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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부활하신 예수님은 왜 갈릴리로 가셨나?(막16:1-8)

by 금빛돌 2014. 4. 18.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장면입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께 부활하실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예수님 당시 향품은 죽은 자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가다가 걱정이 생겼습니다. 2절과 3절입니다.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려면 무덤에 돌을 굴려야합니다. 그래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문에서 돌을 굴려주리요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이 여인들은 전혀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사모한 여인들이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여인들은 전혀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던 여인들이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이 본 것이 무엇입니까?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예수님의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누군가에 의해서 벌써 굴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돌은 엄청나게 큰 돌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의 무덤에 들어가 보니 흰옷을 입은 청년이 예수님께서 누우셨던 곳 우편에 서 있는 것을 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이 흰옷 입은 청년이 천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청년, 즉 천사가 그 여인들에게 말을 합니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지금 천사가 무슨 말을 합니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힌 죽은 예수님을 찾는구나 예수님은 죽었다 다시 살아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지금 이 무덤에 계시지 않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여인처럼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만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우리의 신앙은 헛된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그가 살아나셨다는 말은 직역하면 하나님은 그가 살아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은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예수님만이 유일한 메시아이고 구원자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사건이 부활입니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나는 메시야다 구원자다 내가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거짓 메시야들은 그렇게 주장을 하고 죽었지만 부활하지 않았습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부활시켜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거짓메시야들을 부활시켜주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자로 메시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가운데서 오직 유일하게 예수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서 부활시켜주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은 예수그리스도만이 참 메시야이고, 참되시고, 유일한 구원자임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신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켜주셨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 구원자임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주셨습니다.

//모든 종교에서는 교주들은 무덤이 있습니다. 그 교주의 무덤은 숭배의 대상입니다. 지금도 모든 종교들은 그 교주의 무덤에 존경과 경의를 표시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덤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정말 부활하셨음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저는 정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이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수많은 회의와 절망의 순간, 그래서 죽고 싶었던 순간에 예수님께서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미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살아계셨기에 그 절망의 순간가운데서 살아계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기뻐하는 소망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부활의 증거를 가진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3장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나옵니다. 베드로가 기도해서 그를 일어나게 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를 주목합니다. 마치 베드로에 의해서 그 사람이 일어난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어떻게 말합니까? 사람들아 왜 나를 주목하느냐, 나의 경건과 기도의 능력으로 이 사람이 일어날 줄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이 사람이 앉은뱅이에서 일어난 것은 나 때문이 아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 그래서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이 앉은뱅이가 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교회에서 계속해서 중보기도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우리가 환우들과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병이 낫게 됨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능력이 누구에서 난 것입니까? 또 그 영광이 누구에게 돌아가야 합니까?

저는 지난 번 중보기도학교에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중보기도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중보기도사역에 우리가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만일 중보기도를 해서 그 사람의 병을 낫게 했다면 그 모든 능력은 절대 사람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또 중보기도를 한 사람에게 영광이 돌아가서는 되지 않습니다.

/만일 기도해주고 병이 나았다고 돈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무당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교회에서 하는 중보기도는 절대 무당기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단순히 예수님의 중보기도 사역에 동참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이 있었다면 그것이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영광을 기도한 사람이 아니라 오직 부활하시고 살아계신 예수님께 돌려야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에게만 감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또 병이 낫고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만이 아닙니다. 부활하시고,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은 병을 낫게 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처럼 네가 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병이 낫지 않는 가운데서도 부활하셔서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를 위로하시는 예수님을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님은 빈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 제일 먼저 어디를 가셨습니까?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마가복음 14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도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살아난 후에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겠다고 말씀한 것처럼 부활하시자 제일 먼저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전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갈릴리에서 너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왜 제일 먼저 다른 곳이 아니라 갈릴리로 가셨습니까? 그리고 왜 하필 갈릴리 거기서 너희가 부활한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셔야지만 제일 좋겠습니까?

