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요즘 잠을 잘 주무십니까?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서 잠을 잘 주무시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사람이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건강상의 요인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경우는 현실에 대한 염려와 걱정, 불안한 마음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합니다.
이렇게 잠을 잘 자지 못하면 그 다음 날의 일들을 정상적으로 잘 감당하지 못합니다. 또 잠을 잘 자지 못하면 조그만 일에도 불안하고 더 큰 두려움을 느낍니다. 또 잠을 잘 자지 못하면 나중에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합니다.
이와 같이 잠을 편안하게 잘 자는 것이 복입니다. 그래서 시편 127편에서는 “2.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잠을 잘 자려고 해도 억지로 잠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목사님 너무나 속이 편한 말씀만 하십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편안하다면 잠을 잘 자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도무지 잠을 잘 자지 못할 상황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너무 어려워서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오늘 이 시편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잠은 억지로 잘 자지면 마음에 평안이 없고, 또 계속되어진 어려운 일들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삶의 의욕이 없으신 분들이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오늘 이 시편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시편 5절에 보면 다윗은 “내가 (평안히 잘) 누워 자고 깨었으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렇게 평안히 잘 누워 자는 것이 다윗이 처한 상황이 편안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편은 다윗은 생애가운데서 마음으로나, 육신적으로나 또 영적으로 제일 잠을 자기 가장 힘든 시기에 쓰여 진 시편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의 표제를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그 이들 압살롬에게 피할 때에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시편의 배경은 사무엘하 15장-18장까지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에게 피하여 가는 길에서 쓴 시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아들에게 다윗은 배신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대 낮에 다윗의 후궁들을 범하는 일도 했습니다.
또 삼하15장 6절에 보면 압살롬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다윗에게서 훔쳐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따랐던 많은 이스라엘백성들도 다윗을 버리고 압살롭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신하 중에서 믿었던 아히도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은 그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처럼 믿었던 다윗의 지략가였습니다(삼하16:23). 그런데 그 아히도벨도 다윗을 반역하는 편에 서서 압살롬을 도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이 말은 절대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지금 다윗주위에는 그를 대적하여 죽이려 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심히 많았습니다.
//‘또 삼하15장 30절에 보면 “30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여기서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서 도망 할 때 감람산 길로 맨발로 울면서 머리를 가리고 황급히 도망가고 있습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을 시므이라는 사람이 돌을 던지며 이렇게 말합니다.
“삼하16장 ”7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8.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다윗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다윗의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죄에 대한 벌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서 더 이상 다윗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제 다윗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도망가는 다윗에게 이 말이 제일 큰 마음의 상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제일 조심해야할 것은 말입니다. 그 말들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들 가운데서 제일 무서운 말은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는 사람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제 더 이상 당신과 함께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당신을 구원해주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이런 말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으로 잠을 잘 자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이런 상처 되는 말을 들었을 때입니다.
//이와 같이 지금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가면서 육신적으로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큰 상처가 있었습니다. 또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서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상황에 있을 때 이런 상황만을 묵상한다면 우리는 절대 편안히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원래 3절에는 (그러나)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나 를 넣어서 읽어보겠습니다.
3.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 “그러나”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은 절대 현실 묵상이 아닙니다. 또 사람에 대한 묵상도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현실과 사람들의 말만을 묵상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절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불의한 현실에 대한 저항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또 사람들의 말이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그러나”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환경이 나를 어렵게 하고, 또 사람들이 나에게 낙심과 상처를 주지만-- 그러나---하나님만은 나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하나님만은 나의 영광이 되어주십니다. 하나님만은 나의 숙인 머리를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라고 불의한 현실을 믿음으로 저항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나의 방패가 되어주신다”는 말은 “다윗이 굳이 나서서 자신을 변명하거나 대적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삼하16장 9절에 보면 시므이가 돌을 던지며 다윗을 저주할 때 옆에 있던 신하인 아비새가 “이 죽은 개 같은 자가 어떻게 왕을 저주합니까? 제가 그의 머리를 베어 오게 허락하소서”라고 합니다. 그때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저주하게 가만히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니라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삼하 12b,13).
--다윗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 저주의 말들에 대해서 방패가 되어주시는 것만 아니라---하나님께서 그 저주를 선으로 갚아주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는 말들에 대해서 친히 방패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주를 변하여 선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 여호와께서 나의 방패가 되어 주신다는 말은 실제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생명의 위협에서 지켜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말을 듣고 다윗을 치러 올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후새라는 사람을 보내주셔서 아히도벨의 책략을 막아주시고 다윗을 지켜주셨습니다(삼하17:14).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그래서 그 무수한 불신앙의 말들과 생명의 위협에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영광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만이 나의 기쁨이요, 명예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지금 도망가는 다윗에는 그 어떤 기쁨도 없습니다. 평안도 없습니다. 그에게는 왕으로서 그 어떤 명예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그 순간 하나님만이 다윗의 기쁨이 되십니다. 다윗의 명예가 되시고 다윗의 영광이 되신다고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찬송가 95장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 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 뿐일세, 나의 진정 사모하는 하는 예수님 음성 조차도 반갑고 나의 생명과 나의 참 소망은 오직 주 예수 뿐일세-아멘”
--이와 같이 나에게 아무 것이 없어도 하나님만이 나의 기쁨이 되시고, 나의 영광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은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고 고백합니다.
