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드렸던 말씀을 복습하고 본문을 보겠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분열이라고 했습니다. 1장에서 분열의 원인이 파당이라고 했습니다. 또 파당의 원인은 인간적인 자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 되기 위해서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해야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드러내는 방식이 인간적인 지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어야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3장 초반에서는 고린도교회가 분열하게 된 원인이 영적인 미성숙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린도교회를 반면교사로 삼아야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고린도교회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우리가 어떻게 성숙할 수 있다고 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받아먹을 때 딱딱한 말씀도 받을 수 있어야한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자기를 나타내기 위한 열심히 아니라 오직 주님을 나타내기 위한 열심이어야한다고 했습니다. 셋째는, 직분이 올라가고 신앙의 연수가 오래될수록 더 낮아지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한다고 했습니다. 넷째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분열이 아니라 화해와 하나 됨을 추구해야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신앙이 성숙할 때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계속해서 분열을 넘어서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집짓기에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또는 교회를 건물에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집을 지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 집의 터가 튼튼해야합니다. 얼마 전에 안산에서 빌라가 20도 기울어져서 결국 철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보니까 그 빌라의 터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의 집짓기를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터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앙의 집짓기를 할 때 제일 중요한 터가 어떻게 되어야합니까?
고전3장 10절과 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고전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터는 오직 예수그리스도가 되어야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공로가 우리 신앙생활의 기초가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터 위에 신앙의 집을 지어야하는데, 어떤 재료로 집을 짓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2절에 보시면 예수그리스도의 터 위에 우리가 어떤 재료로 신앙의 집을 짓습니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금이나 은이나 보석과 같은 재료 신앙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신앙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까?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집을 짓는 것과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짓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사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집을 짓지 않고,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어도 현재에는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친 환경소재라고 해서 나무로 집을 짓는 것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도 한옥과 같은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또 큰 집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에서 강조하는 것은 현재에 어떤 집이냐가 아닙니다. 종말에 심판 때에 심판의 불이 내릴 때 금이나 은이나 보석과 같은 집은 남습니다. 그러나 나무나 풀이나 짚과 같은 것은 불에 타서 없어집니다.
그래서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심판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마지막 심판 때에 심판의 불이 내려지면 나무 풀 짚은 모두 타고 없어집니다. 그러나 금은보석은 그대로 남습니다.
그래서 또 14절과 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14절에서 심판의 불이 내려졌을 때 우리가 이 땅에서 쌓았던 신앙의 공적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상급을 받지만, 그 공적이 불타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은 상급이 없는 구원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즉 신앙의 공적이 불타도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은 받습니다. 그러나 불 가운데서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구원, 즉 상급이 없는 구원을 받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상급은 구원 얻은 이후에 우리의 행위에 따라서 받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5장10절에서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상급을) 받으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내세의 천국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내세의 상급도 믿으십니까?
내세의 천국이 있다면 분명히 내세에 믿는 자에게 행위대로 주어질 상급도 분명히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심판 때에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터 위에 신앙의 집을 지을 때 불타서 없어질 나무 풀 짚으로 집을 짓지 말고, 금은보석으로 신앙의 집을 지어야합니다. 그래야 심판의 불이 내려져도 없어지지 않고 상급으로 남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간곡히 바라는 것은 이 땅에서 우리의 행위가 마지막 심판 때에 불타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급으로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재료로 신앙의 집을 짓는가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0절에서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열심히 나무 풀 짚으로 큰 신앙의 집을 짓더라도 심판 때에는 모두 불타고 없어집니다. 그래서 나무 풀 짚이 아니라 금은보석으로 신앙의 집을 짓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나무 풀 짚으로 신앙의 집을 짓는 것과 금은보석으로 신앙의 집을 짓는 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이겠습니까?
첫째는, 금은보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사40:8). 그러나 나무 풀 짚은 하나님의 말씀에 아닌 다른 것으로 신앙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이것은 프리셉트 귀납법적 성경연구의 창시자인 케이 아더가 한 말입니다.
사40:8절에 보면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것은 심판 때에 모두 불타서 없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것은 심판 때가 되기도 전에 시들어서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20년 전에 영국의 데니스레인 목사님의 강해설교세미나를 간적이 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70년 전 영국이 그 당시의 한국교회와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영국교회를 거의 시들어서 없어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데니스레인목사님은 한국교회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위에 바르게 세워져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모든 열심과 수고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한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로, 금은보석으로 신앙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성령의 따라서 신앙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 풀 짚으로 신앙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육신을 따라서 신앙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고전3:2).
오늘 본문 앞에 있는 고전3장3절에서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 합니다.
그러니까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잘못된 열심을 가지고 교회에 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을 따라서 행함이 아니라 육신을 따라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나무 풀 짚으로 신앙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아무리 열심을 다해서 교회를 섬겨도 육신을 따라 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고 다투고 싸우면 종말에 모두 불타고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육신을 따라서 행하는 것이 어떤 것이며, 성령을 따라서 행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아야겠습니다.
갈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육신을 따라서 행하는 것은 결국 교회를 분열시키고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어떤 것입니까?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결국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나무 풀 짚과 같은 육신의 열매로 신앙의 집을 짓지 마시고, 성령의 열매로 신앙의 집을 지으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는, 금은보석으로 신앙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사랑으로 신앙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 풀 짚으로 신앙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사랑이 없이 신앙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고전13장8절에서는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 합니다. 이것을 표준 새번역성경에서는 “고전13:8. 사랑은 (종말이 되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말이 되면)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은사가 필요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전12장 31절에서는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사랑)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고린도전서13장에서 말씀하는 은사는 사랑이 없는 잘못된 은사를 말합니다. 사랑이 없이도 방언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이도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이도 성경의 놀라운 지식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이도 내 몸을 불사르는데, 내어주는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없는 모든 은사와 수고는 나무 풀 짚과 같이 종말에 불타서 없어집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행한 모든 가르침과 은사와 수고는 종말에도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남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지막 종말에 여러분이 하신 모든 수고가 주님 앞에서 상급으로 남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랑으로 행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조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서로의 허물의 덮어주는 것입니다. 믿어주는 것입니다. 과격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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