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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호세아

호세아강해⑫이스라엘의 패망원인-교만(호13:1-9)

by 금빛돌 2013. 3. 16.

오늘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망하게 된 원인가 나옵니다. 그것은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6절입니다.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교만하니까 하나님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9절에 보면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이 교만하여) 너를 도와 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고 배불러 교만하니까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도리어 대적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은 교만하여 패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1618 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선봉이요라는 말도 앞잡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교만을 앞잡이로 따라가다 보면 항상 그 뒤에는 패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패망 이전에는 항상 인간의 교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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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46의 말씀을 보면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더 큰 은혜를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겸손한자에게 날마다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는 반드시 물리치십니다. 여러분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 아무리 많은 부귀영화를 가지고 있고, 높은 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여 하나께서 물리치시면 그가 한 평생 쌓아 놓았던 모든 것이 다 한 순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나옵니다. 그는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내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세웠고, 내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고 말을 하는 순간 그 말이 그입에 있을 때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한 동안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들짐승처럼 살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기한이 되어 다시 느부갓네살 왕이 되고 난 다음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치 낮추심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으로 첫째는 겸손이고 둘째도 겸손이고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심령이 겸손하고 가난한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떠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떠난 인간은 인간 냄새만 풍기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고, 아름다룬 위치에 있어도 추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교만은 은혜의 사망 선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와 복을 내려주신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은 내가 교만한 자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사람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그것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정말 겸손한 사람은 항상 내가 교만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가 교만한 사람이 아닌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결론적으로 나는 겸손한 사람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백성들이 교만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처방책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먼저 이스라엘의 교만하게 된 원인입니다.

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도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1절에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지파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도 에브라임 지파였고, 지금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 왕이었던 여로보암 2세도 에브라임지파였습니다. 그래서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이 떨었도다고 합니다. 이 말을 우리말로 하면 에브라임은 말빨이 세었다, 또 권세와 힘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한마디 하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낮은 자리에 있으면 교만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는 그 자리에 올라가면 인간은 교만해 집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 교만하게 된 원인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 교회에서 제일 교만하기 쉬운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저 자신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한마디 하면 무슨 일이든 다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나를 패망과 멸망으로 이끄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더 우리 교회는 절대 목사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사일 때보다 권사나 장로가 되면 더 교만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이 헌금을 하고 더 많이 봉사를 하는 위치에 있을수록 더 교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잔치 집에 가면 상석에 앉지 말고 말석에 앉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중직일수록 하나님 앞에서 더 낮아지고 겸손하게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성도님들 되기를 바랍니다.

 

1절중반절에 보면 그가 이스라엘 중에 자기를 높이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사람이 교만하다고 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것은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항상 자신만 보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높이게 됩니다. 이것이 교만한 사람의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런 시가 있습니다.

교만하여 다른이는 보이지 아니하고 나만이 보이고 나만이 최고일 때..그러나 그 아름다운 백향목으로 지은 것도 다 벗겨지게 됩니다. 교만..결국은 황무함뿐입니다. 교만하면 황무하여 먼지만 날리게 됩니다. 건조하고 생명이 자라지 못합니다. 삶이 메마르게 됩니다. 교만하지 않게 하소서~~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게 하소서~주님~~은혜를 충만히 부어주시옵소서 적으로 회복되어..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같이 사는 은혜를 찾게 하소서~~

아침마다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기뻐하며 살게 하소서~예수님 오늘 기다립니다.

메마른 제 마음에 오시어서 생명수로 적셔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소서~~

생수의 강이 넘치게 하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생활의 가장 큰 원수와 적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것은 교만하여 자신을 높이는 것입니다.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높아지면 예수님이 작아집니다. 그러나 내가 낮아지면 예수님이 높아집니다.

내가 작아져서 나를 통해서 온전히 주님만이 높이지는 아름답고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2절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교만하게 된 원인이 나옵니다.

이제도 그들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되 자기의 정교함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 은장색이 만든 것이거늘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와 입을 맞출 것이라 하도다

여기서 보면 이스라엘이 교만하게 된 원인은 그들은 하나님을 금송아지 우상으로 만들어서 섬겼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계속 나왔는데 왜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금송아지 우상으로 만들어 섬겼습니까? 금송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내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해주는 존재가 금송아지 우상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금송아지로 만들어서 섬겼다는 것은 그들은 하나님도 오직 자신의 이기적인 탐욕을 체워 주는 도구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금송아지로 만든 하나님을 섬기면 섬길수록 더 이기적이 되고, 자기만 알게 되고, 자기를 높이게 됩니다.

결국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금송하지 우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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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내 탐욕을 체워주는 도구로 만들어서 섬기지 않는지 돌아보아야합니다. 그럴 때 내가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도 오직 나의 탐욕만을 체우기 위한 존재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점점 더 교만하게 만들고, 뻔뻔스럽게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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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우상으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엄위로우시고 영광스러우신 그 하나님 앞에 날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서야합니다.

