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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사랑이 있으면 희망이 있습니다(고전13:1-13)

by 금빛돌 2024. 4. 13.

미국에 어떤 목사님은 1년 동안 매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성도님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왜 매주 사랑의 말씀만 전합니까? 우리는 그 말씀을 다 알고 또 들은 말씀입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께서 그러면 성도님은 서로 사랑하는 이 말씀대로 살고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년 동안 같은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목사님은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설교에서도 여전히 서로 사랑하라고 설교했다고 합니다. 그때 성도들이 우리가 정말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목사님이 계속 머물러 계시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 말씀은 여러 번 들었던 말씀입니다. 또 여러분도 잘 아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을 다 암송하는 분도 있습니다. 또 찬송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교회설립기념 주일을 맞아 사랑에 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만일 우리가 사랑이 없이도 천사와 같은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이 없이도 예을 할 수 있겠습니가? 사랑이 없이도 방언기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사랑이 없이도 큰 믿음을 가지고 산을 옮기는 것과 같은 큰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사랑이 없이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또 사랑이 없이도 내게 있는 모든 재산으로 가난한 자에게 구제를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사랑이 없이도 내 몸을 불사르는데 내어 주는 헌신과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예 사랑이 없이도 얼마든지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1-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1-3절에서 사랑이 없으면이라는 말이 실제로 고린도 사람들이 사랑이 없이 이 모든 일들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사랑이 없는 방언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는 방언기도 때문에 예배시간과 기도시간이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들은 방언기도를 하면서도 무슨 기도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방언기도가 자신에게는 유익이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이 들리는 울리는 꽹과리와 같았습니다. 울리는 꽹과리는 당시 신전에서 사용하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신전에는 꽹과리를 치면서 신에게 자신의 욕망을 들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시끄러운 소음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방언기도가 신전에서 울리는 시끄럽게 소리나는 꽹과리와 같다고 합니다.

또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지식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식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81절에 보면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을 덕을 세운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상의 재물을 먹는 문제에 관해서 지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무시했습니다.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우상의 재물은 우상숭배가 아니다, 또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참된 신이 아니다. 또 우상의 재물도 하나님이 주신 음식이다는 지식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우상의 제물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식을 가지지 못하는 자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으면 마치 우상숭배에 동참하는 것과 같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식이 있는 자들이 지식이 없는 자들을 무시하면서 왜 마음대로 우상의 재물을 먹지 못하느냐하고서 그들을 정죄하고 비판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이 없이도 얼마든지 방언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이도 성경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사랑이 없이도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남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이도 내 몸을 불사르는데 내어 주는 헌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이 없이 이 모든 일들을 행하면 세 가지가 무익합니다.