갈릴리가 아니라 예수님을 죽인 예루살렘입니다. 만일 우리 같으면 제일 먼저 예수님을 죽이는데 일등공신이었던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나를 시기심으로 죽였지만 내가 지금 메시야로서 살아났다. 나는 너희가 찾던 바로 그 메시야다고 말을 할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빌라도에게 찾아갔을 것입니다. 빌라도야 너는 내가 죄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군중들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나를 죽였지, 나를 보아라, 네가 죽였지만 나는 부활하여 지금 살아났다고 말할 것입니다.

또 우리 같으면 예루살렘의 군중들에게 찾아갔을 것입니다. 너희들은 처음에는 나를 환영했지, 그런데 곧 너희들은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지, 그런데 내가 살아났다. 그러면서 제1회 예루살렘 부활절 대규모 군중집회를 할 것입니다.

//사실 구약성경을 보면 계속해서 메시야가 와서 예루살렘-즉 시온성을 회복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예루살렘성으로 가서 거기서 그를 죽인 모든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보여주면 더 낫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왜 제일 먼저 갈릴리로 가셨습니까?

1)제일 먼저 갈릴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입니다. 반대로 예루살렘은 부자들, 그리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거하는 곳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부자들과 권세 있는 자들을 무시한 것은 아닙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부자였지만 예수님을 잘 믿는 제자였습니다. 또 무조건 가난하다고 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이 가난하다는 것을 무엇을 말합니까? 그만큼 물질적으로 세상에 의지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가난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가난한 마음을 가지기가 더 쉽습니다. 제가 최근에 장애인 도우미를 하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장애인들을 도와주면서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서 너무 가난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도 예루살렘에는 일 년에 한번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로 활동하셨던 곳이 갈릴리입니다. 예수님은 주로 갈릴리에서 하나님나라가 왔음을 선포하시고, 그 증거로 귀신을 물리치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가난한 동네인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위로를 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어디를 가십니까? 가난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들을 찾아가십니다. 육신의 질병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들을 부활의 주님은 찾아가십니다. 마음이 상한 자에게 찾아가십니다. 애통하는 자에게 찾아가십니다. 위로가 필요한 자에게 부활의 주님은 제일 먼저 찾아가십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마음이 상하여 있습니까? 세상에 더 이상 의지할 것이 없어서 마음이 가난하여 있습니까? 고난으로 인해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분이 없으신 분이 있습니까?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당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부활의 주님께서 제일 먼저 그런 분들에게 지금도 찾아가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평안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그 영혼이 내 안에서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상한 심령, 가난한 심령, 애통하는 심령가운데 찾아오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성도니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셨습니까?

2)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먼저 가신 이유는 갈릴리는 제자들이 실패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내가 너희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14:27). 마가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날 것을 미리 다 아셨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베드로조차도 예수님을 부인 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도 나중에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게 될 것도 미리 다 아셨습니다.

그러니까 갈릴리가 어떤 곳입니까? 갈릴리는 제자들이 실패한 곳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다시 갈릴리에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으러 갔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는 제자들이 철저하게 실패한 곳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가신 이유는 실패한 제자들을 다시 일으켜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갈릴리로 돌아간 제자들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나랑하느냐고 하시면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실패한 갈릴리에서 다시 일어나게 하시기 위해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어디를 찾아가고 계십니까? 우리가 실패하여 낙심해 있는 곳으로 찾아가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누구에게 찾아오십니까? 세상에서 무참히도 깨어지고 실패한 자들에게 부활의 주님은 찾아가십니다. 한때는 신앙생활이 열심이었는데, 이제는 세상가운데 빠져서 영적으로 실패한 자에게 부활의 주님은 찾아가십니다.