실제로 다윗은 압살롬에게 피하여 감람산을 오를 때 머리를 숙이며 도망갔습니다.
머리를 숙인다는 말은 수치와 좌절을 당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수치 때문에 머리를 숙인 그의 머리를 드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다윗의 모든 수치를 대신 져 주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게 다윗의 머리를 들게 하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죄와 허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머리도 감히 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다 나의 잘못 때문이야-나의 죄 때문이야--나는 왜 이럴까”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머리를 들지 못하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합니까?
시68편 19“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의 짐과 수치의 짐, 좌절의 짐을 대신 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머리를 숙이고 도망할 때 그 어느 때보다 생의 깊은 좌절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나는 머리를 들고 살아갈 수 없어, 내 인생은 끝이다”고 다윗은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떤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비록 내가 지금 내 머리를 들 수 없는 수치와 좌절가운데 있지만-----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십니다-----나는 실패하고 좌절하고 넘어졌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일으켜서 영광스럽게 하실 자이십니다---라고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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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에 장영희 교수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평생 목발을 의지해서 살아온 1급 소아마비 장애인입니다. 나중에는 유방암과 척추암을 앓으셨습니다. 그러시다가 몇 년 전에 별세하신 분이십니다. 그녀는 <내 생애 단 한번>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넘어질 때마다 번번이 죽을 힘을 다해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우리를 넘어뜨리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넘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를 일으켜주실 것을 믿어야합니다.
//지금 나는 머리를 숙이고 있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하나님이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라는 것을 믿는 것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다윗은 3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이렇게 믿고 고백한 다음에 4절에서 그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
--여러분들 앞에 오렌지쥬스와 사과쥬스와 포도쥬스가 있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이것은 오렌지다, 사과다 포도다 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또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그 오렌지와 사과와 포도를 맛볼 수 있습니까? 바로 그 옆에 빨대가 있습니다. 이 빨대를 사용해서 쥬스에 꼽에서 빨아먹어야 우리는 오렌지와 사과와 포도쥬스의 맛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은 나의 방패십니다. 나의 영광과 기쁨이십니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라고 믿고 고백한다고 해서 우리가 평안한 잠을 잘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의 빨대를 하나님에게 꽂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누가 대신 기도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목소리로 이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지켜주는 방패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또 잠잘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나의 기쁨이요 평안이며 영광이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또 기도할 때 나를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 설교집에서 어떤 목사님의 간증을 읽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예배당을 짓고 난 다음 교회가 큰 시험에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밤에 자리에 누워도 잠이 잘 오지 안 았고, 법 맛도 달아나 몸은 야위어만 갔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은 야 이러다가는 내가 완전히 가겠구나 라는 생각이 번쩍 들어서 다시 옷을 반듯하게 고쳐 입었습니다. 그리고 넥타이를 메고“내가 죽어도 목사로서 죽어야지”하고 예배당 기도실로 갔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잘 나오지 않아 밤중에도 주여 라고 부르짖고, 또 새벽에도 주여 하고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다른 날처럼 불면증으로 고생을 하다가 밤중에 기도실에 가서 한 30분을 부르짖는 중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잠에 골아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 잠이 어찌나 달던지 그간 쌓인 피곤이 확 날아가 버리고 새힘이 솟구쳐서 그때부터 새벽까지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기도하고 찬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새 힘을 얻은 목사님은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1년 반을 저녁에 옷 한번 벗은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밤만 되면 기도실로 가서 “주여 하고 부르면 하나님께서 오냐 잘 왔다 푹 자거라 내가 새 힘을 주노라”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시간쯤 자고 푹 자고 일어난 뒤 계속 기도하시다가 아침이 되면 목회를 하러 가셨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밖에 자지 않았는데도 몸은 점점 더 좋아졌다고 합니다. 또 목사님은 피곤하고 어려우면 주여 하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안식과 평안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그 문제들을 하나 해결해주셨다고 합니다.
----다윗도 이렇게 도망하는 상황가운데서 하나님을 믿고 기도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기도한 결과 다윗은 이제 평안히 누워 자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전능하신 팔로 굳게 붙들어주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평안한 잠을 주십니다. 하나님 품에 안겨서 자는 잠은 이 세상에 그 어떤 어머니의 품속보다 더 평안하고 따뜻합니다. 그 안에 새 힘이 있습니다. 살아갈 용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제 이렇게 고백합니다. 다 같이 6절을 읽겠습니다.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처음에 다윗은 하나님이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습니까? 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한 결과 그는 모든 대적으로 인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의 마음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큰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를 이 상황에서 구원해주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안식과 확신을 얻고 나니까 마지막으로 다윗은 어떤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여기서 보면 다윗은 마지막으로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려달라고 축복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 백성은 그를 대적하였던 이스라엘백성들을 말합니다.
다윗은 대적에게 쫓기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한 결과 평안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새 힘을 얻고 나니 이제 다윗은 그를 대적하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그들을 축복 해 줄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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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서로 사랑하라고 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이 오히려 우리를 더 피곤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서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면 원수까지라도 사랑하고 축복하고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에게 다윗에게 주셨던 이 은혜 이 평안 이 안식 이 여유 이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 나의 소망이 되신 하나님 나의 기쁨이 되신 하나님 나의 방패와 산성이 되신 하나님 나의 머리를 드시는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기도의 빨대를 꽂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생수의 근원하신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생수의 강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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