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에 가면 생선을 먹으라고 난리입니다. 특히 등푸른 생선이 좋다고 합니다. 저도 생선이 좋다는 것은 것은 인정합니다. 또 생선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너무 생선을 강조하니까-그 말만 들어도 조금 부담스러울때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생선구워줄까 하니까 저는 아니 그냥 있는대로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혹 기도에 대한 강조가 이와같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런데 사실 기도는 좋은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하신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기도만 강조하니까 혹 기도가 우리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질때가 있습니다-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기도자체보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부어질 은혜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기도란 우리를 향허신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담은 보고와 같습니다-- --기도란 마치 기차 레일과 같습니다. 기차 안에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약속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기차 안에 아무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약속이 담겨 있어도 기도라고 하는 레일이 없으면 그 하나님의 약속들이 우리에게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란 바로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이 이루어지게 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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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경이 신약이며 구약입니까(옛언약 새언약). 성경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담은 책입니다엄청난 하나님의 약속들입니다. 그런데 그 성경에 기록된 우리를 향하신 그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을 우리의 삶 속에서 체험하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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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출애굽기 1장과 2장이 이것을 우리에게 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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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는“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그 자손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장에서는 그 약속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5절입니다. “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이 모두 칠십인이었더라”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대로 7절에 보면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이렇게 되니까 애굽사람들이 다 학대를 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자손을 더 번성하게 만드십니다.
12절입니다.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이렇게 되니까 애굽 사람들이 남자가 태어나면 다 죽이라고 합니다(16절). 그런데 17절에 보면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남자아이들을 살려줍니다. 그래서 20절에 보면 이렇게 아무리 심한 박해가 있어도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백성은 더 번성해집니다(20). 이렇게 되니까 22절에 애굽왕 바로가 이제 명령을 내려서 남자가 나거든 다 하수에 던져 죽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모든 남자가 태어면 다 하수에 던져 죽이라고 하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의 대가 끊어질 위기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백성의 대가 끊어지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3절을 보십시오.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여기서 왜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탄식하여 부르짖습니까? 그 이유는 오늘 본문에는 고역(고된 노역)이라고 하는데, 단순히 이것 때문만이 아닙니다-//그 고된 노동을 하는데, 문제는 모든 대가 끊어질 위기 있었습니다-즉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끊어질 위기에 있었습니다-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탄식하여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탄식하여 부르짖자 24절입니다. 24절에 “24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약속)을 기억하셨다”고 합니다.
무슨 언약(약속)입니까? 생육하여 번성케 되리라는 그 약속입니다. 그래서 그 기도의 응답으로 25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마음에 두심-그 기도를 들어셔서 마음에 두심)하심으로 애굽의 압제가운데서 풀어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왜 기도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세우신 약속이 현실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하나님의 약속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그 약속이 끊어질 위기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결국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 약속을 기억하사 이스라엘을 권념하심으로 출애굽의 역사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기도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사실들을 현실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사실과 현실의 괴리가운데서 가만히 있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사실들이 현실 가운데 보여지지 않고 이루지지 않을 때, "뭐 그럴 수도 있지, 현실은 어쩔 수 없는거야" 하면서 자포자기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의 모습은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현실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것을 두고 원통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기도를 통하여 그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몸부림치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창38장에서 야곱이 왜 밤이 새도록 기도하며, 또 환도뼈 힘줄이 끊어지기 까지 기도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약속했습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복을 주어 그들과 함께 한 것처럼 나도 너와 함께 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특히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해주겠다라고 약속합니다(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얍복강에서 야곱이 당하고 있는 현실이 무엇입니까? 야곱은 지금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해주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그와 함께 주기는 커녕 에서의 손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야곱이 에서의 손에서 죽든지, 아니면 또 그의 모든 재물들이 빼앗기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만일 야곱이 그가 가진 재물이 중요했다면 그것을 붙들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신의 모든 재물을 뒤로 하고 그저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했습니다,
--야곱은 이 기도를 통해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습니까?
야곱은 여기서 벧엘에서 그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어디를 가든지 그와 함께하시겠다라고 하는 그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고 느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야곱은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만을 신경을 섰습니다-그런데 이제 야곱은 생존보다 중요한 하나님의 약속을 그 삶속에서 확인하기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또 이것은 야곱이 환도뼈가 끊겨 평생 절둑거리며 살더라도 하나님께 떼를 쓰면서 확인하고 싶었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밤이 새도록 기도했습니다. 환도뼈가 끊어지기까지 기도했습니다(생명 건 기도)
---그 기도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시퍼런 눈이라는 뜻을 가진 얍복이 브니엘(즉 하나님의 얼굴)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즉 야곱이 밤세워 기도한 결과 그가 있는 그 곳에서 프니엘-하나님의 얼굴-즉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며, 그를 얼굴과 얼굴로 친히 대면해주시는 것을 느끼고 경험했던 것입니다.
--또 이것이 단순히 기도의 자리에서만 체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본 뒤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녹여주셔서 야곱과 화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도는 나와 문제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변화시켜주십니다).-이와 같이 기도란 하나님의 약속을 현실화시켜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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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가운데서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공허하며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진 적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도대체 저 말씀들이 지금 어렵고 힘든 내 삶과 현실에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고 느끼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공허하게 이 자리에 앉아계시는 분들이 없습니까?
--오래에 어떤 학생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믿어왔는데, 도무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신앙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져 있다는 글이었습니다-그때 어떤 분이 이런 글을남겼습니다. 자신도 20대때 그런 신앙적 회의를 가진적이 있다. 그래서 그 문제를 가지고 기도원에 올라가 하나님게 부르짖고 기도했다-그래서 기도하면서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체험했다는 글이었습니다-/
--야곱처럼 기도로 시름하십시오--기도로 도전해보십시오-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시다고 했는데, 나를 도와주신다 햇는데- 왜 내 현실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과 시름하며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먹고 사는 생존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무엇이 우리의 생명입니까?
