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본문에 보면 표제가 분명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시, 사울의 손에서 벗어난 후에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22장에 다윗의 인생의 말년에도 시편 18편과 똑같은 시를 적고 있습니다. 글자만 몇 개 틀리고 전체적인 내용은 같은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시편은 다윗의 인생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인생 가운데 어떻게 그 모든 환란 가운데서 이길 수가 있었습니까? 사망의 줄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어떻게 승리하고 이길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인 바로 1절과 2절입니다. 먼저 1절입니다.
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상황들을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어느 누구도 그의 힘이 되지 않고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누구만 그의 힘이 되었습니까? 하나님만이 그의 힘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시험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나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단순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유일하게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생애를 한마디로 압축할 수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 무엇이 진정한 우리의 힘이 되고 능력이 되었습니까?
돈도 아닙니다. 심지어는 믿을 만한 사람도 아닙니다. 더욱이 나 자신도 아닙니다. 그 무엇도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힘이 되고 능력이 되어 준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고 믿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윗과 같이 전심을 다해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이 그의 힘이 되셨는가를 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먼저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라고 합니다. 반석이 무엇입니까? 반석은 기초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다윗도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었습니다. 시편들 보면 다윗도 여호와여 왜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습니까? 왜 멀리 계십니까? 심지어는 왜 나와 함께하지 않으십니까? 왜 나를 버리십니까? 라고 합니다. 다윗도 흔들렸습니다. 이렇게 다윗도 흔들렸지만 영원히 흔들리지 않았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내 반석이 되어 주시고 내 기초가 되어 주시고 내 기반이 되어 주셨기때문에 흔들리는 상황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윗이 어떻게 말합니까? 여호와는 나의 요새시요 라고 합니다. 사무엘상를 보면 이런 말씀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 부모님을 어디로 피신을 시킵니까? 모압입니다. 왜그렇습니까? 다윗의 외가가 모압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증조할머니 룻이 모압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압으로 부모님을 피신시킵니다. 그런데 모압에 가보니까 요압의 왕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압의 요새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그 왕과 함께 요압의 요새에 그냥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니까 갓 선지자가 와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네가 의지하는 인간 요새를 떠나 너를 죽이려고 하는 유다 땅으로 가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너의 요새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요새가 되어 주셔서 그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다윗을 모든 환난과 죽음의 위협 가운데서 가운데 건져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환난 가운데 건지시는 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시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 바로 중간에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누구의 하나님이 아니라 왜 나의 하나님입니까? 이 다윗의 시편들은 다윗이 책상에서 주석 책을 보고 공부하면서 지은 시가 아닙니다.
이 시편들은 다윗의 삶 가운데서 체험에서 나온 시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인생을 돌아볼 때 하나님을 나의 어떤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가 있겠습니까? 평생을 외롭게 사실 분이라 한다면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나의 위로자 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또 다윗과 같이 평생을 고난과 환란 가운데 살았던 분이라 한다면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고난 가운데서 나의 힘이 되어 주시고 나의 기쁨이 되어 주시고 나의 즐거움이 되어 주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누구의 하나님이 아니라 지식적으로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체험하고 경험한 내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다윗은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라고 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바위산입니다.
이스라엘 가보면 산이 많지 않습니다. 중동에는 대부분 광야고 사막이고 또 모래밭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이 그 안에서 피할 나의 바위산이란 말이 무슨 말입니까? 사람들은 마치 모래 산과 같습니다. 모래 산이 무엇입니까? 무언가 나를 위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마치 내 옆에서 큰 산처럼 있지만 바람이 불면 사라져 지는 것이 바로 인간이란 이란 말입니다. 또 그것이 사람이 되었든 돈이든 명예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치 모래 산과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주위를 떠났습니까? 그러나 하나님만이 어떤 바람이 불고 홍수가 일어나도 없어지지 아니하는 나의 영원한 바위 산이 되어 주신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방패시다 고 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실제 격었던 생생한 표현입니다. 전쟁터에서 화살이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방패를 뚫고 나을 수도 있고 비껴서 다윗의 심장을 꽂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방패가 다 막지 못했던 화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마지막 그 한 발의 화살을 막아주었던 분이 누구란 말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그 한 발의 화살을 막아주었다는 말입니다.
