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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언약적 관점에서 본 약자보호법(출22:21-14)

by 금빛돌 2026. 2. 11.

언약의 세 가지 성격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언약을 베푸심에 있어서 일방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약을 지키심에 있어서 신실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약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 지켜야 할 명령성에 있다고 했습니다.

구원의 언약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 지켜야 할 명령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십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이 출 201-17절까지입니다. 십계명은 언약 백성들이 지켜야 할 가장 중심적인 명령입니다. 그런데 십계명 뒤에부터 23장까지를 시민법이 나옵니다. 이것은 당시 사회에서 지켜야 명령들입니다.

그런데 이 시민법 가운데서 제일 중요한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22: 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여기서 고아와 과부 또는 나그네는 당시에 약자들에 속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약자보호법이라고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고아나 과부들이 약한 자들에게 속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합니다. 네가 축복의 땅인 가나안땅에 가면 고아와 과부와 같은 약자를 해롭게 하지 말라 만일 네가 그들을 해롭게 하고 억울하게 하여 그들이 울부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고아와 과부의 울부짖음을 들을 것이다. 그래서 고아와 과부와 같은 약한 자의 울부짖음을 들으면 나의 노가 맹렬하여 너희를 칼로 죽일 것이다. 그래서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아와 과부와 같은 약한 자들을 돌보라고 하셨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22: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이방 나그네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같이 따라온 이방 나그네들입니다. 애굽에서 어떤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같이 따라왔겠습니까? 가난한 자들이겠습니까? 부자들이겠습니다. 가난한 자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와 이방 나그네와 같은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고 종이었고, 가난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애굽 사건을 근거로 해서 가난한 자를 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또 신15장도 마찬가지입니다.

15:15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가난한 자를 돌아보라고) 네게 명령하노라

왜 가난한 자를 돌아보라고 하십니까? 그 이유는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여 가난 한 자를 돌아보라고 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 그들은 모두 가난했습니다. 이것을 가난의 공통된 형제의식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가난할 때 같은 형제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출애굽 한 후에 가나안 땅에 가서 50년이 흐른 후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먼저 어떤 사람은 경제적으로 100의 위치에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경제적으로 10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은 경제적으로 1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렇게 출애굽 한 후 50년이 지난 후 경제적인 위치가 다른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결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는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순종하면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정확하게 이렇습니까? 그래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무조건 부자가 되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은 무조건 가난합니까?

그렇지 않을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면 하나님께서는 육신적으로도 부요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항상 이렇지만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씀대로 정직하게 살아가도 여전히 가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그 사람의 경제적인 모습을 가지고 말씀대로 잘 살았다 못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말씀대로 잘 살아서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50년이 지난 후에 여러 가지 요인들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경제적으로 1의 위치에 있을 수가 있고, 어떤 사람은 10의 위치에 있을 수가 있고, 어떤 사람은 100의 위치에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를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의 양을 가지고 우리 인간을 보시겠습니까?

그래서 경제적으로 1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가볍게 보시고, 100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무겁게 보시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의 양을 가지고 우리를 평가합니다. 그래서 물질이 많으면 우리를 아주 무겁게 대합니다. 그러나 물질이 적으면 우리를 가볍게 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 존재의 본질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절대 우리가 가진 물질의 양으로 우리 존재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말하면 애굽에서 가난한 모습을 존재의 본질로 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 존재의 본질은 가난입니다. 애굽에서 가난한 모습이 우리 존재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서 50년이 지나면 물질의 양이 차등이 있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을 이스라엘 백성 존재의 본질로 보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들이 아무리 많은 물질을 가졌어도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모습을 존재의 본질로 보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에는 50년이 되면 그들이 가진 모든 재물을 50년 전으로 돌려버리게 하십니다. 이것이 희년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단 한 번도 이 희년이 지켜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강제로 50년이 지난 후에 그들의 모든 물질을 다 거두어 가시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희년의 정신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물질을 가졌어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 존재의 본질은 가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많은 물질을 가졌어도 우리는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가난한 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구제해야 합니까? 구제를 동정으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동정이란 나는 당신보다 물질이 더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물질이 없으니 나보다 더 낮은 사람이군요 라고 생각하면서 도와주는 것이 동정입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그래서 올해 우리 교회에서는 장학 헌금을 장학구제헌금으로 하려고 하다가 어떤 장로님이 구제 헌금이라는 말이 좋지 않습니다. 장학나눔헌금이라고 하면 좋겠다고 하여 장학나눔헌금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어떤 청년회에서도 형제 나눔의 헌금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돈이 없어서 결혼식을 못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 돈으로 결혼식을 치러준 적이 있습니다. 그 형제는 지금 목사님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주위에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 도와야 합니까? 하나님, 하나님 앞에서 저는 저 가난한 사람과 같습니다 라고 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도와주기 바랍니다.

