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편은 이 땅에서 성도의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 먼저 이 땅에서 성도의 행복은 주님한분밖에 없습니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 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행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지금 다윗이 고백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다윗은 참된 복이며 행복이라고 합니까?
“주님밖에 나의 참된 복과 행복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영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어디에도 내게 좋은 것이라곤 없습니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다윗에게는 얼마나 좋은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까? 다윗은 왕으로서 많은 ㅇ영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많은 물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말합니까?
그런 것들이 내게 진정한 행복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내게는 오직 주님만이 나의 복이십니다. 내가 주님을 떠나서는 그 어떤 것도 복이 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참된 복이십니다” 고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몇 주 동안 이 말씀을 계속 묵상하면서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게 없는 것을 가지고 “나는 불행한 사람이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돈도 없다, 나는 건강도 없다, 나는 성공도 하지 못했다, 내게는 좋은 사람도 없다 그래서 나는 복도 없고 불행하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떻게 말합니까?
그런 것이 내게 있어도 그것 때문에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복과 나의 참된 행복은 오직 주님밖에 없다”고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왜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아야합니다.
이 시편은 다윗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쓴 시편입니다(10절).
10. 이는 주께서 (내가 죽어도) 내 영혼을 스올(지옥)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그래서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하게 된 것은 한 평생 살아온 자신의 신앙고백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젊었을 때 사울 왕에게 쫓김을 당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만일 내가 왕이 되면 행복하겠지”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이 되고 난 다음에도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또 시6편 에 보면 다윗도 육신의 건강이 좋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시6:2).
그때도 다윗은 내가 건강하기만 하면 행복하겠지 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건강을 회복하고 난후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그 후에도 아들 압살롬을 통해서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때도 다윗은 그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행복하겠지 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인생의 말년에 모든 문제가 다해결되고 난 다음에도 그런 것들이 참된 행복이 아니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 세상의 아무 것도 없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주님이 계신다고 하면 그 주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복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세상에 누가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까? 누가 제일 복읊 받은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믿고 있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해야합니다.
저는 이것은 근원적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의 모든 행복의 근원은 주님이십니다.
//2절에 보시면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단순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님으로 섬길 때 그때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의 왕좌에 모실 때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지난주에 열방대학 동기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저는 열방대학의 강의기간을 치고 처음 모이는 모임이었습니다. 그때 어떤 자매님이 저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강의 기간 중에는 참으로 좋았는데, 전도여행기간동안 너무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서로의 관계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어떤 형제는 전도여행기간 중에 떠나기도 했고, 또 어떤 형제는 전도여행기간 중에 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지금도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저는 참으로 그 형제들을 사랑하는데, 왜 이렇게 관계가 힘들고 어렵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요즘 너무 행복입니다. 저에게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너무 행복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된 사람은 누가 나에게 잘해 주었건 못해주었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한분만이 나의 참된 만족이 된 사람은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만족하고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 말했습니다.
다 같이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내게 아무 것이 없어도 주님 한분만으로 나는 만족하고 행복합니다. 주님밖에 나의 복이 없습니다. 주님 밖에 나의 행복이 없습니다. 내게 주님이 계시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다윗은 무엇을 성도의 행복이라고 하고 있습니까?
2)다윗은 이 땅에서 교회가 성도의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오늘 말씀에서 다윗은 무엇을 행복이라고 합니까? 첫 번째는 오직 주님 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제 또 무엇이 다윗의 즐거움이고, 행복이라고 합니까?
이 땅에서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다윗의 즐거움이고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성도란 말을 다른 말로 하면 교회입니다. 교회가 주님 다음으로 우리의 즐거움이고,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성도(교회)가 우리의 즐거움이고, 행복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이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라고 합니다. 존귀한 자이기 때문에 나의 모든 즐거움은 저희에게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 땅에 성도들이 존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교회 성도들이 돈이 많고, 세상에서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까? 또 단순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성격이 좋고 인간성이 좋기 때문에 존귀한 자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만 보면 우리는 존귀한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가 존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성도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신약의 성도들 안에는 영광스럽고 존귀하신 보배와 같으신 예수그리스도가 그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겉모습만 보면 질그릇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영광스럽고 존귀한 이유는 내 안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내 안에 영광스럽고 존귀한 예수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옆에 계신 분들에게 이렇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영광스럽고 존귀한 자입니다. 나의 모든 즐거움과 행복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말로만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이렇게 서로 고백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다윗은 무엇을 성도의 행복이라고 하고 있습니까?