하나님을 내 탐욕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존재로 여기면서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선택하려고 할 때도 항상 내 탐욕에 제동을 거는 그 하나님을 생각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그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욕심대로 살아가는 삶이 아리나 겸손하게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나를 더 복되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 삶이라는 것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절에 보면 이렇게 교만한 자는 아침 구름과 같고,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마당에서 광풍에 날리우는 쭉정이 같으며, 꿀뚝에서 연기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교만한 사람은 지금 그 사람에게 무언가 있는 것 같아도 아침 안개와 같이,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이, 굴뚝의 연기같이 다 사라져 없어져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절대 이런 교만한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

 

4,5,6절에서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결정적으로 마음이 교만하게 된 원인이 나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의 마음이 교만하게 된 가정 결정적인 원인은 그들이 배부르기 때문입니다.

4절에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 그들을 구원 할 자가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애굽에서 절대 교만할 수 없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5절에 보면 그 광야를 마른땅이라고 힙니다. 이 말은 광야는 어느 한순간도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없이 살 수 없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단순히 영적인 차원에서만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백성들은 그들이 먹고 살아가는 모든 삶에서 하나님이 없이는 살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광야에서 나와서 가나안땅에서의 삶이었습니다.

가나안땅은 하나님을 찾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또 가나안땅은 그들이 땀 흘려 일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땅의 풍성한 것으로 체우 시는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가나안땅에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심으로 가나안땅에서 먹고 배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배부르게 되니까--그들 마음이 교만하게 되어 이제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도우심도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 마음이 더 교만하여 그들을 도와주시려는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 것입니다-그래서 이스라엘이 패망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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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에 13,14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배부르게 될 때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을까 염려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배부르게 될 때 마음이 교만하게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교만하지 않도록 미리 처방전을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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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교만을 막기 위해서 미리 준비하신 처방전이 무엇입니까?

1)8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더라도 항상 광야를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항상 광야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광야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가나안땅과 같이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땅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합니까? 그것은 항상 우리가 광야의 이스라엘을 기억하면서 우리 자신이 매일 매일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살아가야합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해주지 아니하시면 나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위로부터 내려지는 말씀의 은혜가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은혜의 생수를 내려주지 아니하시면 나는 목말라 죽을 수밖에 없고 배고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항상 이 광야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교만을 막을 수 있고, 하나님을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광야의 마음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이 진짜 광야가 되게 해 주십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이 광야가 되게 하시기 전에 늘 광야의 마음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2:14,15에 보면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광야)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광야에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광야가 되기 전에 우리가 늘 광야의 마음을 가지고,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교만을 막기 위해서 이스라엘백성들이 높은 곳에, 부자들에게 마음을 두지 말라고 하시고 늘 마음을 낮은데 두어 가나안 땅에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마음을 두고 살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교만에 대한 두 번째 처방전입니다(15:7, 8).

하나님께서 우리 주위에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허락하신 이유는 우리가 그들보다 더 낫고 많이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면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위에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주신 이유는 우리의 존재의 본질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그들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우리 주위에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금요일 우리가 구제모임을 할 때도 적선하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봤을 때 그들과 우리는 같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그들을 도와주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우리 주위에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 마음이 교만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3)또 사시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가나안땅에서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외부의 대적과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나안땅에서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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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약시대가 되어 새 이스라엘이 나옵니다. 신약교회가 왜 구약교회와 다릅니까? 물론 신약교회는 성령을 주심으로 힘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만 아닙니다. 우리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타락하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에 와서는 하나님께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절대 부요함을 주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1세기까지는 초대교회는 가난했습니다. 또 그들에게 극심한 고난을 주셨습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이 겸손함으로 영적 부요함 가운데 살 수 있었던 비결은 가난과 고난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순간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가 3세기 이후에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된 후 이제 그들은 권세를 가지게 되고, 부를 가지고 배부르게 교만해지고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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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나라도 그렇고, 우리 개인의 삶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 통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 삶속에서 가난이 있습니까? 고난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오히려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삶의 가난과 고난을 통해서 나를 더 낮추시며, 겸손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낮아지더라도 낙심하거나 비굴하지 마시고, 더 겸손히 주님만 바라보고시고 의지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또 어느 순간에 우리를 높여주시고 회복시켜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교만을 막기 위해서 가장 확실하게 내려주신 처방전이 바로 기도입니다. 사람이 기도하지 않으면 당장 교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결코 교만할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제일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가장 건강하고 겸손한 사람들은 새벽기도를 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나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우리의 무능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무능을 통해서 역사해 주십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으면 교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실패하고 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절대 교만 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40일 특별새벽기도회가 있습니다. 새벽기도만 아닙니다. 철야기도를 하실 분들도 얼마든지 교회를 빌려 드릴 테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중보기도, 금요기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기도를 하려고 합니다.

기도만이 우리의 교만을 깰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나는 할 수 없지만 능치 못할 것이 없으신 하나님은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장 교만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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