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눅2:1-11)

by 금빛돌 2025. 12. 24.

옛날에는 12월만 되어서 괜히 설레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12월동안 성탄절 행사준비를 한다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믿지 않는 사람들도 들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구호가 성탄절을 가족과 함께 조용히 보냅시다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용한 정도가 아니라 과연 성탄절이 있냐고 싶을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완전히 무관심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예수님의 탄생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람들의 관심은 예수님이 아닌 다른 곳에 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오늘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적인 문제만 아니라, 또 우리의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개인적으로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까?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어떤 통계자료를 보니까 우리나라 국민의 81프로가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 가운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개인이나 국가나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탄절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사야서 7장에 나오는 아하스와 유다백성이 처한 상황과 비슷합니다.

그들은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와 베가가 연합하여 유다를 치러올 것이라는 소식을 들어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72절에 보면 "7:2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고 합니다.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백성들이 다 그들이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때 선지가 이사야가 아하스 왕에게 찾아갑니다.

7:4.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스라엘왕 베가)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고 합니다.

/유다나라를 위협하는 아람왕 르신과 북왕국 이스라엘 왕 베가는 지금은 휠휠 불이타는 것과 같지만 나중에 불이 타고 나면 꺽어버리는 부지갱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또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두려워하는 아하스왕에게 말합니다.

7:10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쉽게 풀어쓰면 이런 말입니다.

네가 아무리 깊은 낙심과 절망의 깊은 구렁텅이에 있던, 또 높은 불안의 위험가운데 있든지 하나님이 위에서 너를 도우시는 그 도움을 간절히 구하라--그러면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도와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때 아하스가 어떻게 말합니까?

7: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저는 괜찮습니다. 문제가 없습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의 도우심이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제가 황송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겠습니까? 또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시험하겠습니까?” 라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거절합니다.

-아하스가 저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가 없다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하스는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고, 또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 없다고 해놓고, 왕하16장에 보면 사람을 보내어 당시 강대국이었던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왕하 16:7). 그렇게 하고 그 대가로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많은 은과 금을 예물로 앗수르왕에게 바쳤습니다. 이처럼 아하스는 이미 값진 보화를 보내어 든든한 원군을 사 놓았기 때문에 굳이 하나님을 의뢰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겉으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 없다고 하고 거절하고, 숨어서 앗수르를 의지했던 아하스왕과 유다나라는 하나님대신 그들이 의지했던 앗수르에 의해 나중에 더 큰 어려움을 당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없다고 거절한 아하스왕에게 이제 마지막으로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바로 성탄에 관한 놀라운 말씀을 합니다.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도움심과 표적을 구하지 않는 아하스에게 이제는 하나님께서 친히 위로부터 내리는 표적을 주십니다. 그것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아하스 왕이 하나님의 도움심을 거절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임마누엘로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친히 우리와 함께 해주심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주시겠다고 말씀해주십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려고 해도 아하스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거절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적인 것들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제 친히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하스처럼 불안한 현실 가운데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는 이 시대라 하더라도--우리에게 찾아오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한 치의 앞을 바라 볼 수 없는 불안한 이 시대에 성탄의 주님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만을 굳게 붙들고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구약시대의 아하스왕 만 아니라 예수님이 오신 신약시대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의 오심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당시에는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정치의 중심은 로마의 황제였습니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에 보면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여기서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의 황제입니다.

---이와 같이 왜 로마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왜 천하로 호적을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까?

그 이유는 황제 자신이 이 온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세상은 황제가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는 세상이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당시 세상은 로마와 가이사 아구스도 황제에 의해서 움직였습니다. 또 그 당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로마황제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로마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도 자신의 고향에 황제의 명령에 따라 호적을 하러 베들레헴으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 또 고향에 갔는데 해산할 때가 찼습니다.

그런데 6,7절에 보면 무엇이라고 합니까?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여기서 왜 여관에 있을 곳이 없다고 말합니까?

물론 이 말은 여관이 다 찼다는 말도 됩니다. 그런데 만일 당시의 여관주인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방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여관이 있을 곳이 없다는 말은 여관에 전혀 빈 방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예수님을 모실만한 빈방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은 한 참 돈벌이가 될 때입니다. 그래서 돈도 없어 보이고--또 아이를 가진 이 사람들을 맞이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여관집 주인은 예수그리스도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오늘날에는 먹고 살기에 너무 힘이 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더 이상 예수님을 모실만한 마음의 빈방이 없지 않습니까?

또 미래와 내년에 대한 너무 지나친 염려와 근심 때문에 더 이상 예수님을 모실만한 마음의 빈방이 없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예수님이 처음 태어나신 그때나 오늘날에도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그를 모셔들일 만한 마음의 자리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정치인들은 누가 이 세상의 주도권을 잡느냐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또 보통사람들은 먹고 사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더 이상 이 땅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시대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까?

이런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까?

또 이런 시대 가운데서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로서 -지금도 하나님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나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 황제가 자신이 온 세상의 주임임을 드러내게 위해서 천하로 호적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요셉의 고향이자 다윗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시게 됩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신 것은 예수님이 나시기 720년 전 구약성경 미가서의 예언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베들레헴은 다윗왕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은 예수님이 다윗왕의 후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이사 아구스도 황제가 자신이 세상의 주관자인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내린 명령이 예수님이 이 세상의 왕이시고 주이신 것을 드러내게 하였습니다.

-아구스도 황제는 전혀 하나님에게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에게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뜻대로 온 세상을 다스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운데서도 역사하셨습니다.

//지금 이 세상의 정치인들도 내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합니다. 내 뜻대로 세상이 움직인다고 합니다.

ㅡ그런데 하나님은 이 세상의 도도한 물줄기 가운데 하나님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가십니다. 무엇보다 구원의 역사를 오늘도 이루어가 십니다.

-온 세상 사람들은 마치 이 세상이 인간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여전히 하나님은 이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여전히 예수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왕이시고 주이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실패도 합니다. 쓰러지기도 합니다. 깨어지기도 합니다.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떨 때는 순간적으로나마 주님을 부인하고 요나처럼 도망하기도 합니다. 주님 없는 곳으로 낮을 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벗어날 수 없는 여러분들의 인생 배의 주인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 주여).

우리가 아무리 거부한다 해도 하나님은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여러분의 삶을 이끌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유라굴로와 같은 광풍을 만나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살 소망조차 끊어지는 듯이 보입니다--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나의 삶 속에서 지금도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우리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입니까? 분명한 사실은 이 교회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아무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걱정하기 마시기 바랍니다.

-단지 주님이 이 세상과 교회나 나의 삶을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며 움직여 나가고 계심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누가 지금도 역사하시는 이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까?

또 누가 예수님을 마음 가운데 모셔들이며-성탄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먼저 목자들입니다.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우리는 목자라고 하면 아주 고상한 직업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당시 목자는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가 호적하러 가서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고 있을 때-밤하늘만 바라보며 양 떼만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더 이상 세상에서 기댈 언덕이 없습니다. 가정의 행복도 누리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돈도 없습니다- 권력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로서 가장 마음에 상처가 많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