우리 주위에 장애인을 볼 때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하나님, 하나님 앞에서 저는 저 사람들과 같습니다 라고 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돌아보아야 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불렀던 똑바로 보고 싶어요 주님을 같이 불러보겠습니다.

이 찬양은 원래 장애인을 보고 쓴 찬양입니다. 그런데 이 곡을 만들고 난 다음에 가사를 썼던 사람이 이것은 나의 고백이고 우리의 고백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함께 같이 불러보겠습니다.

똑바로 보고싶어요(I want to see straight)

1.똑바로 보고싶어요 주님 온전한 눈짓으로 똑바로 보고 싶어요 주님

곁눈질 하긴 싫어요 하지만 내 모습은 온전치않아 세상이 보는 눈은

마치 날 죄인처럼 멀리하며 외면을 하네요

주님 이 낮은자를 통하여 어디에 쓰시려고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으셨나요 당신께 드릴 것은 사모하는 이 마음뿐

이 생명도 달라시면 십자가에 놓겠으니 허울뿐인 육신 속에

참빛을 심게하시고 가식뿐인 세상속에 밀알로 썩게하소서

2#

똑바로 걷고 싶어요 주님 온전한 몸짓으로 똑바고 걷고 싶어요 주님

기우뚱 하긴 싫어요 하지만 내 모습은 온전치않아 세상이 보는 눈은

마치 날 죄인처럼 멀리하며 외면을 하네요

주님 이 낮은자를 통하여 어디에 쓰시려고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으셨나요 당신께 드릴 것은 사모하는 이 마음뿐

이 생명도 달라시면 십자가에 놓겠으니 허울뿐인 육신 속에

참빛을 심게하시고 가식뿐인 세상속에 밀알로 썩게하소서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내가 가난한 자임을 고백하면서 우리 주위에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모든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 하나님은 강한 자의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약자의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은 약자의 하나님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만든 신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모두 강자의 신들을 만들어서 우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상을 만들 때도 큰 불상을 만들고, 또 황금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만든 신에게 가기 위해서 자신이 더 크고 강해야져야 합니다. 또 더 많은 돈을 바쳐야 하고, 공로를 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본 하나님은 강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약자의 하나님입니다.