하나님입니다-하나님과의 영적 관계입니다-우리환경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내 삶이 피곤할수도 있습니다-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 하시고 있다는 확신과 체험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기도를 통해서만 체험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문제를 두고 기도해야합니다. 필요하다면 금식도 필요합니다-내가 조금 꿂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0---새벽도 좋고 금요도 좋고-안돼면 이 자리에서 라도 기도해보십시오--그래서 하나님의 그 약속의 말씀이 내 마음에 느껴질때까지--- 마음에 와 닿을때까지 기도해보시오--기도하다가 몸이 좀 상하도 괜찮습니다.-(크게 외쳐보십시오-부르짖으십시오-힘들 수 잇습니다. 그러나 가치 있는 일입니다-목이 아플수 있습니다--또 부끄러울수도 이습니다(바디메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합니까? 체면이 중요합니까?그렇지 않습니다-어떻게 해서라도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체험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머리와 가슴사이입니다-머리와 가슴은 가깝습니다--그러나 제일 먼 사이입니다--우리가 머리로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할수 있습니다--그러나 내 가슴으로는 그렇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유럽을 여행하면서 왜 유럽의 교회가 텅텅 비며, 왜 젊은이들이 교회를 다 떠났는가를 생각해보았다고 합니다. --유럽교회에는 우리가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어마 어마한 신학이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비교할수 없는 엄청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또 어마어마한 건물들도 있습니다.--그런데 그들에게는 머리 속에 있는 하나님,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알고 있지---하나님께 대한 체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머리로만 알고 지식으로만 알고 체험적으로 알지 못하니까--조그만 어려운 일이 닥쳐도 금방 하나님은 죽었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이것을 참으로 중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는 현실,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느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며 도전이며 몸부림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현실가운데서 체험할수 있고, 그 하나님의 약속을 현실가운데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또 기도란 불의한 현실에 대한 저항입니다----
시편기자의 탄원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를 벌하시고, 의인에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이 현실은 그렇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그때 시편기는 이렇게 외칩니다. 왜 현실은 어렇습니까? 하나님 하나님이 의인과 함께 해주신다고 약속햇는데, 왜 내 주위에 악한 원수와 대적이 많습니까?
하나님이여 당신의 약속대로 나를 구원해주옵소서. 이것이 시편의 원수에 대한 탄원시입니다.
--그 기도의 결과가 어떠합니까? (기도후 하나님께서 악인의 결국을 깨닫게 하셨다-보기는 좋지만 미끄러운 곳에 두셨군요-라고 햇다-기도해보십시오-악인들의 결국이 눈에 보입니다-부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가운데 나타나지 않음에도 낙망치 않고 믿음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뿐만아니라 그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화되지 않음을 두고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신음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 성경에 기록된 그 무수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도와 삶을 통해서 현실화시키는 사람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해야한다. 기도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기도해야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그 약속들이 현실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약속을 믿음으로 기도해야합니다.
단9장에 나오는 다니엘의 경우가 그렇다. 포로귀환의 때가 이루어진 줄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70년 후 해방). 어떻게 보면 가만히 있어도 그 약속은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더 간절하게 포로귀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믿지 않아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약속을 믿었기에 기도햇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심지어 히브리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경우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죽음 후 부활에 과한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육체로 계실 때 심한 탄식과 통곡으로 능히 살리실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그 간구하심으로 응답하심을 받았다고 합니다.(응답으로 부활을 경험했습니다)
--믿지 않아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약속을-믿었기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되어 주시겠다는 약속,우리의 삶의 주관자 도어주시겟다는야속
야베스처럼 수치를 당하지 않고 영광스럽게 해주시겠다는 약속--
야곱처럼 우리와 늘 함께 동행해주심의 약속--
또 요셉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에 대한 약속을 하셨습니다--“요셉은 무성한 가지라 가지가 담장을 넘었도다”--이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십시오.
--치유와 회복에 관한 약속이 있습니다---마음이 상한 분이 계십니까>상처가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또 육신의 질고가 있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치유에 관한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주님이 나를 만져주시고 역사해주시고-- 함께 해주시면 게 치유될수 있습니다--이 약속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또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에 관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눅24장에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이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고 하셨습니다---이 약속은 교회 가운데 부어주실 실 성령입니다-성령의 능력이고, 성령의 충만입니다---성령충만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할수 있습니다-
-그 성령의 능력을 체험케 하는 것은 오직 기도뿐입니다. 초대교회사람들은 이 약속을 믿고 마가요한 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하기에 힘을 셨니다--그래서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령충만받아 놀랍고 아릅답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따라합시다-우리도 기도하면 됩니다-하나님이여우리에게 도행전과 같은 성령충만을 주옵소서-(금요기도회--
- 마지막으로 그 외에도 기도응답의 대한 약속들이 있습니다--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그려면 찾을 것이요 열릴 약속하셨습니다-이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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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하나님의 풍성하신 약속을 누리는 백성이 되어야한다.
우리는 마치 약속의 가나안땅을 바라보는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여러 약속들이 잇습니다-그러나 그것이 지금 우리 손에 있지 않습니다-그러나 약속을 믿고 전전했던 이스라엘백성과 같이 우리가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기도해야합니다-
그래서 기도함으로 우리를 향하신 그 풍성하신 하나님의 약속들을 우리의 삶속에서 체험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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