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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세월을 아끼라 본문(엡5:15–18)

by 금빛돌 2026. 5. 30.

여러분들은 요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요즘 정말 시간이 너무 잘 간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은 나이만큼 흘러간다고 합니다. 30대는 30킬로, 40대는 40키로, 50대는 50킬로, 60대는 60키로, 인데 80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80키로입니다.

저도 요즘들어 너무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데, 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을 정말 잘 보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김훈작가가 허송세월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작가는 결코 인생을 허송세월하지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인생을 돌아보니까 내 인생은 허송세월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아무 의미 없이 허송세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세월을 아끼라하는 이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에서 세월이라는 말은 카이로스, 곧 의미 있는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시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같은 시간이라도 의미가 있는 시간이 있고, 의미가 없는 시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시간은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내가 전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한 시간을 보냈다면, 그 시간은 그냥 흘러 지나가는 시간입니다. 이것을 보통 크로노스의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70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70년을 살았지만 아무 의미 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은 그냥 시간만 보낸 것입니다. 허무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간이라도 의미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 시간을 보냈다면, 그것은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 아닙니다.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카이로스의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70년을 살아도 그냥 살면 의미 없는 시간, 그냥 크로노스의 시간만 보낸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돌아볼 때, 내가 60년을 살았든지 70년을 살았든지, 과연 그 시간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까? 하나님 보실 때 우리의 시간들이 카이로스의 시간, 의미 있는 시간, 보람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야곱을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함으로 7년을 고생했지만, 그것을 며칠 같이 여겼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7년이라는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흘러가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의미 없이 보내지 말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내라는 말씀입니다.

또 여기서 아끼라는 말은 값을 지불해서 건져낸다, 값을 지불해서 구출해 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흘러가는 시간을 그냥 의미 없이 보내지 말고, 값을 지불해서라도 의미 있는 시간으로 건져내라는 말씀입니다.

노래 가운데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가는 세월 그 누가 막을 수가 있으랴.”

이 노래를 부른 사람도 예수를 잘 믿고 있습니다.

저도 요즘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모릅니다. 제가 50대까지는 그것을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60대가 되니까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 한 달, 1년이 정말 금방금방 지나갑니다. 앞으로 시간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게 주신 시간을 의미 없는 시간으로 흘려보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람 있는 시간으로 보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이 허무하지 않은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건져내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첫 번째로, 내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내가 살아왔던 모든 시간, 내가 살아왔던 모든 세월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십니까? 우리는 보통 내 인생 가운데 빛과 같고 아름답고 좋은 시간이 있었을 때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인생 가운데 어두운 시간들도 있지 않았습니까? 고통의 시간, 눈물의 시간, 이해할 수 없는 시간들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시간들도 하나님의 시간이다, 하나님이 주신 시간이다, 이렇게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사야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세월을 볼 때, 어떤 경우에는 내 마음에 드는 시간도 있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내 모든 시간들, 내 모든 세월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면, 그 모든 시간은 하나님 앞에서 선한 것입니까, 악한 것입니까? 내 모든 세월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면 그 모든 시간들이 하나님 보실 때 선하다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기독교 작가 가운데 미우라 아야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빙점의 작가입니다. 그녀는 예수를 잘 믿었던 기독교 작가였습니다. 마지막에 암에 걸렸습니다. 그때 그녀가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내 인생에 영광을 주신 것도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내게 암을 주신 것도 하나님입니다. 내 인생의 암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진정으로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면, 내 모든 세월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렇게 말했던 다윗의 인생이 좋은 일만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험악한 인생도 많이 살았습니다. 사울에게 쫓겼습니다. 죽음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자기 아들에게 배신도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마지막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236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여러분, 내 모든 삶의 시간과 세월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면, 내 모든 삶 가운데 나타난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내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내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한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내 모든 삶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심을 믿는다면, 어려운 삶 가운데서도 무엇을 할 수밖에 없습니까?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제 이야기입니다. 저는 하경이를 보면서 요즘 너무 행복합니다. 너무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아이를 하나님이 주신 아이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내게 주셨다고 인정하니까, 이 아이가 너무나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있으면 이 아이를 두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김을 당할 때 아둘람 동굴로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의 모든 삶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비록 동굴이지만 그는 동굴로 피하였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피했다고 합니다(18:1)

그리고 놀라운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것은 동굴도 하나님이 주신 곳이면 아름다운 곳이라고 합니다. 16:6절을 보겠습니다.

16: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이 말씀은 정말 기가 막힌 고백입니다.

