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에 시중에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당시에 그 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또 그 책과 유사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기독교 서점 판매 순위 1위를 몇 달 동안 했습니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저자의 여자 친구가 1986년 가을에 갑작스럽게 죽었습니다. 그 죽은 자매는 저자와 대학시절 함께 선교활동도 했던 독실한 기독교신자였습니다. 그런데 해외 근무를 하던 남편을 따라 피지 섬에서 살던 그 자매는 백혈구와 적혈구 수의 균형이 갑작스럽게 깨어지는 병에 걸려 급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자는 그녀의 남편을 만나 위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의 원인이 가계를 통한 유전 때문일 수 있다“. 또 그 친구의 가계에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 집안에 내려오는 이런 질병의 저주를 끊었더라면, 내 친구는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로 죽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 .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는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어떻게 생기느냐”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첫째,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유전된다.
둘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도 함께 유전된다.
셋째, 유전적인 죄는 죄의 뿌리를 끊지 않는 한 가계를 타고 계속 내려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성경적 근거를 “아비의 죄에 대한 징계가 삼사대까지 이른다”는 구약성경에 두고 있습니다(출 20:5).
그러면 여러분 먼저 출애굽기에서 아버지의 죄가 삼 사대까지 이른다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아버지의 복이 천대까지 이른다는 것도 문자적으로 보아야합니다. 그래서 많은 성경학자들은 복이 천대까지 이르고 징계가 삼사 대까지 이른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사상에 대해서 우리와 신학노선을 같이 하는 예장 합신측 총회에서 비성경적인 잘못된 사상이라고 판정하고, 이와 관계된 모든 집회에 참석하지 말 것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상이 잘못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계저주사상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러한 저주가 예수를 믿고, 복음아래 있는 사람에게도 계속해서 미치고 있다는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사상입니다.
성경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저주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율법의 모든 저주를 다 담당해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율법의 저주가 이제 복음 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복음의 능력입니다. 만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예수 믿는 사람에게도 율법의 저주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의 복음을 부인하는 불신앙입니다.
제가 아는 결혼을 앞둔 남, 녀 청년이 있습니다. 형제의 집안은 몇대째 예수를 믿는 집안인데, 자매의 집안은 자매만 믿고 그 집안은 예수를 믿지 않는 집안입니다.
그때 몇대 째 예수를 믿는 집안에서 이 결혼을 극렬히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는 집안이니까 괜찮은데, 그 집안은 믿지 않는 집안이기 때문에 그 집안의 저주가 새로운 가정과 후손에게 내려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 결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 형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집안의 저주가 내려온다 하더라도 저는 자매를 결혼하겠습니다. 저는 자매를 사랑합니다. 둘째로, 우리 두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아래 있기 때문에 혹 집안의 저주가 있다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막아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결혼승락을 받고 지금은 아주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잘 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 복음을 믿는다, 하면서 많은 경우 잘못된 사상에 빠져 복음의 자유와 능력과 복음으로 말미암은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가 “기독교 운명주의입니다.
기독교 운명주의란 “우리의 삶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운명적으로 결정하셨다는 사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행한 삶을, 또 어떤 사람은 행복한 삶을 하나님께서는 운명적으로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운명적으로 미리 정하신 삶은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성경적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미리 계획하시고 작정하시고, 그 길로 우리를 분명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기계적으로 결정된 것이기에 결코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비 성경적입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부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예정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문제 있어서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과 동시에 인간의 책임도 동시에 강조합니다. 만일 우리의 삶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만 강조하면 운명론이 됩니다. 인간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습니다.