첫째는 내게 무익합니다. 3절 하반 절에 보시면 “3-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이 없이 기도하고, 사랑이 없이 말씀을 가르치고, 사랑이 없이 헌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이 가르치고, 또 사랑 없이 기도하고, 사랑 없이 희생하고, 사랑 없이 봉사를 하면 그 사람은 일을 하면 할수록 더 힘들어집니다. 또 자신은 일을 하면 할수록 영적으로 더 메말라갑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일을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아무 영적인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혹 지금 이 시간에 내가 무언가 열심을 일을 했는데, 그것이 내게 참된 기쁨이 되지 못합니까? 또 일을 하면 할수록 영적으로 더 고갈된다는 느낌을 가지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혹시 그 동안 사랑이 없이 이 일을 하지 않았는가? 자신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또 사랑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무익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내가 몇 십 년을 수고하고 봉사를 했는데, 그 일들이 과연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었습니까? 그래서 나의 봉사와 수고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은혜를 받아서 변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아니면 도리어 나의 수고와 봉사를 통해서 도리어 다른 사람을 더 피곤하게 하지 않습니까? 또 내가 열심히 일을 했는데 그 일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정말 이 일을 사랑으로 했는가? 자신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또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무익합니다. 그래서 심판 때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칭찬과 상급이 없습니다. 8절 말씀에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 합니다. 마지막 종말에는 예언의 은사도, 방언의 은사도, 지식의 은사도 다 없어지고 오직 사랑만이 남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우리가 한 일들 가운데 사랑으로 행한 것만이 하나님 앞에서 남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이 땅에서 내 모든 것을 불사르고 희생하여 정말 열심히 봉사를 했습니다. 내가 한 평생 이 교회에서 충성하고 봉사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심판 때 하나님께서 네가 그동안 이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일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사랑이 없이도 죽도록 충성하고 봉사할 수 있습니다. 또 사랑이 없이도 얼마든지 큰 선교 할 수 있고 구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전혀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또 마지막 심판 때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칭찬과 상급이 없습니다. 두려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서 사랑이 없이 행하시는 성도님들이 한분도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사랑으로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사랑으로 하는 일입니까?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4절에서 7절까지 사랑으로 하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여기서 보시면 사랑에 대해서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중간 부분을 보시면 먼저 사랑은 무엇을 않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앞뒤를 보시면 사랑이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고, 해야 할 것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랑으로 행한다는 것은 먼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으로 행한다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사랑은 제일 먼저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기란 단어의 어원은 열심입니다. 그러니까 시기란 열심에서 나왔습니다. 열심 없는 사람은 시기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열심은 서로 경쟁하기 위한 열심입니다. 그래서 내 은사가 네 은사보다 더 크고 낫다고 합니다.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내 방언이 네 방언보다 더 낫다고 경쟁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나보다 방언을 잘하면 그것을 가지고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누가 조금이라도 잘하면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반드시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란 시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이 잘하면 칭찬합니다. 또 남이 잘되면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또 남이 잘못되었을 때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또 사랑은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한 것을 계산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에게 한 것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더 해주지 못하여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내가 남에게 무언가 한 것에 생각이 나십니까? 그리고 내가 한 것을 조금이라도 자랑하십니까? 그러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내가 아무리 큰 일을 해도 내가 한 것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도리어 내가 더 잘 해지 않은 것만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내가 한 일에 대하여 그 어떤 인적적인 칭찬이나 보상도 바라지 않습니다. 도리어 내가 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났을 때 도리어 부끄러워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와같이 사랑이란 나의 오른손이 하는 일을 나의 왼손도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만이란 나보다 남을 낮게 여기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합니다. 이것을 겸손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겸손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무한히 작은 나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사람 앞에 설 때도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과 나를 비교해서 내가 너보다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 모두는 다 작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하나님 앞에서 작은 자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나보다 낫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더 작은 자입니다. 당신이 나보다 더 낫습니다 고 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례하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돌아가야 할 마땅한 경의와 예의를 갖추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 주방에서 봉사를 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수고했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례하다고 하는 것은 이것 밖에 못하느냐고 하면서 상대방이 한 일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례한 것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한 일에 대해서 마땅한 예의를 갖추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사람에게 무례히 행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히 사람에게 대한 존중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존중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마땅히 돌아가야 할 경의와 예의를 갖추고 있다면 당연히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마땅한 경의와 예의를 갖출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 무례한 사람은 사람에게 무례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대하여 존중하는 사람은 사람에 대하여도 존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자기의 유익이란 자기의 것이라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만일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그 사람이 나의 것이니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누가 누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는 나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것으로 여길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사랑이란 성내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성이란 파록시노라는 말인데, 이 뜻은 나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단순히 화를 내는 정도가 아니라 발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란 상대방이 나의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려 줄 줄 아는 것입니다.

또 사랑이란 악한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악한 것이란 상대방을 해한다는 말입니다. 또 여기서 생각한다는 말은 계산한다, 계획한다, 심사숙고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이란 상대방을 해하기 위해서 계산하고 계획하고 심사숙고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은 상대방을 해할 목적으로 악한 것을 생각하거나 계획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사랑이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를 밤새워 계획하고 고민하고 심사숙고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불의란 공동체의 유익과 선을 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란 공동체의 유익과 선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무엇을 하는 것입니다.

4절에서 사랑이란 오래 참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은 사랑이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는다는 것은 내가 힘이 없어서 오래 참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힘이 있지만 사랑을 인해서 오래 참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번 두 번 참는 것이 아닙니다. 몇 년도 참는 것입니다. 수십년도 참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사랑이 그 사람에게 전달이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내가 정말 많이 참는다말하는 사람은 절대 참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진정으로 참는 사람은 참는다는 말조차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오래 참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7절에 보시면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라고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참으로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사랑할 만하지 않은 사람이 사랑할 만한 사람 될 때까지 끝까지 참으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사랑은 온유합니다. 여기서 온유하다는 것은 친절하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무례한 것과 반대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돌아가야 할 경의와 예의를 갖추는 것입니다.