지금 다윗에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어디입니까? 왕궁입니까? 아닙니다. 동굴입니다. 사람이 살기 어려운 동굴입니다. 400명을 먹이고 입히며 거느리고 있어야 하는 냉랭한 동굴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곳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습니다.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습니다.”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다윗은 이렇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이곳에 나를 두셨다. 하나님이 이 동굴로 나를 보내셨다. 주님께서 내게 줄로 재어 주신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러므로 이 동굴도 아름다운 곳이다.” 놀라운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가 언제 우리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정도의 집을 소유하고, 어느 정도의 땅을 소유하고, 어느 정도의 사람을 거느릴 때 행복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집의 크기가 아닙니다. 땅의 크기가 아닙니다. 사람의 숫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에 두셨는가가 중요합니다.

비록 동굴 같은 곳이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그곳에 두셨다면 그곳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부르셨다. 주님께서 나를 이곳에 두셨다. 주님께서 내게 줄로 재어 주신 곳이다.” 이렇게 믿으면 그곳이 아름다운 곳이 됩니다.

여러분, 지금 내 삶의 자리가 동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답답하고, 냄새나고, 불편하고, 힘든 자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그곳에 두셨다면, 그곳도 아름다운 곳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하면 무의미한 인생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인생으로 건져 올려지는 삶이 될 수 있겠습니까?

내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원망 불평하면 허무한 시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38년을 원망불평했습니다.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광야의 시간을 보냈지만 모세는 그 광야를 하나님의 안아주는 품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감사했습니다. 그러니까 미래가 보았습니다. 이 광야에서 우리를 안으신 하나님께서 미래에 저 가나안에서도 우리를 위하여 집을 준비하셨다고 합니다. 밝은 날도 감사하고, 어두운 날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빛도 감사하고, 고난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시간도 감사하고, 아픈 시간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의 동굴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감사함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건져 올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우리가 어떻게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건져 올리며 살 수 있습니까?

내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은 그냥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면, 그 시간은 의미 있는 시간이 됩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면, 그 시간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어려울 때 욥기를 보면서 놀라운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시험을 주신 것은 나를 좌절하게 하고 실망하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 더 기도하게 하시고 말씀에 집중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 뜻을 발견하니까 고난의 시간도 기쁘고 감사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로마서 12장을 통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저주하는 시간으로 보내면 그것은 무의미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롬12:14 ○너희 박해하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그래서 저주하지 말고 서로 더 축복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되면, 그 인생은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제 마음 가운데는 누구를 생각하든지 이렇게 기도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축복합니다.”

그러니까 내 모든 시간이 너무 의미 있고 기쁩니다.

또 최근 들어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이번 특새 주제가 내가 선교사입니다라고 정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선교사라고 하니까 나를 보고 저 먼 선교지를 가라고 하는가? 길거리에 나가서 노방전도를 하라는 말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요나서를 통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습니다.

선교란 단순히 저 멀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란 내가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선교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선교란 나의 완고함과 고집을 죽이고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굴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심판의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은혜받을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나에게 있어서 니느웨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선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의 니느웨는 어디입니까? 바로 내 옆에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도무지 인간적인 본성으로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사람에게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요나과 같이 도망갑니다.

이런 요나와 같은 우리를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온갖 풍랑을 일으켜서라도 사랑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고래 뱃 속과 같은 곳에 들어가게 해서라도 사랑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피하여 도망가는 우리를 끝까지 추격해서 우리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요나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모두 선교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가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는 진정한 선교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우리의 시선이 머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이 한해 우리가 사랑의 선교사로서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정말 눈 깜짝하면 시간이 지나갑니다. 인생이 끝납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의미 있는 시간으로 건져 올릴 수 있는 저와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 모든 시간을 하나님이 주신 의미 있는 시간으로 건져 올리며 살 수 있겠습니까?

내 모든 고통의 시간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내 모든 고통의 시간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며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내 모든 고통의 시간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인간적인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고통의 시간 가운데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고통의 시간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감사할 수 없습니다.

고통의 시간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우리는 이제 성령에 취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술에 취하고, 마약에 취하고, 세상의 쾌락에 취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돈 있는 사람들도, 성공한 사람들도, 재벌들도 제정신으로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술에 취하고 마약에 취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어떻게 됩니까?

내 모든 고통의 시간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내 모든 시간을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그 모든 고통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간은 흘러갑니다. 눈 깜짝하면 인생이 지나갑니다. 그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값을 지불해서라도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 인생이 허무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값지고 보람 있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본문은 말합니다. “때가 악하니라.”

때가 악합니다. 점점 더 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더 세월을 아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시간들을 하나님 앞에서 보람 있는 시간으로, 의미 있는 시간으로 건져 올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고 축복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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