--그런데 또 인간의 책임만 강조하면 인본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에 따라 달려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은 마치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강조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삶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주권100프로, 인간의 책임100프로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애굽왕 바로가 불순종하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바로가 하나님 앞에서 강팍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바로처럼 마음을 강팍하게 먹지 말아야한다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주관하시고 계획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주관하시고 계획하셔도,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계획도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역대하12장5-7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렸으므로 애굽 왕 시삭의 손에 붙여서 완전히 다 진멸하려하십니다(5).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6절에 사람들이 스스로 겸비하여 회개하여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니까 7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진멸하시려는 계획을 돌이키시고, 완전히 진멸하시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구원해주십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런 말씀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대로 하십니다. 그러나 또 그 하나님은 무조건 하나님의 계획이라 해서 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반응에 따라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또 다르게 행동하시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다의 3대 왕이었던 아사왕의 생애를 보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사왕의 생애는 전반부 35년과 후반부로 나누어집니다.
아사왕은 전반부의 삶은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이렇게 했을 때 아사 왕은 35년 동안 하나님이 지켜주심으로 평안한 삶을 살았습니다(대하15:19).
역대하 14장에 보면 아사왕의 군대는 모두 합해서 오십팔만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스(지금의 이디오피아)의 군대는 군사 백 만명이고, 병거가 삼백이라고 합니다.
그때 아사가 어떻게 합니까?
대하14:11.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구스군대)와 약한 자(아사 왕)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여기서 강한 자는 구스의 군대를 가리킵니다. 약한 자는 아사 왕 자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여 저 강하고 악한 자들 앞에서 나는 심히 약하고 연약합니다(주님 내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밖에 나를 도울 자가 없습니다. 내가 내 군대의 힘이나 나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오니-하나님이여 제발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나는 오직 주님의 편입니다. 그러니 오 주님 저 악한 사람들이 주님을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이것이 저 유명한 아사 왕의 기도입니다. 이렇게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아사 왕을 도와주셔서 구스 사람들이 단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죽게 하십니다.
이것뿐이 아닙니다.
또 역대하15장 2절에 보면 선지가 아사랴가 아사 왕에게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대하15:2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고 합니다.
또 대하15장7절에 대하15: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일에 마음을)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하니라 고 합니다.
이렇게 이사왕은 선지자의 말을 잘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모든 우상을 다 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합니다. 그때 아사 왕이 다스리던 모든 사방에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십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그 이후에 유다나라에 전쟁이 없었더라고 합니다(대하15장19).이것이 전반기 35년 동안의 아사 왕의 삶입니다.
그런데 아사왕 36년부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대하16장1절에 보면 아사왕 36년에 이스라엘 왕이 유다를 치려고 합니다. 그때 아사는 그 전에 했던 것처럼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에게 찾아가 뇌물을 바치고, 그를 의지합니다.
그때 오늘 본문 7절에 선지자 하나니가 아사왕에게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7 ○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이 전쟁에서 패하게 될 것이라) 고 합니다.
이때도 만일 아사 왕이 전에 했던 것처럼 회개하고 스스로 겸비하여 하나님만을 의지했다면 다시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사 승리케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사 왕은 이제 선자자의 말도 듣지 않고 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또 그 말년에 심한 병에 걸렸는데도 의원만 찾고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사 왕은 말년에 비참하게 죽게 됩니다. 이렇게 아사 왕의 말년은 아주 비참한 삶이었습니다.
여러분 보시기 바랍니다. 아사 왕 한 사람의 생애입니다. 그가 35년 동안 모든 일에 전심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그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는 평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35년 동안 잘살았다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을 때 비참한 말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신자의 삶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신자의 삶에는 “운명은 없습니다”
내 인생은 무조건 아무 일 없이 평안하게 살도록 운명이 되어졌다는 것은 없습니다.
또 반대로 내 인생은 어렵고 힘들고 비참하게 살도록 운명이 되어졌다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살도록 기계적으로 운명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본문을 다시 한번 더 보시기 바랍니다.
대하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기계처럼 우리의 삶을 행복한 삶으로, 불행한 삶으로 운명지어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인격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리한 눈으로 온 땅을 살피시면서 우리 마음을 살펴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심장과 폐부와 마음의 실낱같은 생각과 동기들을 철저히 살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만 사모하느냐 의지하느냐를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만 얼마나 사모하고 의지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얼마든지 달라지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아직 가계의 저주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에스겔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겔18: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바벨론 포로 당시에 이런 속담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그의 아들이 이가 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내 아버지가 죄를 지었는데, 아들이 아버지의 죄에 대한 댓가를 받는다는 속담입니다. 이런 속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겔18:3.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아버지가 신 포도 먹음으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겔18:13. (의인의 아들이라도 악을 행하면) 그가 살겠느냐 결코 살지 못하리니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은즉 반드시 죽을지라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악인이 아들을 낳습니다.