7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여기서 참는다는 말과 4절에서 참는다는 말은 다릅니다. 여기서 참는다는 말은 스테고라는 말인데, 이것은 완전히 덮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에서 지붕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의 허물이나 잘못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덮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전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고 했습니다. 왜 우리가 이런 사랑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십자가의 보혈로 완전히 덮어주셨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여러분 우리도 서로의 허물과 부족을 완전히 덮어주는 사랑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대한 어떤 믿음이겠습니까? 내가 볼 때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언젠가는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볼 때 부족하게 보이는 자녀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변화시켜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고 소망합니다. 사랑은 그 사람의 현재 모습만을 보지 않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그 사람의 미래의 모습을 바라고 소망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비록 우리 자녀들이 부족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에게 이루실 미래의 모습을 믿음으로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소망 때문에 끝까지 참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여기서 견딘다고 하는 것은 휘포메노라는 말로서 그 사람 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그 사람 아래에서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인간적으로는 이런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랑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가능합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내가 십자가 안에서 완전히 죽고 내 안에서 예수님만 살아 있을 때 이런 사랑이 가능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그러면 이렇게 사랑이 있으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습니까?

1)사랑이 있으면 삶과 사역에 활력이 있습니다.

톰 행크스의 캐스터 어웨이(Cast away)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홀로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이 주인공에게 제일 큰 어려움은 물도 아니고 식량도 아니라 외로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배구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배구공에 사람의 얼굴을 그립니다. 그리고 사람의 얼굴을 그린 그 배구공과 끊임없이 대화를 합니다. 이영화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혼자서는 못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은 사랑이 없이는 못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내가 외롭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또 내 삶이 권태롭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내 일상의 삶이 너무 지겹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또 내 삶에 활력이 없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삶의 활력이 없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내 삶 가운데 사랑이 있으면 삶의 활력이 생깁니다. 또 내 삶 가운데 사랑이 있으면 내가 일하는 가운데 활력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동기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선택하셔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이유도 이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절대 지치지 않습니다. 피곤하시기 않습니다. 언제나 활력이 넘치십니다.

그래서 내 삶과 사역에 활력을 찾고자 하시는 분들은 무엇보다 하나님께 사랑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피차에 뜨겁게 서로 사랑함으로 삶과 사역에 활력이 넘치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고전1231절에고전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더욱 큰 은사는 여러 가지의 은사들을 말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더 큰 은사를 받는 좋은 길이 무엇입니까? 13장에 나오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고전14장에 보면 신령한 은사를 구하되 사랑을 따라 더 큰 은사를 구하라고 합니다.

/결혼하기 전에 자매들이 시집가서 무엇을 하겠느냐 고 합니다. 그런데 결혼하면 모든 것을 잘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혼하기 전에는 혼자입니다. 그래서 사랑해야 할 대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사랑해야 할 남편이 있습니다. 또 나중에 사랑해야 할 자녀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사랑해야 할 대상이 생기니까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은사들이 주어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절대 방언을 금지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지식의 은사가 필요 없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사랑 없는 방언의 은사, 사랑이 없는 지식의 은사가 문제가 있습니다. 사랑이 동기가 된다면 더 큰 은사를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더 큰 은사란 어떤 은사가 더 크고 작다는 말이 아닙니다.

더 큰 은사란 교회공동체에 더 큰 유익을 주는 은사입니다.

단순한 지식의 은사가 아닙니다. 내가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의 은사도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단순한 전도의 은사가 아닙니다. 영혼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렇게 사랑하면 사랑에 따라서 전도의 은사가 주어집니다. 내게 남들에게 돋보이기 위한 은사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사랑함과 같이 형제들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랑하기 위한 모든 은사들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 풍성히 내려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사랑이 있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단점을 장점으로 보게 합니다. 조용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이 보면 그 사람은 너무 조용해 그래서 마치 쑥맥같다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보면 그 사람은 참 조용히 그래서 너무 차분하게 일을 잘해서 좋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아주 활동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이 보면 그 사람은 너무 설치고 다녀 눈꼴 사나워서 정말 못 보겠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보면 정말 그 사람은 에너지가 넘쳐 그래서 너무 보기 좋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겐 모두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없는 곳에는 장점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철저히 짓밟아 버립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단점만을 부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는 곳에는 그 사람의 장점에 대해서는 칭찬합니다. 또 그 사람의 단점에 대해도 격려함으로 단점을 도리어 장점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는 공동체는 희망이 없습니다. 좋은 장점을 가진 사람도 사랑이 없는 곳에는 그 장점도 다 죽게 합니다. 또 서로의 단점만을 가지고 서로 비난하고 질책합니다. 이런 공동체는 절대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그 어떤 하나님의 꿈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는 공동체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장점에 대해서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장점을 더 극대화시켜줍니다. 또 서로의 단점에 대해서는 사랑으로 격려는 받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있는 공동체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동부제일교회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랑으로 보면 희망이 있고 사랑으로 보지 않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꿈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이 교회를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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