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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풍랑을 이기는 삶(막4:35-41)

by 금빛돌 2013. 3. 1.

 

복음서에 보면 풍랑 이는 바다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격은 일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격은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제자들이 바다위에서 격은 일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과 신앙생활에서도 얼마든지 격을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풍랑 이는 바다위에 있는 제자들의 모습은 오늘날 교회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풍랑 이는 바다위에 있는 제자들은 모습은 험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풍랑 이는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와 교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고 있는 우리도 얼마든지 인생의 풍랑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35-37).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5절에 그 날에 라는 말은 앞에서 예수님께서 많은 비유로 사람들을 가르치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녁 늦게 까지 배에서 많은 무리들을 가르치시고 난 후 제자들에게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저 편이란 막5장에 보면 거라사인의 지방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많은 무리들을 배에서 가르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저녁 늦게 갈릴리 바다를 지나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가고자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 보다 200미터 아래에 있습니다. 또 갈릴리 바다 주위에는 큰 산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갈릴리 바다는 마치 큰 빌딩사이에 있는 곳과 같습니다.

묵동3거리에 가면 타워펠리스가 있습니다. 거기에 큰 빌딩아래에 서 있으면 그 밑으로 강하고 급한 바람이 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갈릴리 바다는 지형상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때가 많습니다. 특히 낮보다는 밤이 되면 기온차이 때문에 이런 광풍이 더 많이 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날도 이런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자신들이 어부 이기에 어떻게 해서든 그 광풍을 이겨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이겨보려고 해도 물결이 배에 부딪쳐 물이 배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거의 죽게 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명령으로 갈릴리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이 탄 배에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고자 해도, 우리에게 고난의 광풍이 불어올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 우리 가운데 혹시 나는 예수님을 열심히 잘 믿는데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있는가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

/성도님들 가운데 가운데서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마음이 평안한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다닙니다. 그런데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런 일들을 격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때 내가 예수님을 믿는데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하면서 낙심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큰 풍랑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데 격는 인생의 풍랑과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 당하는 인생의 풍랑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 당하는 풍랑은 아무 대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풍랑은 우리로 하여금 더 큰 고생과 파멸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사는데 당하는 풍랑에 대해서는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인생의 풍랑을 이기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풍랑이라도 예수님 때문에 얼마든지 이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인생의 풍랑을 어떻게 이기고 살아갈 수 있습니까?

1)우리가 인생의 풍랑을 이기기 위해서 그 어떤 인생의 풍랑 속에서도 예수님의 평안을 가져야합니다(38).

3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이렇게 큰 광풍이 일어나 물이 배에 가득차서 제자들이 죽게 되었는데 배의 고물에서 베게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배의 고물이란 배의 뒷부분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큰 광풍이 일어나 배에 물이 가득 차 제자들이 죽게 된 상황에서도 배 뒷부분에서 베게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이 왜 주무시고 계십니까?//예수님께서 주무셨다는 것은 큰 풍랑이 일어나 죽게 될 상황이 되었어도 예수님의 마음은 평안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마음이 평안하신 이유는 예수님에게 두 가지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자연을 주관하시는 성부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 때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큰 풍랑이 일어나서 예수님께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시고 가만히 주무시고 계셔서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풍랑 속에서도 평안히 주무실 수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부하나님과 같이 성자 예수님은 이 세상의 자연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자신이 이 모든 자연을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예수님은 아무 걱정하시거나 염려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풍랑 이는 바다위에서도 평안하게 주무실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풍랑 이는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이 가지셨던 이 평안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14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은 풍랑 이는 바다를 향해하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평안은 예수님이 가지셨던 평안입니다. 그리고 이 평안은 이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안은 잔잔히 호수 가에 배를 뛰어 놓고 한가하게 있는 유유자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거짓 평안입니다. 왜 그것이 거짓 평안입니까? 잔잔한 호수에게 조금이라도 물결이 치면 그 평안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에 풍랑이 있습니다. 물이 배에 차셔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것이 예수님 안에 있는 평안입니다.

//이런 평안을 사도바울이 가졌습니다.

고후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예수님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여기서 사도바울이 왜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어떻게 이런 평안이 누릴 수 있습니까? 수그리스도를 날마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 모셔야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 안에 있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한상동목사님도 일제의 고문을 받고 돌아오셔서 밤새도록 이 평안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IMF때 가장들이 직장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흔들릴 때 그 가장들을 붙들어 주었던 것이 예수님을 믿는 부인들이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직장을 잃어버려서 흔들릴 때 부인도 같이 흔들렸다면 그 가정은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믿는 부인들이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안을 가졌을 때 그 평안의 힘으로 가정은 지켜질 수 있었습니다.

/찬송가 413장에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우리에게 그 어떤 인생의 풍랑이 있어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 평안을 절대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이 평안이 인생의 풍랑을 이길 수 있는 첫 번째 비결입니다.