또 그것만이겠습니까? 수많은 비방의 화살이 날아왔습니다, 그래서 시므이 어떻게 말했습니까?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죽인 자여 가거라고 가거라고 했습니다. 이때 다윗은 그를 가만히 두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비방의 화살을 막아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 나의 방패가 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구원의 뿔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뿔은 힘과 능력을 상징합니다.
다윗은 결코 완전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였던 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서 우리를 죽인 자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이 죄에서 구원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수 많은 죄에서 구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으며, 그 아들 예수님밖에 없음을 온전히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의 뿔이고 능력임을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다음에 보시면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라고 합니다. 저는 이 산성이라는 표현을 제일 좋아합니다. 산성이 무엇입니까? 산성은 이렇습니다. 1차 방어선인 요새가 무너집니다. 도망을 계속 갑니다. 그리고 2차 방어선도 무너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올라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꼭 산골 꼭대기입니다. 산꼭대기가 바로 마지막 최후의 보루입니다. TV를 보시면 옛날에 도시를 보면 마지막에 산성이 나오는데 그 산성이 도시에 가장 꼭대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도 사람의 힘으로는 올라갈 수 없는 꼭대기에 산성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를 지켜주었던 1차 요새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또 2차 요새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나의 돈, 자존심, 명예, 건강, 그리고 내가 평생에 꿈꾸었던 모든 것이 다 무너질 수 있습니다(오주님 내가 지금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내 인생에 마지막 최후 보루입니다. 하나님만이 내 인생에 최후의 산성입니다. 그 하나님만이 끝까지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셔서 나를 안전한 곳에 두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삶 가운데서 모든 것이 다 무너져 없어질지라도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고 산성으로 삼는 자는 결코 망하지 않음을 기억하시고, 믿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택함받은 백성은 망하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실패하지 않습니다. 넘어지지 않습니다. 지켜주십니다. 보호하십니다. 일으켜 주십니다. 회복시켜 주십니다. 든든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결국에는 우리를 안전한 곳에 두셔서 우리를 마지막 순간까지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함께하십니다.
이 땅 가운데 어떤 무엇들도 우리의 진정한 힘이 될 수 없고 방패가 될 수 없고 산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 우리의 마지막 산성이 되어져서 끝까지 우리를 시켜 주시고 사랑하시고 보호해 주시고 축복해 주심을 믿을 수 있는 모든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을 힘입어서 주님을 찬송하고 전심을 다해서 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고 고백할 수 있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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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윗이 어떻게 그 모든 인생의 환난을 이길 수 있었습니까? 다윗은 과거의 하나님을현재의 하나님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1절을 보면 “11 그가 흑암을 그의 숨는 곳으로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고 합니다. 이것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에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구름 가운데서 나타나신 장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12절에 “12 그 앞에 광채로 말미암아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고 합니다. 이것은 여호수아서 하나님께서 우박을 내리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15절을 보시면 “15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으로 말미암아 물 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터가 나타났도다”고 합니다. 이것은 출애굽 사건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대적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물 밑으로 건너가게 한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6절을 보시면 “16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홍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손을 펴사 붙잡아 주신 것처럼 내 인생의 많은 물의 위협 가운데서도 나를 건지셨도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다윗이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윗은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사건들을 현재 나의 사건으로 생각하고 이 시편을 적고 있습니다. 다윗이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정말 다윗이 하루 24시간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 무엇을 묵상했다는 말입니까?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구름 가운데 함께 하신 사건을 지금 묵상하고 있습니다. 또 원수들을 다 물리쳐 주시고 홍해를 가르게 하셔서 마른 땅을 건너게 하신 그 사건을 지금 다윗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 정말 너무 많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성경의 하나님은 과거에 하나님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 지금 현재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과거에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성경을 통해서 지금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하루 24시간 무엇을 묵상하고 있습니까? 내 주식이 오르나 오르지 않나. 내 부동산이 오르나 오르지 않나 내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만 묵상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만 묵상하지 않습니까? 상처 묵상 염려 묵상하면서 살악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면서 하루 종일 무엇을 묵상했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그러면서 그 하나님과 나를 동떨어져 있는 분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윗을 말하고 있습니다. 16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했던 것처럼 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서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내 인생의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고 합니다.