그래서 또 겔18:14절에 “○또 가령 그(악인)가(이)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그 아버지가 행한 모든 죄를 보고 두려워하여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17.--(악인의 아들이)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진대 이 사람(악인의 아들)은 그의 (악한) 아버지의 죄악으로 죽지 아니하고 반드시 살겠고”
그래서 여러분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 누구입니까? 므낫세입니다(왕하21:9).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누구입니까? 가장 의로운 왕이었던 히스기야입니다(왕하18:3). 그리고 가장 악한 왕인 므낫세의 손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개혁 군주였던 요시아입니다(왕하22:1–2)
이와 같이 에스겔서 18장1-20절까지는 아버지 세대의 죄값을 아들이 절대 대신 지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겔18장 21절부터 24절은 우리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겔18: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겔18:21. ○그러나 (과거에 죄를 지었던) 악인이 만일 (현재에)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회개하여)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22. (악인이 과거에)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현재에) 행한 공의로 살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겔18: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겔18:24. 만일 (과거에 의를 행했던)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현재에)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과거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이와 같이 여러분 우리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어떤 운명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까기 과거에 살아왔던 내 삶을 돌아보니까 내 삶을 이렇게 불행하게 살도록 운명이 지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인생이 몇 십년동안 개인적으로나 가정으로나 비참하고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습니까?(어제까지, 혹은 지금 이순간까지). 그런데 이것을 나의 절대적 운명이라고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도 내 심장과 마음을 살피고 계십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 순간 그 동안의 삶을 회개하고 스스로 겸비하여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후의 내 삶이 언제든지 역전케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절대 운명은 없습니다. 또 우리의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영원한 현재입니다. 과거에 내가 어떤 일을 잘했다. 잘못했다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잘했다 하더라도 현재 잘못하면 과거에 잘한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잘못했다 하더라도 깨닫고 돌이켜 새롭게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다시 살려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겔18:3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 너희는 (과거에)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현재에)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절대 우리가 죽기를 원하지 아니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가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얻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두 잘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부모님들이라면 자녀들에게 절대 육신의 복만을 물려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잘 산 것에 따른 복만을 물려주신다면 여러분의 자녀는 그 복 때문에 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물려주어야하는 것은 부모의 신앙입니다.
“너 피곤하지 힘들지 그러니까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돼, 내가 너 대신 주일에 열심히 교회를 나갈게, 너 너무 힘들지 그러니 너는 기도할 필요 없어 네가 너 대신에 기도해줄게 그러면 너는 내 덕에 다 잘 거야”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자녀는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자녀야 내게 네게 물려줄 것은 오직 신앙밖에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주일성수하는 신앙, 아무리 어려워도 십일조는 반드시 하는 신앙,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기도하는 신앙,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면 무조건 순종하는 신앙, 나는 그것밖에 너에게 물려줄 것이 없다“고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자녀는 반드시 잘 살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겔18: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살려주시기 위해서 우리 마음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런데 이 마음의 문은 절대 하나님이 열어주지 않습니다. 누가 열게 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열어야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 마음 문을 말씀으로 두드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돌이키는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반드시 살게 될 줄을 믿으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죄의 대한 책임은 유전되지 않습니다. 또한 신앙도 무조건 유전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신앙을 자녀에게 잘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을 오늘 지금 현재입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습니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입니다. 또 미래는 현재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지금 현재를 바꾸면 우리의 미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이라는 일컫는 날에 너희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말라 고 하십니다. 보라 오늘은 은혜받을 때 요 구원의 날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과거는 지나갔습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건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들의 미래를 반드시 복되게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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