//또 아무리 전도해도 열매가 없어서 낙심하여 다시 일상의 자리로 돌아간 우리들을 부활의 주님은 지금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 지금 어디 있느냐 너 지금 무엇 하느냐, 너 지금 실패의 자리에 있지 않느냐, 나를 보아라, 나는 죽지 않았다, 나는 지금 살아있다, 너와 함께 하고 있다. 다시 용기를 내어라, 다시 힘을 내어라, 다시 영혼을 구원한 어부가 되어라, 말씀으로 네 신앙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실패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부활의 예수님을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날마다 만나보시고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을 힘입음으로 1000번 넘어져도 단 한 번도 넘어진 적이 없는 사람처럼 1001번째 일어설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신 이유는 갈릴리는 사명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에 가셔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가난한 어린양, 실패한 어린양을 먹이시는 사명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지 아니하시고 영원토록 이 세상에 사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불쌍한 영혼들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영원토록 찾아가시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까?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실 일을 우리가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대신에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불쌍하고 소외되고 실패한 영혼들을 살리는 일들을 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신 그 일들을 하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오늘도 성령 하나님은 어디에서 역사하십니까? 가난한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곳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실패한 영혼들을 일으키는 곳에서 성령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네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그러했듯이 가난하고 불쌍한 영혼들을 돌아보는 일들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부활의 주님께서 가시는 곳으로 함께 가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마지막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신 이유는 갈릴리는 일상적인 삶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일 년에 한 번씩 가신 곳입니다. 그런데 갈릴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셨던 곳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먹고 자고 살아가는 일상적인 삶 속에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항상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부활절 행사 때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합니다. 예수님은 특별한 행사 때만, 또는 주일예배 때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일상적인 삶속에서 부활의 주님으로 매일 만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늘 우리와 함께 동행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옛날 찬송151장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새찬송162).

1. 다시 사신 구세주 나 항상 섬기네 온세상 조롱해도 주 정녕사셨네 그 은혜로운 손길 부드러운 음성 내 평생 주님 함께 늘 계시네 후렴예수 예수 늘 살아계셔서 주 동행하여 주시며 늘 말씀하시네 예수 예수 내 구세주 예수 내 맘에 살아계시네 늘 살아계시네

2. 온 세상 살펴보니 주 사랑 알겠네 내 맘이 아플 때도 주 사랑 알겠네 이 세상 풍파 이길 힘 주시는 주님 마침내 영광중에 주 오시리 후렴예수 예수 늘 살아계셔서 주 동행하여 주시며 늘 말씀하시네 예수 예수 내 구세주 예수 내 맘에 살아계시네 늘 살아계시네

3. 주믿는 성도들아 다 기쁜 노래로 주 예수 우리 왕께 다 찬양드리세 이세상 소망이요 참된 친구되시는 주예수 영원토록 찬양하세 후렴예수 예수 늘 살아계셔서 주 동행하여 주시며 늘 말씀하시네 예수 예수 내 구세주 예수 내 맘에 살아계시네 늘 살아계시네

/이 찬송의 배경이 있습니다. 어느 날 엑클리 목사님이 유대인 청년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청년은 "왜 내가 죽은 유대인을 경배해야 합니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그 질문을 받는 순간 엑클리 목사는 "그분은 살아계십니다!" 라고 확고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분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바로 지금 여기에 살아계십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심을 나는 명백하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예수 부활에 대한 수많은 증거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도 나는 그분이 죽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엑클리 목사는 집에 돌아와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성경구절들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았습니다. 복음서의 기록들을 다시 읽으면서 그의 마음은 새로운 감격이 용솟음쳐 "그 분은 부활하셨다!" 는 찬송을 작시.작곡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세상 사람들은 당신들은 왜 죽은 예수님을 경배합니까? 라고 질문을 합니다. 또 우리의 삶 가운데서 마치 예수님께서 죽은 분인 것처럼 낙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담대하게 외쳐야합니다. 예수님은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이 역사와 세계와 만물을 주관하실 뿐 아니라 내 맘 속에 지금도 살아계시고, 내 모든 삶을 지금도 주관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낙담과 절망과 죽음의 세상가운데서 늘 승리하시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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