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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마22:34-40)

by 금빛돌 2025. 4. 12.

오늘 본문 35절에 바리새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이 바리새인 율법사가 예수님께 질문하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앞에서 예수님께서 부활에 대한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해서 아주 명쾌하게 답변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바리새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리새인 율법사의 질문이 무엇입니까?

36절을 한번 다 같이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라고 합니다. 여러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 질문에 감추어져 있는 이 율법사의 율법에 대한 생각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계명 가운데서 어떤 것은 큰 계명이고 어떤 것은 그보다도 못한 계명이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바리새인 율법사의 생각에서는 율법 중에서 큰 계명도 있고 작은 계명도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중에서 어떤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라고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37절부터 40절까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합니다.

율법사가 한 질문이 무엇입니까?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한 것입니다.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계명이 큰 계명입니까? 라고 하니까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지만 읽으면 우리는 예수님깨서 말씀하신 의미를 온전히 꺠닫지 못합니다. 그다음 3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9절을 보시면 둘째도 그와 같으니라고 합니다. 그와 같다는 것은 앞에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둘째 계명도 앞에 있는 첫째 계명과 같다는 것입니다. 같다는 말은 본질상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만 큰 계명이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도 첫째 계명과 같이 큰 계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떤 계명이 더 크냐고 하면서 계명 가운데서 어떤 계명은 더 크고 작다는 구별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똑같이 큰 계명으로 보았습니다. 그 대신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하라는 계명과 이웃 사랑하는 계명이 똑같이 큰 계명이지만 첫째 계명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라입니다. 둘째 계명은 무엇입니까?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그러니까 계명의 우선권에 있어서는 어떤 계명이 첫째 계명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 번째 계명입니다. 이렇게 계명의 우선권은 있는데, 계명 중요도에 있어서는 두 계명은 다 같이 크고 중요한 계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서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지금 바리새인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은 계명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큰 계명이 있고 작은 계명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바리새인에게 고르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만일에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무엇을 할 필요가 없습니까? 부모에게 돈을 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을 찾아뵙지도 않습니다. 부모님에게 돈도 안 드립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에게 말합니다. 아니 당신은 왜 명절때 부모님 찾아뵙지 않습니까? 명절 때나 또 평상시에 부모님에게 용돈도 드리고 생활비도 드리지 않습니까? 라고 한다면은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말합니까?

무슨 소리 하느냐 나는 가장 큰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지켰기 때문에 부모 공경 대한 계명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는 부모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바리새인들은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바리새인들의 문제를 예수님께서는 딱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따로 분리시켜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 어떤 계명의 큰 계명입니까?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기대했던 답변이 무엇이겠습니까?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대답만을 바라고 기다렸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그래 맞다 그것이 큰 계명이다 또 그것이 우선된 계명으로 첫째 계명인 것은 맞다 그 런데 그다음에 무엇을 더하여 말씀하십니까?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똑 같이 크고 중요한 계명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항상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다음에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면서 이것을 분리시켜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두 계명을 똑같이 큰 계명이라고 보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합니까?

한번 따라 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내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네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목숨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진심을 다해서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똑같이 사람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을 계십니다.

뒤에 40절에 보시면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합니다. 이 강령이 말이 원문으로 보면 못이라는 말입니다. 못은 단수입니다. 한 개의 못이 벽에 있습니다. 그 하나의 못에 빨간 옷도 걸어놓고, 파란 옷도 걸어놓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옷들은 다 그 한 못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 성경 전체의 강령 즉 못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 두 계명에 모든 율법이 하나의 못에 매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이 두 계명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무엇입니까? 사랑하라 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계명은 사람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심을 다하여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합니다고 하면서 몇 시간 동안 예배당에 와서 손을 들고 주를 사랑해요 라고 합니다. 그리고 율동도 하고 모든 몸 짓을 다합니다. 이렇게 아주 아름답고 거창하고 전심을 다하는 예배를 드리고 다음에 계단에 내려와서 자기보다 더 못한 사람을 깔보고 무시합니다. 그러면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사람의 진심은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사람이 진짜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진짜 그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태도는 단순하게 예배의 자리에서 나오는 모양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에 그 주위에 있는 이웃 사람들에게 대한 태도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실 무서운 말씀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 가운데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지는가?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는 것은 단순하게 예배의 모습을 가지고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진심을 다하는 예배를 드렸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사람들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태도가 어떠한지를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어떻게 돌아보아야 합니까?

내가 사람을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대할 때가 있습니다. 나쁜 말로 하면 이용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정말 진심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그 사람을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면서 도구로 대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그것은 어떤 모습입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을 앞에서 아주 살살합니다. 도무지 사람들 볼 때 사랑의 눈빛이 없습니다. 너무 차갑습니다. 제가 어릴 때 교회를 다니면서 느낀 것은 교회에서 너무 기도를 오래하거나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기엔 너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는데 그 사람의 눈빛이 너무 차갑습니다. 쌀쌀합니다. 가까이 하기 너무 힘듭니다. 리가 볼 때는 그 사람을 경건하다 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외식된 경건입니다. 바리새적인 경건입니다. 자기가 생각할 때는 열심히 기도하니까 나는 정말로 하나님 사랑한다 보지만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입니다. 100%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진짜 그 사람의 하나님께 대한 태도는 사람들에게 대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회개했습니다, 사실 이 이 말씀은 누구에게 전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 자신에게 전하는 말씀입니. 저도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고 주님만을 사랑한다고 하고 나는 주님밖에 없습니다고 내가 어르신들을 대할 때 어떤 모습으로 대했는가? 만일에 내가 어르신들을 대할 때 내가 정말 그분들을 존중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께 대에서도 예의를 갖추지 못하고 하나님을 존중하지 못했다는 증표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서 저는 정말 많이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보시기 바랍니다. 신구약 모든 성경의 마지막 장이 몇 장인 줄 아십니까? 요한복음 21장입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이 성경에서 가장 늦게 쓰여진 책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마지막 장이 21장입니다. 요한복음 20장까지 보면 이 성경에 나오는 표적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고 합니다. 그려면 요한복음 20장에서 성경이 끝이 나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21장이 있습니까? 그것은 21장이 모든 성경의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왜 세 번씩이나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냐고 했습니까? 예수님은 네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느냐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것이 아니라 정말 네가 나를 잘 하느냐 고 물어보고 계십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말씀은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느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네 눈에 뭐가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네게 맡겨 준 양들이 보일 수밖에 없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양들을 누구와 같이 사랑하고 돌보라 말씀합니까? 하나님과 같이 그들을 사랑하고 돌아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 마지막 결론입니다.

그래서 내 이웃 가운데 가난한 이웃이 있습니까? 힘든 이웃이 있습니까? 우리가 그분들을 바라볼 때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우리 주위에 있는 이웃들 가난한 사람들, 힘든 사람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고 돌아볼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사랑할 때 우리의 삶 가운데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줄 아십니까? 이웃을 하나님 사랑하듯 사랑하게 될 때 바로 그곳이 에덴 동산이고 천국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창조하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남전도회 회원 여러분 먼저 집에 가셔서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들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여러분들의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성도님들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바로 그곳이 천국입니다.

매일 살아갈 때 여러분들 이 자리에서만 하나님 사랑합니다 고 하지 마시고, 사람들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 사랑하듯이 그들을 전심을 다해서 사랑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그는 그 모든 곳이 에덴동산이 되고 천국이 될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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