또 17절입니다. 17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보다 강한 애굽에서 건지셨던 것처럼 나보다 강한 사울의 손에서 건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18절에 “18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고 합니다. 과거에 애굽에 재앙이 내렸을 때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던 것처럼 사울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재앙의 날이 내게 이르렀지만 여호께서 나의 의지가 되어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어떻게 말합니까?
19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
시편을 보시면 넓은 곳은 안전한 곳입니다. 좁은 곳은 위험한 곳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동안에 좁고 위험한 곳에 있었지만 그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견져 주시고 붙들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넓은 곳 안전한 곳으로 있게 되었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정말 꿈을 꿀 수 있고 희망을 가질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과거에 역사책에 기록된 하나님이 아니라 그 하나님이 오늘 지금도 역사하시고 지금도 나와 함께하고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믿을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들 우리의 삶 가운데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내 삶 가운데서 어떤 것도 보이지 않고 절망이고 깜깜하고 무의 상태 절망의 상태 밑바닥의 상태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오늘 지금 나의 하나님으로 여기시고 믿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삶의 혼돈 가운데 질서를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공허 즉 우리의 삶에 텅텅 빈 공간 가운데서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을 과거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오늘 지금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시고 여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우리가 걱정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절망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염려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 하나님을 오늘 지금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살아가면 과거의 역사했던 그 하나님을 지금 이 순간 가운데서도 내 삶의 현장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음을 기억하시고 믿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다윗이 과거의 하나님을 현재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선이 경험했던 그 하나님을 내가 경험하는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기도입니다.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내가 이 하나님께 평생을 부르짖고 간구하였더니 주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음이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윗은 실제 그 삶 가운데서 여호수아와 같이 하늘에서 우박이 내린 기적을 경험했습니까? 그런 기적이 없었습니다.
모세와 같이 홍해가 갈라지는 그런 기적을 다윗이 경험했습니까? 없습니다. 모세와 같이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을 경험했습니까? 다윗은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이 눈에 보이는 기적은 하나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진 피더슨은 다윗의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 아니라 일상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모세처럼 눈에 보이는 기적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그 손에 아무 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13년 동안 사울에게 쫓김을 당했고, 인생 말년에는 아들 압살롬에게 배신을 당하여 왕궁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늘이 불이 내렸습니까? 땅이 갈라졌습니까? 물리 갈라졌습니까? 그런 기적은 다윗이 하나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일상의 삶 가운데서 무엇을 묵상했습니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홍해 가르신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홍해를 마른 땅을 걷게 하신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랬을 때 일상의 삶 가운데서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성경을 펼칠 때마다 여러분들 마음 가운데 연애 편지를 보는 것처럼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복음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 주시고 낫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 삶 가운데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그 예수님이 지금도 역사하시는 나의 하나님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과거의 하나님이라 하지 마시고 지금 역사하시는 나의 하나님으로 믿으시시기 바랍니다. 성경 기록된 하나님을 내 삶 가운데 체험되어 줄 수도 있도록 기도하고 간구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내 인생의 말년에 어떻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주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심으로 말미암아서 나를 좁은 곳에서 넓고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셨도다.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모든 환난 가운데서 나를 구원해 주셨도다.
이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말년에 찬양하고 노래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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