시편68:5-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68:5.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6.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갇힌 자들은 이끌어 내사 형통하게 하시느니라 오직 거역하는 자들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저 하늘 위에 엄위하고 보배롭고 존귀하시고 전능하신 하늘의 보좌에 계신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고아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강한 자들에 의해서 억울함을 당하는 과부의 올바른 재판장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고독하고 외로운 자들을 도와주셔서 가족들과 함께 살게 하는 분이십니다. 또 약한 자들을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이끌어 내셔서 형통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만일 이런 고아의 아버지가 되시고, 과부의 재판장이 되신 하나님을 거역하여 그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자들의 거처를 메마른 땅과 같이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약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강자의 하나님을 만들어서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알 숭배입니다. 가나안땅에 바알이라는 우상이 있었습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땅에서 그 어떤 악한 일을 해서라도 부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땅에 가 보니까 그런 신이 있었습니다. 바알 신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남자신인 바알과 여자 신인인 아세라 신이 성적으로 결합하면 많은 곡식과 가축들이 생산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남자 바알 신을 대신해서 남자제사장을 두었고, 여자신인 아세라신을 대신해서 여자 제사장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바알의 신전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하면서 남자제사장과 여자제사장이 서로 간음을 하게 했습니다. 또 이스라엘백성들이 바알의 제사장들과 간음했습니다. 이것이 바알의 제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땅에 가서 이런 바알 신앙의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을 마치 바알 신과 같이 섬겼습니다. 그래서 어떤 나쁜 일을 해서라도 부자만 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가 가나안땅에 가거든 반드시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15:5).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돈만 많이 벌면 된다고 생각해서 고아와 과부와 같은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무조건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까?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이 약자의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어떤 분이십니까? 바로 약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 구원자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증거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시는 약자의 하나님이신 것이 우리의 구원이지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증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강한 분이시지만, 태어나실 때부터 가장 가난하고 약한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주로 사셨던 동네도 가장 이스라엘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인 갈릴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로 사역하셨던 대상도 가난한 자, 병든 자, 외로운 자, 연약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는 약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또 그 아들이신 예수님이 약자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첫째는, 약자의 하나님 앞에서 마음 놓고 약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약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절대 우리가 약하다고 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실패해서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약자의 하나님이시 때문에 우리가 병들었을 때 우리와 더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실패하였을 때 우리와 더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곤고하고 외롭고 힘들고 눈물 날 때 우리와 더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이 약자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강한 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어느 누가 약한 자이고, 어느 누가 강한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 모두가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약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약자의 하나님 앞에서 강한 채 하지 마시고 마음 놓고 약해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저는 상한 갈대와 같습니다. 하나님 저는 꺼져가는 심지와 같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고 고백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의 연약함, 곤고함, 억울함과 눈물을 숨기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오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는, 약자의 하나님으로 인해서 약해지지 말아야합니다(고전1:27,28).

고린도전서 127, 28절에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약한 자)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강하다고 하는 자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미련한 자들을 사랑하셔서 택하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또 이 세상에서 약한 자들을 구원의 언약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약한 자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이유는 우리가 약한 그대로 살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약한 자들을 택하셔서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자신의 힘을 믿고 의지하는 강하다고 하는 자들을 폐하려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지혜 없는 자들을 택하셔서 세상적인 지혜와 인간적인 지혜를 의지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강함이 강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약하심이 더 강합니까?

이 세상의 강함보다 하나님의 약하심이 더 강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지혜가 더 지혜롭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미련하심이 더 지혜롭습니까?

하나님의 미련하심이 이 세상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습니다.

이것이 고전125절에 있습니다. 고전1:25.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지혜롭다고 하는 세상)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강한다고 하는 세상) 사람보다 강하니라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약한 자들이지만, 이제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들은 절대 약한 자들이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강한 자들보다 하나님 안에서 있는 우리들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치시기 바랍니다.

나는 약하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은 절대 부족하지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 있는 나는 강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셋째는, 약자의 하나님 앞에서 약자를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합니다(1:27).

127절을 보면 “약1:27.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고 합니다.

무엇이 참된 경건입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이여 나는 약한 자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하는 것만이 경건이 아닙니다. 참된 경건은 연약한 자들을 돌아보는 삶입니다.

예전에는 저는 우리 교회 가운데 어떤 특별한 분들만 약한 성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이 목사도 교역자도 약한 자들입니다. 우리 장로님들도 하나님 앞에서 약한 자들입니다. 또 우리 모든 성도님이 하나님 앞에서 약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약함을 절대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처럼 우리의 약함을 하나님께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시는 약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약자의 하나님이신 것을 감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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