합니다. 또 성령하나님이 미리 말씀하시기를 환난이 자기를 기다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도바울은 자신의 생명조차도 내어놓을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적인 생각 같으면 절대 예루살렘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의 마음 가운데는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그것을 하지 않으려 생각해만해도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불타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단순히 인간적으로 내가 좋아해서 하고 싶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또 사람들이 나를 부르고 원해서 하는 차원도 아닙니다.
나의 안락한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더 큰 고난의 자리를 자초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도 그렇습니다. 그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 관한 소식을 듣고 그가 안락하게 있었던 페르시아의 수산궁을 떠났습니다.
지난주에 자신의 아버지가 목회를 하면서 큰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굳이 목회의 길을 가고 있는 젊은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도 아버지와 같이 지금 같은 고난을 격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말하시기를 내가 아는 후배에게 너는 절대 이 길을 걷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목사님이 만류했던 그 젊은 청년도 아버지가 목회를 하시면서 큰 어려움을 격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형제가 함께 신학을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목사님은 절대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을 후회하지 않고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소명입니다. 인간의 차원에서 말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사명을 위해서 많은 고난을 각오하고 있고, 심지어 생명을 잃을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사도바울이 그런 고난을 각오하겠습니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명에는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의 함께 하심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울과 그 목사님과 또 우리를 사명에 목숨을 걸게 한 원동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도 바울처럼 특별한 선교지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 목사님처럼 목회의 길을 가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은 바로 이곳이며, 현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곳을 내가 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모두가 다 환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여러 가지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현재 이곳에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현재 이곳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은혜와 영광과 특권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현재 이곳에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현재 이곳에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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