3)다윗은 가정이 성도의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줄로 재어준 구역이 아름답다는 것은 단순히 그 땅이 아름답다는 말이 아닙니다. 삼하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이 왕으로 제일 먼저 통치하게 하신 곳이 헤브론 땅이었습니다(삼하5:3-5).
그런데 이 헤브론이 어떤 땅인 줄 아십니까? 이스라엘의 열 정탐꾼이 가나안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악평을 했던 땅이 헤브론 땅입니다. 또 수14장에서 갈렙이 사람들이 들어가기 싫어하는 그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 했을 때 그 산지가 바로 헤브론 땅입니다.
그런데 왜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게 줄로 재어준 그 헤브론 구역을 아름다운 곳이라고 합니까? /이것은 단순히 환경적인 요인들 때문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환경적 요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다윗에게 줄로 재어준 구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외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거울을 볼 때마다 “내 얼굴이 참으로 아름다워, 그래서 난 행복해”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키가 더 컸으면 내가 아름답고 행복 할 텐데, 내 코가 더 컸으면 내가 더 아름답고 행복 할 텐 데” 우리는 항상 장동건과 김태희를 비교하면서 내가 잘생기지 못했고, 아름답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얼굴도 하나님께서 친히 줄로 제어 준 구역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내 얼굴이 하나님이 줄로 제어 준 구역이기에 실로 아름답도다” 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하겠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만지시면서 “하나님께서 줄로 제어 준 구역이 실로 아름답도다”
/또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배우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또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여러분들의 자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배우자에 대해서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항상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평생 살아와 보니까 내 배우자가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하나님께서 내게 줄어 제어 준 구역이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희 어머니가 부부싸움을 하시고 난 다음에 기도하러 가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고 난 다음에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내 남편이다. 만일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났으면 내가 얼마나 교만했을까 상상이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잘 아시고 내게 제일 맞는 남편을 허락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자녀들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 주신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내게 줄로 재어준 아름다운 구역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가 우리 하경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매일 집에 와서 하경이를 보는 것이 저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제가 볼 때 어느 한군데 부족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저와 우리 아내의 제일 좋은 것만 닮은 것 같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점점 저를 닮아가는 것 같아서 더욱 좋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아는 하나님께서 내게 줄로 재어준 나의 구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좀 더 좋은 집에, 더 많은 재물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더 큰 구역들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원망 불평 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스펄전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짓는 죄 중에서 가장 큰 죄는 원망 불평하는 죄입니다. 그것은 천국으로 달음질하는 발을 상하게 하는 바위와 같습니다. 원망 불평의 악한 생각이 기승을 부리는 한 그 어떤 낙원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거기서 풍기는 악취는 동산의 모든 꽃들에게 독을 줄 뿐입니다. 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주신 집과 재물과 가정이 하나님께서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일 지금 그 이상의 것을 주셨다면 내가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 이하의 것을 주셨다면 내가 낙심하여 하나님을 떠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준 구역으로 믿을 때 거기에 참된 만족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또 다윗은 무엇을 행복이라고 합니까?
4)나를 꾸짖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의 행복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나를 불편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의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7절입니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찌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성도의 참된 행복이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에 보면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찌라고 합니다. 여기서 훈계란 나를 꾸짖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즉 나를 불편하게 하시는 하나님의말씀입니다.
성도는 절대 자기 마음대로 살수 없습니다. 성도는 죄를 짓더라도 계속적으로 지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밤마다 우리 영혼의 심장을 통해서 나를 훈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행복입니다.
//여기서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심장이란 원래 콩팥을 의미하는 말인데, 구약성경에서는 이곳에서 인간 영혼의 내면적 활동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시73:21, 렘17:10).
---우리는 낮에 일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또 내가 흥분하면서 말을 할 때 원망불평하고, 또 시기 질투하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밤마다 내 영혼의 심장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렇게 해서 되겠느냐, 너는 왜 그런 말을 했느냐, 네가 그렇게 한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았느냐, 너는 그래도 사랑하고 용서해야하지 않겠느냐”고 하나님은 밤마다 우리에게 훈계하십니다. 그래서 새벽에 나와서 회개하고 “하나님 그렇게 살지 않겠습니다” 라고 다짐하지만 또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밤마다 하나님께서 내 영혼의 심장으로 나를 요동시키시며 교훈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내가 더 이상 내 마음대로 살도록 나를 버려두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참된 행복입니다.