-2)또 우리가 어떻게 우리 인생의 풍랑을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기도함으로 인생의 풍랑을 이길 수 있습니다(38).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여기서 보면 제자들이 언제 예수님을 흔들어 깨웁니까? 그들이 거의 죽게 될 상황에 처해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죽기 직전까지는 예수님을 깨우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제자들은 어부출신들이고, 예수님은 목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바다에 관한 영역에서만은 제자들이 더 많은 경험이 있는 전문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으로 이 위기에서 벗어나려 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언제 제자들은 풍랑을 이길 수 있었습니까? 자신들의 모든 경험과 지식의 한계를 깨닫고 예수님을 깨울 때 풍랑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서 지금도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웁시다라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계실 때만 주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께서 주무시지도 않고 졸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깨어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지만, 절대 기계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인격적이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고난과 고통을 알고 계시지만, 우리가 우리의 문제들을 가지고 예수님께 기도함으로 나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나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다 주님께 내려놓고, 주님께서 내 인생의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머리에 지식으로만 넣어두지 마시고,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조직 전문가는 많이 있지만 애통하는 자는 드물고, 운동가와 기부자는 많지만 기도의 사람은 귀합니다. 노래하는 자는 많지만 진실로 교회와 민족을 위하여 애곡하는 자는 보기 힘들며, 목회자는 무수하나 영적으로 씨름하는 자는 찾기 어렵습니다. 교회 안에서 떠드는 자는 많으나 땀 흘리는 자는 적으며, 방식은 많으나 열정은 적고, 참견하는 자는 많으나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글 쓰는 자 많으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는 별로 없습니다. 사역을 위한 회의는 많으나 사역을 위한 기도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이 기도의 처소에서 실패하면 어디에서나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가 인생의 풍랑을 이길 수 있는 비결입니다.

3)또 우리가 어떻게 인생의 풍랑을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아는 믿음으로 인생의 모든 풍랑을 이기고 잠재울 수 있습니다.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십니다. 또 바다를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바람을 향하여 꾸짖을 수 있는 분이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바다를 향하여 잠잠하고 고요하라고 하실수 있는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바람을 꾸짖을 수 있고, 바다를 잠잠하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만이 천지 만물을 지으신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바다에 파도가 거세게 치고, 큰 풍랑이 일어나면 바다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바다가 두려워서 바다의 신에게 제물을 바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아무리 바다가 죽일 듯이 삼키려 해도 그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예수님 앞에서는 바다가 예수님을 두려워하여 잠잠하게 됩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또 오늘 말씀가운데서 바람을 꾸짖으셨다고 하고 있는데, 이 표현은 막139절에 보면 귀신을 꾸짖으셨다고 할 때 같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1: 25. 예수께서 (귀신에게)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예수님은 자연세계만 아니라 영적세계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그 뒤의 사건을 보면 예수님은 열두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쳐주십니다. 또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을 아시고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딸이 죽었다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자연세계와 영적 세계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생명조차도 다 주관하시는 분이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풍랑 이는 바다에서 난파선이 될 것 같은 우리 교회들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교회역사를 보면 이 땅에서 교회가 없어질 많은 위기가 있었습니다. 초대교회가 그러했고, 또 일제시대가 그러했습니다. 또 지금도 서구의 교회들은 거의 없어질 위기에 있습니다. 또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해서도 큰 어려움과 위기가 있을 것이 예상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해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교회에 큰 어려움과 위기가 있어도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실 수 있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으면 이 세상의 거센 풍랑 앞에서 교회는 언제든지 승리하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어도 우리에게 풍랑이 일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과 지혜로 하려고 하다가 죽게 될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인생의 모든 풍랑을 잠잠케 해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고 잠잠하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제자들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두려워하느냐) 너희가 어찌(아직까지)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여기서 어찌라는 말은 아직까지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자들은 풍랑이 일어 날 때도 믿음이 없어서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잠하게 하신 후에도 아직까지 믿음이 없어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보면 바다를 꾸짖으신 예수님께서 이제 무엇을 꾸짖고 계십니까?

이제는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꾸짖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바다를 꾸짖으실 때 잠잠하고 고요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풍랑이는 바다 보다 더 꾸짖어야할 대상이 무엇입니까?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자연의 바람은 예수님의 말씀 앞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잠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연의 바람보다 더 잠재우기 어려운 것은 두려워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자연에 대해서는 기계적으로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기계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것을 보여주셔도 아직까지 우리의 마음의 풍랑은 잠잠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려움으로 인한 우리 마음의 풍랑을 잠잠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오직 믿음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풍랑을 잠잠하게 하신 후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두려워하느냐) 너희가 어찌(아직까지) 믿음이 없느냐고 하십니다.

마태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믿음이 작으냐고 꾸짖으십니다.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러니까 믿음이 작은 것이나 없는 것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커트라인이 50점이라면 49점이나 0점이나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참으로 믿음이 있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참 믿음이 있다면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야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와 같이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합니다.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우리 앞에 어떤 인생의 풍랑이 있어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참 믿음으로 모든 풍랑을 이기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

4)마지막으로 인생의 풍랑을 이기기 위해서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할 대상은 오직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밖에 없음을 고백해야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마음의 풍랑이 잠잠하게 된 제자들이 어떻게 말합니까?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여기서 심히 두려워했다는 것은 앞에서 두려워한 것과는 다릅니다. 앞에서는 믿음이 없음으로 인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두려움은 예수님을 경외하고 존경하는 두려움입니다.

/여기서 심히 두려워하여 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크나큰 두려움으로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크나큰 두려움으로 두려워할 분이 성부 하나님입니다. 성부하나님은 우리가 납작 엎드려 존경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유일하게 두려워해야할 분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도 하나님과 같이 존경하고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인생의 풍랑을 이길 수 있는 비결입니다.

//여러분 앞에 어떤 인생의 풍랑이 있습니까? 또 그 풍랑으로 인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이것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순히 환경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사탄의 세력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할 대상은 오직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시며 우리와 함께 거하여 계시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어떤 인생의 풍랑 앞에서 두려움이 없이 승리하시며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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