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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강해⑤(고전3:1-9)미숙과 성숙의 차이

by 금빛돌 2014. 5. 30.

오늘 본문도 고린도교회의 분쟁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앞에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분쟁의 원인을 파당으로 보았습니다. 또 파당으로 갈라진 이유는 모두 인간적인 자랑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바울파는 그들이 바울에게서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것을 자랑했습니다. 게바파는 유대인의 율법과 전통을 자랑하고, 또 눈에 보이는 표적을 자랑하고 추구했습니다. 또 아볼로파는 헬라의 지식과 지혜를 자랑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까? 인간적인 모든 자랑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해야합니다. 십자가는 표적을 추구하는 유대인에게는 무능하게 보입니다. 또 지혜를 추구하는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게 보입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유일한 능력이요, 지혜라고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이것이 고전1장에서의 말씀입니다.

2장에서는 그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방식에 있어서 인간적인 지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해야한다고 말합니다.

만일 복음을 단순히 인간적인 방법이나 지혜로 전하면 결국 누가 나타납니까? 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은 인간적인 지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성령의 능력으로 전해야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고린도교회의 파당의 원인을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고전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서로 파당으로 갈라져서 싸우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신령한 자들-즉 영적인 자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또한 그들은 육신에 속한 자, 그리스도안에서 어린자라고 말합니다. 즉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파당으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무엇이 신앙적으로 성숙한 것이고, 무엇이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난 성숙하지 못한 고린도교회를 보면서 성숙에 대한 오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성숙에 대한 오해가 무엇입니까?

1)우리는 은사가 많으면 성숙되었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방언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주위에 어떤 사람이 방언으로 기도하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으로 그 사람 신령하다, 영적이다, 또 참 신앙이 좋다고 합니다. 또 방언을 할 정도니 신앙이 성숙되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방언의 은사를 가진 고린도교회를 보고 신령하지 못한 자, 영적이지 못한 자, 육신에 속한 자, 그리스도안에서 어린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2)또 우리는 성경의 지식이 많으면 성숙되었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고전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이 말씀에 보면 지식은 오히려 사람을 교만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며 사랑을 덕을 세운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적 지식이 많다고 해서 성숙한 것은 아닙니다.

3)또 우리는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성숙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 고린도교회와 비교되는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사도바울이 3달 정도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에 비해서 고린도교회는 더 오래시간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지금 식으로 말하면 예수를 믿은 지 3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신앙에 모범이 되는 성숙한 교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보다 더 오래 믿은 고린도교회에 대해서는 아직 그리스도안에서 어린 자라고 합니다.

//그러면 고린도교인들이 은사가 많고, 성경적인 지식이 많고, 신앙생활을 오래했는데, 성숙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고린도교인들은 젖만을 먹고 밥을 먹기를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여기서 젖은 무엇이며, 밥은 무엇이겠습니까? 젖은 먹기 쉬운 부드러운 말씀입니다. 밥은 먹기 어려운 딱딱한 말씀입니다. 사실 저를 포함에서 우리들은 먹기 쉬운 부드러운 말씀만을 들으려 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딱딱한 말씀을 듣기 싫어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윤리적인 메시지입니다. 물론 지금 이 시대가 너무 어렵고 힘든 시기이기 때문에 위로의 메시지가 더 필요합니다. 사람이 지금 죽어 가는데, 밥을 먹으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일단 살려놓고 난 다음에 밥을 먹으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지금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아직까지 위로의 메시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너무 위로만 하다 보면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래해도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고린도교인들의 잘못된 열심 때문입니다.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여기서 보면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시기라는 말은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열심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있어서 열심이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로마서12장에서도 열심을 다하여 주를 섬기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할 때 열심이 없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바울이 시기라고 하는 말하는 것은 열심이 주님을 위한 열심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인간적인 열심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는 인간적인 열심입니다. 내가 너보다 나음을 드러내려고 하는 인간적인 열심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시기심이라고 합니다. 이런 잘못된 열심, 즉 시기심을 반드시 분쟁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나의 열심이 나를 드러내기 위한 인간적인 열심인지, 아니면 주님을 드러내기 위한 참된 열심인지를 잘 분별해야합니다.

셋째는, 고린도교인들이 직분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섬기는 자들--디아코니아)들이니라

여기서 보면 아볼로는 고린도교회 최고의 교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고, 또 바울은 사도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직분을 직위로 생각하고, 아볼로와 사도바울을 단순하게 아주 높은 자리에 있는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합니다. 아볼로가 무엇이며, 바울이 무엇이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최고의 교사는 직분도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며, 또 사도라는 직분도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모두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역자들이라고 번역한 디아코니아라는 말을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 또는 섬김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역자라고 하니까 굉장히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원문의 의미를 잘 살리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디아코니아종 또는 섬김이라는 말은 식탁에서 시중드는 자를 뜻합니다(고전4:1.고후1:24,4:5). 그런데 고린도교인들은 식탁에서 시중드는 자인, 아볼로와 바울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추종했습니다. 이것이 고린도교회가 성숙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넷째는, 고린도교인들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하나님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동역자)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아볼로는 그 후에 고린도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은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를 개척했고, 또 아볼로는 말씀을 가르쳤기에 그들이 굉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7절에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 한 분 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9절을 보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라는 말입니다.

즉 아무리 사도바울이 위대해도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그들이 믿지 못했습니다. 또 아볼로가 위대했어도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절대 그들은 신앙적으로 자라지 못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고린도교회가 성숙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로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신앙의 성숙입니까? 미성숙과 성숙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성숙하지 못한 고린도교회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합니다.

첫째는, 듣고 싶은 말씀만 아니라 듣기 싫은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받아 들어야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성숙할 수 있습니다.

살전213절에 신앙의 연수가 짧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성숙한 교회가 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2:13)”

내게 듣기 싫은 말씀이라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바로 전할 때 누가 전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멘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나는 없어지고, 오직 주님만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성숙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신앙의 연수가 오랠수록, 또 직분이 올라갈수록 더 낮아지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성숙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사람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합니다.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신앙이 성숙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됨을 추구해야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있고, 또 지식이 많아도 교회를 분열시키고 나누게 하면 그것은 성숙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무엇이 성숙한 신앙입니까? 분열과 다툼이 아니라 화해와 하나 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더욱더 하나 됨을 추구함으로 더욱더 성숙한 신앙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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