--인간들의 가장 큰 불행이 무엇입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더 이상 간섭하지 않고 내어버려두는 것입니다. 그 영혼의 심장이 죽어서 더 이상 하나님이 나를 꾸짖으시는 훈계의 말씀이 듣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말씀만 들으려 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죄 가운데서 살다가 멸망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밤마다 내 영혼의 심장을 통해 나를 훈계하시는, 나를 꾸짖으시는, 나를 불편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또 오늘 시편에서 마지막으로 다윗은 무엇을 성도의 행복이라고 합니까?
5)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성도의 행복이라고 합니다.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항상 여호와 하나님을 그 앞에 모시고 살아 것을 성도의 행복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윗은 평안할 때만 하나님을 그 앞에서 모시고 섬기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항상 변함없이 하나님을 그 앞에 모시고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이 시편을 쓰고 있는 다윗의 상황은 아주 어렵고 힘든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1절에서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고 합니다.
4절에 보면 지금 다윗 주위에 같이 하나님을 믿던 사람들이 하나님만 믿지 않고 다른 신들도 믿는 신앙적인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또 10절에 보면 다윗은 지금 죽음의 위협 아래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다윗은 천지가 요동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항상 하나님 그 앞에 모시고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의 시편들을 읽어보면 다윗이 결코 평안한 상황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위기의 순간마다 항상 하나님을 그 앞에 모시고 살았던 것을 봅니다.
시편2편에 보면 모든 열방이 다윗을 대적할 때 쓴 시입니다. 시편 3편 아들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할 때 쓴 시입니다. 시4편은 말로 인한 상처를 받을 때 쓴 시입니다. 시편6편 육체의 고통가운데 있을 때 쓴 시입니다. 시편 7편 악인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 쓴 시입니다, 시편 8편 혼자라고 느껴질 때, 시편9편 억울한 송사를 당할 때, 시10편 하나님이 멀리 계시다고 느껴질 때, 시편 11편 불신앙적인 사람들로부터 유혹을 받을 때, 시12편은 말로 괴롭힘을 당할 때, 시편 13편 오랜 고통이 있을 때, 시편 14장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고통이 있을 때 쓴 시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모든 순간에도 항상 다윗은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그는 사람에게로 피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만 피했습니다.
또 다윗이 항상 하나님은 내 앞에 모셨다는 말은 이런 위기의 때만 아니라 일상적인 모든 삶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았습니다.
--또 다윗이 항상 어려울 때나 일상적인 모든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모시고 살 때 하나님은 그이 우편이 되어주셨습니다.
여기서 우편이란 말은 오른 손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우편, 또는 오른 손은 권세와 능력을 발휘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 모시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우편이 되어주셔서----------그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힘과 권세가 되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우편이 되어 우리의 힘과 권세가 되어주시니---------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요즘 행복하세요 라는 내용입니다.이 질문에 어떤 분은 "'행복'하기는커녕, '불안'합니다"고 말했습니다. 요즘 무엇보다 각종 사고로 불안합니다. 이렇게 '불안'한데 어떻게 행복하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안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삶을 주관해주심을 믿을 때 우리는 그 어떤 곳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우리가 갈 바를 알지 못해서 헤멜 때도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인도해주십니다.
또 우리가 잘못했을 때는 우리의 심장으로 요동치게 해주셔서 바른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우리가 어떤 삶의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우편이 되어주십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이 불안하지 않게, 흔들리지 않게 해주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항상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고 그 앞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이 내 우편이 되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즉 하나님이 내 힘이 되어주시고 능력이 되어주시고 권세가 되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가 이 땅의 삶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음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9 이러므로(하나님이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10 이는 (내 몸이 죽어도)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하나님을 믿는 존귀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부활을 말합니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무엇이 참된 인생의 행복입니까?
단순히 돈이 많고, 건강하고, 내 주위에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행복이 아닙니다.
1)먼저 내게 아무 것도 없어도 주님한분만이 나의 참된 복임을 고백할 줄 아는 것이 인생의 참된 행복입니다.
2)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성도들을 존귀하게 여기며, 이 땅에 있는 교회의 성도와 즐겁게 사는 행복입니다.
3)또 내게 주어진 가정을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곳으로 여기며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입니다.
4)또 날마다 나를 꾸짖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가는 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5)또 어떤 일이 있어도 늘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살아가는 삶이 행복한 삶입니다.
6)그래서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내 삶의 우편이 되어주셔서, 천지가 요동하더라도, 나는 요동하지 않고 주님 안에서 영원한 행복과 기쁨 속에 살아가는 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주님 안에서 이 영원한 행복과 기쁨의 충만을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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